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9일차
나는 앞으로 무엇이 될까? 청소년기 내내 이 질문이 나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이 문제로 가장 많이 고민한 시기는 당연히 마지막 학년 때였고, 아비 투어를 끝낸 뒤에는 더 심한 고통을 겪었다. 유대인이 아닌 아이들에게 아비 투어라는 학교라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오랫동안 기다리며 갈망했던 구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나도 여러 가지 직업을 꿈꾸어보았다. 독문학 강사나 교수가 된다면 정말 굉장할 것 같았다. 혹은 연극계에서 활동한다면? 그건 엄청나게 매력적인 직업으로 보였다. 내가 최고로 흥미를 갖고 있는 두 분야, 즉 문학과 연극이 결합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마음속에서 열렬히 소망하고 있던 목표, 그것은 '제3제국'에서 금기시된 직업, 바로 평론가였다.(p.137)
유대인으로 제약을 받아야 하고 대학을 가지 못한 작가이다. 유대인들의 비참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아이투어 졸업 이후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의 꿈을 펼치고 싶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이 글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환경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한국은 정말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라는 거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낯설고 낯선 이 나라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알아듣기는 해도 폴란드어는 간신히 몇 마디 할 줄 알 뿐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직업도 없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을 것 같은 이 폴라드에서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나? 내 짐이라고 해야 발자크의 소설과 여분의 손수건이 들어 있는 서류 가방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는 이 여행길에 또 다른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르 독일에서 추방시킨 저 추운 열차 안에 있을 때는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짐, 당시에 쓸모없고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그 짐이 앞으로 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내를 내 좋은 나라를 떠날 때 가지고 나온 것은 바로 언어였다. 그리고 문학이었다. 그건 독일어였고, 독일문학이었다.
독일에서 강제 추방되면서 가져온 건 책과 손수건 몇 개였다. 추운 기차 안에서 작가는 앞으로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을 하다고 언어라는 거를 떠올렸다. 유대인이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지 못하고 무역회사에 취업을 했지만 워낙 책을 많이 읽고 토론 수업에도 두각을 보이고 재능이 탁월하게 앞부분 읽을 때 느꼈다. 언어로 직업으로 사는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작가의 문학 이야기가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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