소개팅 필패의 역사
첫 만남에서 그녀는 자신의 취향이 멸치 스타일의 남자라고 말했다. 이상형이야 그럴 수 있는 거니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신경을 썼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쓸데없는 수고를 덜었을 테니까.
그녀는 친한 동생의 와이프가 주선해 준 소개팅이었다. 주선자와 베프 사이였기에 주선자는 자신만 믿으라고 했다. 베프 사이이기도 하고 주선해 준 사람도 확실했기에 조금은 기대를 가진 상태로 첫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은 곱창집이었다. 첫 만남부터 곱창집인 것은 별로였지만 주선자 부부가 정한 곳이라 따라야만 했다. 맛집이라고 하더니만 곱창이 맛은 있었다.
곱창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확고한 이상형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지만 주선자가 워낙에 자신에 차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첫 만남 이후로 신이 난 것은 나보다 주선자 부부였다. 잘 들어갔냐고 안부를 묻고 커피 쿠폰을 보내라는 조언을 해줬다. 말 잘 듣는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만남 이후 두 번째 만남도 주선자 부부와 함께 했다. 여성분이 1대 1로 보기는 부담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여기서부터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주선자 부부가 워낙에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기에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 만남은 긴 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 다들 알딸딸하게 취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일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녀에게서 미련을 버려야만 했다. 느낌은 끝었는데 주선자 부부가 자꾸만 독촉하는 바람에 계속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반응은 영 아니었는데... 아까운 커피 쿠폰만 여러 개가 소진되어 버렸다.
그녀를 다시 본 것은 주선자 부부가 낳은 아이의 돌잔치 때였다. 웬 남자와 함께 돌잔치에 왔더라. 주선자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이미 결혼을 했다고 한다. 시기를 보아하니 나와 연락이 흐지부지 된 이후로 그 남자를 만나서 바로 결혼에 성공한 모양이다. 나와 만날 때는 그리도 소극적이더만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청혼을 했다고 한다.
신랑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가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알 수 있었다. 진짜 멸치였다. 완전한 멸치였다. 멸치가 사람으로 변했다면 바로 그 남자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빼빼 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였다. 몸무게는 내 반밖에 안 돼 보였다. 같은 남자가 보기에는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타입이었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서 같이 사는 거니 그녀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다시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잘 사고 있을 거다. 돌잔치에서 본 눈동자는 하트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