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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리움 미술관의 추억

서울이 한강 북쪽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한양이라고 한다면 한남동은 남쪽에 한강이 흐르고 서북쪽으로 남산이 있으므로 한강의 ‘한’ 자와 남산의 ‘남’ 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풍수지리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자리로 본다. 남산과 한강으로 탁 트인 배산임수의 지형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변두리었던 이곳은 한남대로가 개통되면서 경부고속도로의 기점이 된 덕분에 70~80년대를 거치며 오늘의 부촌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그룹 회장들과 정치가, 유명 셀럽들이 많이 사는 곳이고 동네가 상당히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또한, 한남동 공관 촌에는 정부의 3부 요인과 장관들의 공관이 모여 있으며 총 26개국의 대사관이 소재해 있다. 그리고 지금 대통령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관저를 한남동으로 이전했다.           

영진은 혼자 리움 미술관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 사립 미술관으로서는 최고 컬렉션의 퀄리티를 자랑하며 소장하고 있는 유물 또한 그 하나하나의 예술적 가치 역시 엄청난 수준이다. 결혼 후 이듬해였던가? 경윤과 같이 이곳에서 전시를 관람했었다.      

당시에도 '이건희 컬렉션'은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또한, 대중의 관심은 미술품 수집과 미술품 컬렉션으로 확장되어 많은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때였다. 둘은 야외의 부르주아의 '마망'이라는 커다란 거미 작품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작품은 관람객들이 성지 순례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나도 이런 곳에 근무하고 싶어. 하다 못해서 기획 전시장 가이드도 좋고.....”          

“넌, 충분히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실력이 있으니깐.     

 근데 전시장 가이드만 하기에는 우리 경윤이 능력이 너무 아깝지.”          

“역시.... 우리 자기 안목은 최고야!”          

그리고 미술관 근처에 있는 이국적인 풍경의 브런치 레스토랑에도 들렀었는데 그 이름은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작품 앞에 나란히 서서 다정하게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고 있는 둘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당시의 모습만이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젊은이들을 쳐다본다.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의 허리며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는 연인들.          

“우린 왜 같이 살 수 없었을까.. 그게 허황된 꿈이었을까.. ”          

혼자서 독백을 하듯이 내뱉고 나니 문득 영진의 가슴이 아려온다. 세미나 일정이 당초보다 빨라져 무료한 시간이나 때우려 근처를 맴돌다가 이곳을 찾았는데 괜히 슬픈 생각이 난 것이다. 정미는 세미나를 마치고 곧바로 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로의 가슴에 참으로 잊지 못할 하룻밤의 추억을 남기고 대산에서의 만남을 기약했다.      

서울역에서 뜨거운 포옹으로 헤어질 때 정미의 눈길은 전류처럼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영진은 대산에서도 친구처럼 가끔 만나 서로의 인연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솔직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둘도 없는 다정한 말벗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서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항상 즐거움과 설렘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상념의 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엄청난 곤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매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이하던 사람, 힘들 때 곁에 있어 주고 무슨 일이든 같이했고 함께 사랑하고 웃고 떠들던 사람, 추억이 많은 사람, 그런 사람과 인연을 놓게 되면 엄청난 허탈함과 상실감이 느껴진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한 이별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잠시 권태기를 보내며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이별 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점심때가 지나니 배가 고파 서울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인 이태원의 설렁탕집을 찾았다. 영진이 설렁탕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오랜 세월 우리 서민들의 대표적인 음식이니만큼 마음이 허전할 때 밥을 국에 말아서 깍두기 하나를 숟가락에 얹어 먹으면 왠지 속이 든든히 채워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육당 최남선에 의하면, 몽골에서 맹물에 소를 삶아 먹은 음식을 술루라고 불렀고 이것이 고려로 넘어오면서 설렁탕의 어원이 된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그런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온 것은 계산하고 나서 식당에서 막 나왔을 때였다. 그전에 연아에게 전화가 왔었지만 오늘은 친구와의 선약 때문에 내일로 만남을 미루었다. 영진의 친구 유현태는 영상 장치의 개발 공급자가 되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틈만 나면 연구를 했다. 그에게 연구가 취미였고 오락이었고 생활의 전부였다. 그렇게 연구에 몰두하더니 지금은 영상 장치 업계에선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다.      

들리는 소문에는 돈도 많이 벌었지만 이십 대 청춘 시절 놀지 못했던 것을 한풀이하듯 사생활이 엉망이라고도 했다. 애인도 몇 있는데 대부분이 룸살롱에서 만난 여자들이었으니 아마도 돈이 좋아 돈 때문에 붙어있는 여자도 있으리라. 영진은 대산에서 올라오기 전에 미리 만나기로 약속을 정해 두었다.          

청담동은 강남 속의 강남으로 불리는 강남구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그리고 명품의 메카라고 불리는 청담동 명품거리가 위치해 있다. 루이뷔통뿐만 아니라 몽클레어, 디올, 까르띠에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한국 플래그십 매장은 전부 청담동에 있다. 친구는 이곳의 한 고급 빌라에서 살고 있다. 소위 성공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담동의 한 일식집에 마주 앉은 둘은 간단한 안부를 묻고 동창들의 근황으로 얘기를 했다. 드문드문 만나기는 했지만 누가 뭐래도 학창 시절부터 마음이 맞았던 사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굳힌 지금도 돈이 많든 적든 따지지 않고 서울에서 만나면 현태가 대산에서 만나면 영진이 술을 사는 게 묵시적인 룰로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거북하고 불편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철저하게 정치 얘기도 먼저 하지 않는 원칙도 있다. 둘 사이에 좌파인지 우파인지 따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현태가 오늘은 둘이 만나 술잔을 몇 번 부딪히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이혼했어?”          

“응. 그렇게 되었어. 서울까지 소문났어?”          

영진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왜?”          

하고 묻더니 이내 현태는 “휴우~~~ 하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네가 좀 참지. 경윤 씨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이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싶지 않더라고.”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놀려고 했는데, 이혼 얘기로 잠시 어두운 표정의 두 사람이다.     

아직도 경윤의 마지막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첫 만남 때의 쓸쓸한 모습과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의 뒷모습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그러나. 경윤과의 일은 굳이 세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영진에게 있어서 경윤의 존재는 비록 헤어졌어도 언제까지나 보호하고 보듬어주어야 할 대상일지 모른다. 짧게 묻고 답한 둘은 동시에 잔을 들어 삼켰다.           

“너 요즈음 그거는 서?”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현태가 웃으며 영진을 보며 물었다.          

“얀마, 당연히 서지. 미친놈..... 어젯밤에도 쌌다.”          

영진이 정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넌, 쓸 때나 있어? 그동안 쓰지 않아 고장 난 거 아냐?”          

“아예. 마이크를 들고 떠들지 그랬어.”          

그렇게 둘이 주거니 받거니 떠들고 나니 갑자기 떠오르는 경윤의 얼굴이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지는 영진이다.          

“그래, 그럼 다행인 걸로 여기고 우리는 말보다는 행동이지.      

 오늘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좋지.... 모처럼 오늘 제대로 뿌리를 뽑아보자.”          

영진도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맞췄다. 남자 둘이 마시면 폭음을 하게 될 것이니 분위기도 전환할 겸 여자 좀 부르자는 얘기다. 그러더니 현태가 웨이터를 불렀다.           

“여자 둘!”          

술을 시키듯 당당히 손가락을 들어 V자를 그리자 웨이터가 고개를 숙이며           

“진즉부터 아름다운 사모님 두 분이 대기해 있습니다.”          

“데려와.”          

곧 문이 열리더니 엄숙한 얼굴의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두 여자가 들어섰는데 둘 다 평균 수준 이상의 미모에 늘씬한 체격이다.          

“각자 마음에 드는 대로 선택해.”           

현태가 술잔을 들어 그녀들에게 보이고 한 모금 들이키며 남자 둘의 선택권을 여자들에게 주었다. 먼저 발을 뗀, 단발 허쉬 컷 머리가 영진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 경쾌하면서 라이트 한 느낌이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 저하고 같이 계실 수 있어요?”          

영진이 술잔 대신 그녀와 키스를 한다. 그러자 그녀도 영진의 목을 마주 안고 혀를 넣는다. 기선 제압을 하는 것 같다.           

“of course”          

영진이 입술을 떼고 말을 할 때 현태는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파트너 귀에다 뭐라고 수군대고 있다가 영진의 파트너에게 빙긋이 웃으며,          

”걔 물건이 제대로 서는지 필히 확인해야 해.     

물론, 물건의 상태도 녹이 슬었는지 곰팡이가 생겼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폐기물이나 불법·불량한 물건이면 관세가 다르니 싼 품목으로 해야 하거든.”          

미친놈이다. 내 물건이 어디 수출할 물품도 아닌데 지가 마치 관세 공무원이라도 되는냥 의기양양해서 수출화물 검사하라는 듯이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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