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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대산시 업사이클 센터(1)

영진의 입술이 부르텄다. 옷은 말쑥하게 입고 있지만 얼굴은 초췌했다. 영진은 여름의 끝 무렵에 맡게 된 새로운 과제를 가을이 끝나고 초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그동안에 영진은 흔한 단풍 구경은 고사하고 주말까지 반납하며 쉼 없이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의 세미나를 겸한 4일간의 일정은 “앞으로 몇 달 동안 쉴 수 없으니 미리 쉬어라.”는 얘기밖에 결국 되지 않았던 셈이다.          

영진이 서울서 내려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출근해 자리에 앉자 팀장이 불렀다. 영진이 속해 있는 연구원 1팀은 팀장을 포함해 4명의 연구원과 5명의 행정지원 인력, 그리고 3명의 사무실 보조 인원이 있었다. 무엇보다 부서에 주어진 프로젝트는 매번 마감 기한을 맞추기에 급급할 정도로 업무가 많았고 합리적·논리적으로 서술해야 했기에 난이도 또한 매우 높았다.      

“김 연구원!”          

팀장은 영진을 불러놓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네... 팀장님. 말씀하십시오.”          

팀장은 정년퇴직을 3년 남겨두고 있었다. 평소 입버릇처럼 “과장은 달아보고 집에 가야지.” 말할 정도로 요즈음은 온통 승진에 목매달고 있으며 사석에서는 푼수 같은 뻔뻔한 면모도 있지만 성품은 소탈하고 자신의 잇속은 스스로 챙기지 못하는 편이다. 또한, 말을 할 때는 투덜대면서도 직원들의 얘기는 귀담아 들어주는 편이었기에 팀원들 모두 형님·오빠처럼 편하게 생각한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강단이 없어 직원들이 어렵고 힘든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윗사람들에게 제대로 어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오성기”      

누구나 그 이름을 한번 들으면 결코 잊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나 한바탕 웃고 시작하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풀리게 하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그런 오 팀장이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턱에 오른손을 고이고 한껏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영진은 그 속 마음조차 숨기지 못하는 팀장의 단순함과 순박함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이 양반이 무슨 어려운 일을 맡기려 이렇게 아침부터 똥폼을 잡고 있지?.” 하는 생각을 했다.     

팀장이 이렇게 진지하고 엄숙한 모션을 취할 때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다. 영진의 예상은 지금껏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지금 무게를 잡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지만, 실상은 영진의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이다. 보다 못한 영진이 먼저 물었다.           

“형님! 무슨 고민 있습니까?”          

이럴 때는 평소 술자리에서 하던 행동대로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훨씬 낫다. 그래야 팀장의 부담이 덜해진다.  

“어,~~~아~~~ 아니야.”          

“에이~~~ 왜 그러십니까? 평소랑 전혀 다른데. 말씀해 보세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손으로 몇 가락 남지 않은 머리를 한쪽 방향으로 밀어 넘긴다.          

“이거. 원...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오팀장은 다시한번 입맛을 쩝쩝 다시며 난처해한다.          

“아~~~ 그럼, 형님 말씀하지 마세요. 전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영진이 일부러 몸을 일으키자 팀장은 다급하게 영진의 팔을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       

“영진아! 내가 너 제일로 좋아하는 거 알제?”          

그러면서 얼른 일어나 앉아 있는 영진의 어깨를 두 팔로 꽉 잡았다. 아마도 팀장 본인은 자신의 승진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해 절박한 마음이 들 것이다.          

“뭐 어려운 거 시키려고 이러십니까?      

 낯 간지럽게 하지 마시고 본론부터 말씀해 보십시요”          

“영진아! 진짜 미안한데 과제 하나만 더 맡아 주면 안 되겠나?”          

“예? 무슨 과제를 또 맡기시려고 하십니까?     

 아직 하고 일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현재 영진이 하고 있는 일은 5차 협약을 개최하기에 앞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제1차부터 4차까지의 협의 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협약에서는 플라스틱 생산 제한과 감축, 재사용 시스템 촉진, 화학물질 사용 금지, 미세플라스틱 규제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이다. 일상생활과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이번 협약은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최대 합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곳 대산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약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큰 그림이다.     

대산 연구원에서는 구체적인 규제 대상, 핵심 의무 등에 대해서 새롭게 추가되어야 할 사항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8할 정도 작업을 마친 상태다.          

“이런 상황인데 뭘 더 하라고 하세요?... 아예 밑기둥을 뽑아 먹을 작정이십니까?”          

오 팀장은 자신의 1팀 연구원들이 지금까지 과부하 상태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형님, 성기만 세울 생각 마시고 윗분들에게 못한다고 말씀하시죠?”          

“미쳤나? 그런 얘길 내가 하게”          

그 말은 어떻게 들으면 책임감 없는 리더의 정형이라며 따질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평소 팀장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영진은 굳이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영진아! 그게 업 사이클이라 하는 건데 대산시에서 엄청 공을 들여 유치한 것이라  원장님의 관심이 아주 많다.”          

“에이. 형님! 전 안 할 겁니다. 아니 못합니다. 우리팀 일도 아닌데......”          

이 과제는 엄밀히 따지면  1팀이 아니고 2팀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2팀이 하는 일이 좀 미덥지 않다 생각되면 1팀으로 떠넘기는 것이 최근 부쩍 늘어난 것이다.         

“야.... 내 부탁이다. 체면 좀 세워주라. 나도 진급해야 되잖아.”          

팀장은 엄지 손가락을 세워 영진이 보란 듯 눈앞에 들이밀면서 말을 이었다.          

“이분께서 업사이클센터 타당성 용역 건은 오 팀장이 책임져달라시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    

“미~~~ 친,~~~~ 아니 그걸 왜 우리 팀이 합니까. 놀고먹는 팀도 아닌 줄 잘 아시는 분이.....”        

“야. 2팀이 약하잖아. 이런 쪽으로는.... 그러니깐 나도 답답하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동안 팀장도 몇 번을 어필을 하긴 했었다. 그렇지만 “만만한 게 홍어거시기”라며 딱 그때뿐이었다. 매번 어정쩡하게 넘어가더니 지금까지도 달라진 거 없이 반복되는 상황인 것이다. 팀원들 모두 빵빵한 복지까지는 애시당초 바라지도 않았다.           

“참 형님도 술값 계산에는 냉철하고 철두철미 하시면서     

 직원들 일 시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십니까?”          

영진은 기가 차서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의 반전 없는 결론에 이미 도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방을 나서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원장의 전화가 올 것이다. 그리고 “고생 많다.”는 위로와 함께 약간의 봉투를 전해 줄 것이다. 흔히 말하는 “현안 업무추진 직원 노고 격려”로 일종의 포상형식이다.          

“야! 인마~~~ 내가 언제 계산할 때 그랬다고.....     

 알았어. 알았어~~~ 오늘 저녁에 내가 함 크게 쏠게.”          

팀장은 연신 사람 좋은 얼굴로 굽신거리는 시늉을 하며 애원 조로 말했다. 저렇게 애걸복걸 모드로 나오는 것은 영진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맙다. 고마워~~~ 영진아.”          

그러면서도 문을 닫고 나가려는 영진의 등 뒤에다 대고 가차 없이 다음 말을 잇는다.       

“영진아! 90일이다. 그 안에 마치자 우리.”          

순간 영진이 몸을 훽 돌려 노려보자 당황한 팀장은 두 손을 들어 영진을 진정시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언젠가 경윤이 말했다.          

“사람들 때문에 열받는 일이 있어도 내가 함께 해주고 들어줄게.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열받지 말고 속에 쌓아두지 말고 스트레스 같은 거     

 절대 마음속에 두지 마. 알았지?”               

경윤의 신신당부의 말이 아니더래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으므로 영진은 일일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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