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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Oct 08. 2024

잠수 14화

항상 말없이 토닥여주신다. 이런 방식으로.



“전화 좀 받으라고.”     


선화는 소리를 질렀다. 두 손으로 운전대를 탁탁 내리치며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작은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호음만 길게 울리다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 가 버렸다. 응답이 없었다.

선화가 응답 없이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 가 버리는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끊어 버리자마자 큰아들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선화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애써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간식 사 먹고 학원 들어가도 돼? 학교 급식이 맵고 짜고 맛이 없었어.”     


“그랬어? 알았어. 엄마가 바로 입금할게.”     


“고마워. 오늘 일찍 들어와?”     


“일찍은 아닌데 늦게도 아닐 거 같아.”     


“알았어. 집에서 봐.”     


전화는 끊겼다. 선화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은행 앱으로 들어가 큰아들에게 오만 원을 이체 시켰다. 

머리를 뒤로 기댔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요즘 같아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다. 살아야만 한다. 남편 없이 가장으로 살아온 지 팔 년이다.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팔자다. 주저앉아 울고 싶어도 울고만 있을 수 없는 팔자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 벌지 않으면 누가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

팔 년 전 죽은 남편이 남김 보험료 이억은 전세 보증금으로 쓰고 있다. 그 보증금의 일부를 그 와이프란 여자에게 위자료로 털릴 순 없다.

선화는 두 눈을 뜨고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를 꽉 깨물고 제발, 제발 하는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은 계속 울렸다. 길게 울렸다. 그러나 또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 버렸다.                         






깨어났다. 일어나려 해도 깨어지지 않던 잠이 계속 울려 대며 한기를 괴롭히는 진동음에 깨어났다.

누군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요즘 계속 한기를 괴롭히는 알림은 거의 다 선화였다. 문자 메시지만 해도 몇십 개는 와 있었다. 물론 한기는 읽지 않았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다. 아무하고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제발 다들 조용히들 입 다물고 있어 주길 바랄 뿐이다. 한기가 연락하고 대답할 때까지 건드리지 말았음 좋겠다.     

“일어났냐?”     


작은아버지와 민기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민기는 뒤돌아서서 쭈빗거리며 서 있었다. 한기는 고개를 숙였다. 미칠 것만 같았다. 한기는 얼굴을 찡그렸다. 방바닥 위로 쭉 뻗어 있는 두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온전히 혼자 있을 곳을 찾고 싶었다. 제발 좀, 모른 척이라도 하라고 소리치고 싶다. 투명 인간 취급해도 좋으니, 이름도 부르지 말고 앞에 있어도 아는 척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다.     


“밥은 먹었냐?”     


한기는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만 했다. 대답하기 싫었다. 허기졌다. 배 속에 뭔가가 채우지 않았지만 배고프진 않았다. 허기질 뿐이었다. 그냥 허기 진데, 그 허기짐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르겠을 뿐이다.     


“나와, 이놈아. 저 읍내에 해장국 먹으러 가려니까.”     


작은아버지는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한기는 고개를 들었다. 민기와 작은아버지가 작은 슈퍼의 문을 열고 먼저 나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기는 그 뒤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읍내 가자. 해장국 먹게.”     


술을 거나하다 못해 제 정신 아닐 정도로 마시고 들어와 집 안을 난장판으로 휘집어 놓은 다음 날 아버지가 하던 말이었다. 읍내에 해장하러 갈때면 꼭 한기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한기는 아버지에게 술이 아니라 해장국 먹는 법부터 배웠다. 기름기 섞인 뻘건 국물에 둥둥 떠 있는 선지를 입안에 집어넣고 씹어 먹는 것부터 배웠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흡사 젤리처럼 물컹한 선지를 처음 씹을 때는 뱉어내고 싶었었다. 여러 번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목구멍으로삼키다 보니 익숙해졌었다. 

선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흡사 아버지의 폭력과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비슷했다. 저 사람이 내 아버지구나, 라는 걸 인정하는 건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습득하는 생활의 생태다. 하지만 내 아버지가 다른 집 안의 아버지와 많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은, 그저 그렇게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아니다. 혼란이 있다. 왜 다르지를 생각하기보다. 살기 위해서, 지켜보는 게 힘들고 싫어도 온전히 지켜봐야만 하는 강제성이 있다. 두려워도, 아무렇지 않은 듯 쳐다봐야 하는 무관심을 가장한 감정의 벽이 있다. 그 감정의 벽은 절대 매끄럽지 않다. 울퉁불퉁하다 못해 가시가 박혀 있다. 계속해서 찔러 댄다.     


“어여 나와.”    


문밖에서 역정 내듯이 큰 소리를 내는 작은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기는 어기적어기적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무겁게 느껴지는 다리를 늘어뜨려 두 발바닥을 작은 슈퍼 안의 바닥으로 툭 내딛었다.                         





희진은 수저를 들었다. 희진이 입맛 없어 할 때 아빠가 데리고 와 주던 오래된 순두부찌개 집이었다. 뚝배기 밥이 나오고 마지막에 뚝배기 바닥의 누룽지까지 물에 불려 입가심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희진은 순두부찌개만 파는 그 집의 곱창 순두부찌개를 좋아했다. 거침없이 수저로 밥과 순두부찌개를 오갔다.

아빠가 마주 앉아서 지켜보고 계셨다. 희진이 수저를 들고 퍽퍽 제대로 밥을 퍼먹길 바라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두세 달 사이에 말라 버린 딸의 얼굴이 마음 아프시면서도 내색하려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애써 웃어 주고 계셨다. 

어릴 때부터 부모 것이 다 자기 것인 양 응석받이인 남동생과 다르게 뭐든지 아무 말 없이 혼자 해 내려 하는 희진을 토닥여주곤 하셨다. 아무 말 없이 희진이 좋아하는 것을 사와 조용히 희진의 방에 두고 가시거나, 희진의 학교 앞에 찾아와 엄마와 남동생 몰래 간식을 사 주시곤 했다.

엄마는 희진이 알아서 하는 편이라 손이 안 간다며 남동생에게 신경을 많이 쓰셨다. 아침마다 남동생을 매일 깨워 주고, 숙제하라고 웃으며 잔소리했다. 그 잔소리가 즐겁다는 듯 응석받이 남동생을 챙기는 게 당연하다는 듯 그랬다. 아빠와 희진의 생일은 가끔 깜빡해도 남동생의 생일은 절대 잊지 않는 엄마였다. 남동생이 대학생으로 자취할 때도, 입대했을 때도 근방의 제과점을 알아내 생일 케이크를 꼭 배달시킬 정도였다. 아빠 몰래 사고 친 것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희진은 그런 남동생이 막내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지금은 희진이 응석을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도 힘들다고, 나도 외롭다고, 나도 좀 챙겨 달라고 생전 안 부리던 응석을 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부리고 싶다고 부려지는 게 응석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응석을 부려본 적이 없는 희진은 또다시 묵묵히 이겨 내려고 혼자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런 발버둥을, 응석을 부려보고 싶은데 안되는 희진의 그 마음을 아빠는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아빠는 항상 말없이 희진을 토닥여주신다. 이런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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