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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Mar 26. 2024

단어는 그림자를 남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책이 주는 기쁨 중 하나는, 머릿속에 정돈되지 않고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이 어떤 단어의 형태나 조금은 정리된 모습으로 정교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이다. 이 연구 결과를 발견했을 때에도 그랬다.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세상만사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없는 듯하다.



아래의 유머는 더닝 크루거 효과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예시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학사: 난 무엇이든 다 안다.
석사: 내가 모르는 것도 많다.
박사: 난 아무것도 모른다.
교수: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말하면 다들 믿는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인지 편향의 하나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로 인해 능력이 없는 사람은 환영적 우월감으로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는 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소 평가하여 환영적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크루거와 더닝은 “능력이 없는 사람의 착오는 자신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의 착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글감이다! 잊기 전에 얼른 남기고 싶어 관련 조사를 한다. 사례와 명언이 넘쳐난다. 수집하고 기록하니 교양인으로서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은 뿌듯함과 지식과 지혜가 속속들이 쌓이는 느낌까지 든다. 고작 자료 조사를 위해 글 몇 줄 읽어내려갔을 뿐이데 이 분야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지금 나는 바로 요 '우매함의 봉우리' 언저리에 자리 잡은 상태이다. 우연히 발견한 문맥과 맥락에 쏙 맞는 명언을 발견하자 이 글은 곧 대박이 날 것 같은 희망회로가 돌려진다. 이제 나의 생각을 적절히 녹여 쓰기만 하면 된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쓰면 쓸수록 막힌다. 적절한 단어를 사용한 건지, 문맥에 맞게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대박의 조짐은 사라지고 필력의 한계를 마주한다. 생각의 전환도 할 겸 덮어뒀던 책을 다시 펼쳐 쓸만한 내용이 있는지 읽어본다. 마음이 조급해지며 블로그와 브런치, 구글도 기웃거려 본다. 어쩜 이렇게 요약을 잘했을까, 위트와 센스는 또 어떻고...


적 허영심은 높아져 가는데 분석력과 통찰력은 그에 한참 못 미치니, 고작 한 단락 쓰고 막혀 중단 중에 있다. 알면 알수록 부족한 부분만 확대되어 다가올 뿐이다. 나는 학사에서 석사로, '절망의 계곡'에 진입하고 있다. 오히려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자신감은 처음보다 훨씬 떨어진 상태가 된 것이다.






어디 글쓰기뿐이겠는가.

위대하고 가치롭고 이 세상 그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그래서 그만큼 버겁고 불안하고 두려운, 아이를 키우는 육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첫째 행복이를 임신했을 당시, 나는 부푼 꿈에 젖어 있었다. 이유식은 무조건 '아이 주도 이유식'으로, 삶은 브로콜리와 당근을 마음껏 만지며 아가와 엄마가 모두 행복한 맘마 시간을 갖겠다고, 수면 의식은 꼭 '프랑스 식'으로 말이다. 책으로 육아를 배웠으니 행복과 기쁨, 설렘에만 빠져있던 때였다. 부모가 간절히 원해서 낳는 아기인데 아기 키우는 게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엄마들의 고충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입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나는 절대 저러지 않을 거야, 허황된 꿈들은 몇 주만에 와장창 깨졌다. 5분이라도 더 자야 했고 더 누워있어야 했다.


온 가족의, 특히 친정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와 희생으로 수월한 워킹맘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 3시간 정도만 함께 할 수 있었던 행복이와의 시간은 너무나 짧고 소중했기에 화가 날 틈이 없었다. 아이에게 화가 난다는 엄마들이 이해가 안 갔다. 어른이 어떻게 아이한테 화를 낼 수가 있지,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감정이 있는데... 조곤조곤 다정하게 말하면 다 알아듣는데 말이야, 물론 이것도 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일 두 아이를 보게 되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는 게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무지했고 오만했었는지 지금이 되어보니 비로소 보인다.


내 아이에 대해서도 똑같다. 12년간 두 아이를 키워보니 내 자식들, 엄마인 내가 모르는 부분도 많더라. 그러니 자식 키우는 일에서 만큼은 '내 아이에 대해서 장담하지도 말고, 다른 아이에 대해서 험담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식 일에 있어서만큼은 객관성을 가지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부터 출발이다. '콩콩팥팥'의 좋은 표본이 될 수 있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엄마인지, 부모인지 자꾸 돌아봐야 한다. 아프고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과 상황이 수시로 찾아오겠지만 어제보다 0.1%라도 성장하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단어의 품격을 연재하면서도 더닝 크루거 곡선을 그대로 체감 중이다. 말과 언어, 단어의 중요성을 알게 될수록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있어 신중해진다. 단어 뒤에는 그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흔적을, 지문을, 정체성을 남기는 단어들을 바라본다.

틈만 나면 관련 자료를 읽게 된다. 내 지식과 혜안의 한계가 느껴지기에.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단어의 사생활>



무심코 내뱉는 하찮은 단어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 중에서 우리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려주는 단어는
가장 짧고 잊기 쉬운 단어일 때가 많다.
전 세계 언어 공통으로 대명사와 조사 역할을 하는 단어
그리고 그 밖의 숨어 있는 단어들이 우리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알려준다.
<단어의 사생활>







출처: 아이스크림 홈런, Un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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