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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Oct 24. 2024

잠수 16화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화는 주차하고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한기가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전화를 해도 안 받더니 조용하게 만나자며 주차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추석 낸 시골에 있었다고 한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시골집 방 안에서 잠을 잤단다. 깨어나 보니 작은아버지가 해장국을 사 주고 있더란다. 그래서 선화가 전화를 걸어오고 있는지도 몰랐단다. 전화를 받지 못해 미안하다며 만나서 얘기하잔다.

그 문자 메시지를 세 번은 읽은 거 같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이걸 믿으라고 변명하는 건가 싶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한숨이 나왔다. 세 번째 읽었을 때는 쨘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쨘 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조수석 차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한기가 쑥 들어와 앉았다. 한기의 얼굴이 조금 수척해 보였다.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았다. 잠만 잤다면서 그냥 잠 들었던 게 아닌지, 푸석거렸다. 아무래도 혼자 술을 퍼마신 거 같다. 얼마나 마셨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선화는 고개를 살짝 돌려 한기의 까칠하고 며칠 제대로 씻지도 않은 듯한 한기의 옆얼굴을 쳐다봤지만, 한기는 선화의 얼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두 손을 양쪽 주머니에 찔러 놓고 빼지도 않았다. 시선을 떨구듯 자신의 무릎 쪽만 쳐다보고 있는 듯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로 무릎을 쳐다보고 있는 건지 다른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지 선화로서는 알 수 없었다. 누가 먼저 이 좁은 차 안의 적막과 침묵을 깰지, 선화는 먼저 말을 건네야 하는 건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조수석에 앉아 아무 말도 없는 한기를 그렇게 이십 분에서 삼십 분은 참은 거 같다. 음악도 틀지 않았다. 라디오도 틀지 않았다. 시동을 끄지 않은 차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일상의 아주 작은 소음으로 함께 하고 있을 뿐이었다.   

  

“헤어지자.”     


선화는 긴말이 필요할까 싶었다. 어차피 결론은 간단해 보였다. 복잡하게 해결할 일이 아닌 거 같았다. 그저 기대고 싶었고, 그 이상을 바란 적은 없다. 서로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상승효과가 괜찮은 거 같았다. 한기를 통해 알게 되는 인맥들이 남편을 잃고 혼자서 일궈온 부동산 재산을 유지하고 불리는데 도움이 됐다. 상간녀라는 딱지를 법적으로 판결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기의 와이프가 알게 되길 절대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결론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한기는 한숨을 깊게 들이쉬는가 싶더니 주먹 쥔 한 손으로 서랍을 쳤다. 플라스틱 재질로 된 차 서랍은 금이 갔다. 한기는 선화의 한쪽 팔을 세게 움켜 잡았다.     


“둘이 즐겼으면 같이 책임져야지. 너도 좋아했잖아?”     


한기는 선화라도 붙잡아야 했다. 모르는 척 했지만 선화가 혼자서 아들 둘을 키우며 축적해 온 부동산 재산이 꽤 있음을 알고 있다. 관심 없는 척 했지만 한기는 선화의 그 재산이라도 붙들어 둬야 했다.

어릴 때부터 살기 위해 시골집에 붙어 있었다. 나가고 싶어도 집 장롱에서 몰래 꺼내갈 돈도 없었다. 구석구석 뒤져봐야 돈 나올 구석이라고는 없는 집이었다. 학원 문 근처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희진이 호진이를 여기저기 학원에 보내는 돈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점점 희진에게 줘야 하는 생활비가 싫었다. 단 한 번도 희진에게 얼마를 버는지, 얼마를 모았는지, 어떻게 돈 관리를 하는지 의논한 적도 없다. 단 한 번도 말해 본 적이 없다. 희진이 물어보는 거조차 짜증을 냈다. 내가 버는 돈인데 왜 묻는지, 왜 참견하는지 짜증이 났다. 자신이 말하지 않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것에 대해 건드리는 게 싫었다. 한기는 희진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희진이 아들인 호진이를 임신하지 않았다면 혼인 신고도 하지 않았을 거다. 

선화도 사랑하지는 않는다. 희진과는 다르게 까르르 웃으며 옷가지를 한 올 한 올 다 벗어 던지는 끼가 편했을 뿐이다. 한기의 살결에 너무도 부끄럼 없이, 부비부비 되는 날 것 그대로의 그 

한기의 인생에 사랑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허세에 불과했다. 배부른 식탁에 불과했다. 살기 위해 함께 하는 거다.

한기는 살아내야 했다. 한 번 살아가는 인생 뭐라도 해 내고, 성공하기 위해 살아내기만 하면 됐다. 오직 한기 자체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빛나 주면 되는 거였다. 그 외의 것들은 전부 그저 남들에게 나도 너희들처럼 남들 하는 만큼은 하고 산다고 보여 주는 겉옷에 불과했다. 희진과 그래서 결혼했다.

사촌 동생들도, 작은아버지들과 어머니들도 가진 거 한 푼도 없는 한기가 제일 결혼 잘했다고들 했다. 희진의 친정 부모님이 미리 사 두었던 희진의 명의로 된 작은 아파트 덕분에 자가로 시작했다. 집 안의 모든 살림살이도 장모님이 사소한 것까지 다 사 주셨다. 인테리어도 희진이 일해서 모아 둔 돈으로 다 했다. 한기는 몸만 들어가면 됐다. 서울은 아니어도 서울 근교의 수도권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여서 엄마들 교육열과 치마 바람도 여덟시 뉴스에는 간혹 나올 정도의 동네였다.

더구나 외아들이라 무조건 아들을 바랬던 한기에게 희진은 첫 임신부터 아들을 가졌다. 그걸로 된 거였다. 군말 없이 한기에게 토 달지 말고 그 가정을 유지해 주면 되는 거였는데, 그랬는데, 희진이 다 망쳐 놨다. 그리고 지금은 선화가 망치려 하고 있다.

선화는 자신의 팔을 거칠게 움켜잡고 있는 한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럴수록 팔이 한기의 손이 더 죄어 왔다. 팔이 더 아파왔다. 한기의 팔을 빼 보려고 하다가 좁은 차 안에서 부딪혔다. 팔을 이리 틀고, 저리 틀어 벗어나려 할 때마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혔다. 욱신거렸다.

순간 한기가 선화의 몸을 덮는가 싶더니 의자가 뒤로 확 젖혀졌다. 안전 벨트가 풀어졌다. 순식간이었다. 한기의 바지 벨트는 언제 풀었는지 이미 풀어져 있었다. 한기는 다른 한 손으로 선화의 허리춤에 있는 치마를 끌어 내렸다. 선화의 스타킹을 찢듯이 벗겨 내렸다. 선화의 팬티가 거칠게 허벅지로 벗겨 내려지는 게 느껴졌다.

선화의 몸이 위로 끌어올려졌다. 한기의 한 손이 선화의 블라우스 단추를 거칠게 확 잡아 뜯더니 브래지어를 아래로 확 잡아 내렸다. 한기의 혀가 선화의 가슴 몽우리를 애무했다.      


“하지마, 하지마.”     


선화는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한기의 애무에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선화의 그곳이 금새 축축해지고 있었다. 

한기는 입술로 선화의 가슴 몽우리를 깨물 듯 핥고 있었다. 선화는 자신도 모르게 한기의 목을 끌어 안았다. 한기의 등을 움켜 잡았다.

한기의 그것이 선화의 그곳으로 거침없이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느낌이었다. 한기의 그것은 컸다. 그렇게 큰 건 처음 봤다. 그 커다람이 선화의 안으로 쳐들어오는 그 느낌은 선화를 매달리게 했다. 남편이 선화와 아이들의 곁을 떠나고 아주 가끔씩 원 나잇을 해 보긴 했지만, 한기의 그것처럼 선화를 매달리게 하진 않았다. 

선화의 그곳이 축축하게 기다렸다는 듯 한기의 그것을 받아들이며 신음소리를 참아 내지 못했다. 선화는 한기를 받아들인 그곳으로 인해 온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한기는 점점 더 거칠고 힘 있게 밀고 들어왔다. 선화는 눈물이 흘렀다.   

   

“제발, 제발, 더.”     


선화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선화는 애절하게도 한기를 더욱더 꽉 끌어안고 있었다. 선화는 괴로웠다. 선화는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절대로 한기에게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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