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잠자리에 누우려 하는데 대뜸 던진 말이었다. 어쩐다. 나는 애들 아기때부터 알고 지내온, 아들 친구의 엄마인 언니한테 면목 없고 미안하지만 급하게 톡을 보냈다.
'언니, 면목 없고 죄송한데 급해서요. 학교 도서관이 내일부터 8시 10분에 문 연대서요. 대책 생길 때까지 이번주까지만 우리 OO이 제가 밥 챙겨 먹여서 언니네 데려다 놓고 OO이란 같이 등교해도 될까요?'
답장은 5분도 안 돼서 전송돼 왔다. 언니는 그렇게 하라고 흔쾌히 받아줬다. 나는 염치 없지만 너무 고맙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들을 일찍 깨워 고기 구워 영양제랑 사과에 밥을 챙겨 먹이고 책시를 태워 오전 7시 55분까지 언니네 집에 데려다 줬다. 그리고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원래는 차 몰고 15분에서 16분이면 도착하던 거리가 사무실이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그린벨트가 풀리고 신축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대규모 공사들이 진행되면서 15분에서 16분이면 도착하던 거리를 30분은 걸려야 도착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어제 밤에 지인들이 생일 축하 한다고 나오라고 했지만 나가지 않았다. 친정 아빠가 집 근처에 들리셨다가 밥 먹고 들어 가라고 하셨지만 아들과 그냥 집에 들어 왔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럴 기분도, 상태도 아니었다. 월, 화, 수, 목, 금요일 5일을 약 기운으로 버티며 악착같이 인수인계 받는 출 퇴근을 했다. 토요일 아침에야 아들과 원래 다니던 이비인후과에 가 일주일 동안 있었던 몸의 상태를 말씀 드렸다. 이비인후과에서도 열의 원인은 알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기관지에서 나오고 있는 기침이 심한 거 같다고 하셨다. 난 결국 항생제 처방을 받아 왔다.
나의 생일인 오늘, 아들과 잠에서 깨어 보니 어느 새 오후 12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부리나케 일어났지만 멍하고 아직도 메롱 상태인 몸 때문에 천천히 밥을 챙겼다. 아들은 고기 굽고 영양제랑 사과에 카스테라 반 조각을 챙겨 줬다. 나는 귀찮기도 하고, 입맛도 없고 해 냉동 핫도그 하나를 뎁히고 사과 한 조각에 계란 후라이를 후딱 차렸다. 처음으로 미역국 없는 생일을 보내고 있다.
몸도 힘들지만, 내일은 어떻게 출근할 지 걱정이 된다. 통장에 단 돈 19,250원 밖에 없다. 차비가 없다. 점심 밥도 각자 알아서 사 먹어야 하는데 밥도 매일까지는 제대로 챙겨 먹지는 못한다. 수요일에는 월세 비도 입금해야 하고, 카드 값도 내는 날이다.
아들은 또 어떻게 등교 시키고 가야 하는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점점 무기력해져 가고 아들과 살겠다고 발버둥쳐도 소용 없는 건가 싶은 생각마져 든다.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계속 뭔가 힘들기만 하고 어긋나는 느낌이다. 첫 출근하고 열이 39도까지 올라 응급실에를 뛰어 갔다 오질 않나, 기를 쓰고 출근하고 퇴근하며 버티고 있는데 점점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이혼을 후회하진 않는다. 아들을 지키고 친권을 지킨 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제력 대비 없이 하게 된 이혼에, 뻔뻔함과 미안함도 없이 항소까지 한 그 놈과 그 여자의 괴롭힘에 결국 내가 먼저 몸이 망가져 가는 기분이다. 둘이서 짰는지 일부러 양육비도 안 보내고 통장이랑 보험 가압류에도 우린 끄떡 없다는 그 놈과 그 여자가 살인자로 생각될 정도다.
생각해 봤다.
나름 열심히 살아 온 거 같은데, 작가 일도 성공해 보겠다고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는 고루한 성격으로 그래도 겁도 없이 열심히 뛰었다. 세상 물정 몰라도 열심히 하면 답이 나오겠지 하고 열심히 뛰었지만, 정식 계약을 하고도 계약금도 다 못 받고 저작권까지 '제발 알았으니까 그냥 다 가져 가시고 연락 좀 하지 마세요.'라고 부탁할 정도로 치가 떨렸었다. 그래도 온라인에서라도 열심히 글을 써 올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결혼해 경제적 활동은 안했지만, 애 케어와 내조와 매일 청소해 가며 깔끔하게 집 안 살림을 하고, 자신감을 다시 찾으려 시민위원으로서도 열심히 활동 했다.
애 유치원때 일하고 싶다는 날, 친정 아빠까지 있는 자리에서 아직 때가 아니라며 애나 잘보라고 핀잔 준던 그 놈이다. 결혼 9년차 되자 너도 나가서 돈 좀 벌으라고 해 경단녀에서 벗어나려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에, 렌터가 인바웃 상담에, 다시 사회 생활도 하려 노력했다. 집안 일과 애 케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기 싫어하는 그 놈 때문에 애 커에와 집안 살림도 항상 깨끗이 유지하고 완벽을 기하려고 정말 기를 쓰고 노력했다.
하지만 남은 건 배신과 이혼, 그 뒤에 더하게 밀고 들어 오는 뻔뻔함과 맞서느라 내 몸은 지친 거 같다.
오늘이 내 생일의 마지막 생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져 든다. 내일 출근은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멍하다.
내가 먼저 쓰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나도 많이 약해진 거 같다. 더 강해져야 하는데 갑자기 원인 불명으로 몸까지 아파왔다. 2월부터 받은 스트레스에, 법적 싸움에, 취직 문제에, 경제력 문제에, 한꺼번에 몰아 닥친 태풍 속에서도 이 악물고 버틴 내 몸이 잠시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다.
상간녀와 그 놈은 나와 아들에게는 살인자와 마찬가지인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꼭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벼랑에서 직접 밀어 버려야만 살인자는 아닌 거 같다.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잤다. 일찍 일어나 원래 다니던 이비인후과부터 간다는게 일어나니 오전 11시였다. 아들과 나는 급히 채비를 하고 병원부터 다녀 왔다. 그리고 간단하게 밥과 약을 챙겨 먹고, 아들이 태권도 놀이 행사에서 한 시간만이라도 놀고 싶다해 데려다 줬다. 태권도 학원 근처에 카페에서 테이블에 엎드려 있다 시피하며 기다렸다가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데 친정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집 근처로 오신다기에 몸이 힘들지만, 친정 아빠와 만나 친정 아빠가 주문해 주시는 음료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나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평소때와 달리 말이 없었다.
테이블에 앉아 아빠가 하시는 첫 마디는 돈 얘기였다.
"너 변호사비 빌려 준다고, 11월까지만 쓰겠다고 은행에서 예금 담보 대출한 거 모바일로만 안 오고 우편으로까지 날아 왔더라. 그래서 네 엄마가 봤어. 11월안에 항소 재판 끝날 줄 알았는데, 참."
안 그래도 몸이 힘든 나는 면목이 없어서 그 자리에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빠는 생활비 쓸 연금도 매달 입금 받으시고, 엄마랑 각자 현금 2억에서 3억씩 갖고 계시고, 12억이 넘는 아파트에 사시는데도 힘드시구나 싶었다.
그래도 지금 내 상황 보다는 힘들지 않으실 텐데, 돈 묶어 놓은 거 지금 풀면 이자 손해 본다고, 몇 만원 이자 내고 두 달만 쓰지 하시며 예금 담보 대출로 변호사비 빌려 주신 거다.
평생 빚이란 걸 안 지고 사신 아빠다. 그래서 빚이 전혀 없으신 부모님이다. 그런 아빠가 예상치 못하게 항소를 걸어 온 그 놈과 그 여자 때문에 두 달만 쓴다고 예금 담보 대출을 받아 변호사 비를 빌려 주셨다.
엄마가 하도 아들, 아들 해서 키워서 부모님 돈은 어차피 전부 자기 꺼라고 생각하며 살던 남동생과 나는 달랐다. 다를 수 밖에 없게 엄마가 그렇게 키웠다.
나는 부모님이라도 빌린 돈은 내 명의로 대출을 해서라도 갚는 성격이었다. 더구나 2월에 소송 시작하며 경제력 대비 없이 소송에, 이혼까지 하는 상황이라 근근히 도와 주셔서 그 말을 듣는데 가시 방석이었다.
나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올라가서 자야 될 거 같다고 하고, 아빠와의 카페 타임 10분만에 일어섰다. 평소라면 아빠랑 커피 한 잔 하며 한 두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며 친정 아빠께 톡을 드렸다.
'죄송해요. 저 변호사비 빌려 주시느라 빚까지 지셨는데엄마 눈치 보이시게 엄마까지 알게 되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 죄송해요. 제가 계속 민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