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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Apr 09. 2024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우리 OO 이는 너무 예민해. 소리에도 엄청 예민한데 촉감에도 엄청 까다로워. 옷 고르는 것부터 일이야."

"맞아, 아이마다 유독 민감한 부분이 있지. 우리 사랑이도 옷 입는 거에 그래, "

"그래? 사랑이는 안 그럴 것 같은데."

"아니야. 행복이도 그랬어. 나도 실랑이하기 싫어서 옷 입는 거는 그냥 애들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거야."

"오늘도 바지 입다가 불편하다고 짜증 내면서 여러 번 갈아입다가 셔틀 늦을 뻔해서 버럭 했어."

"맞아, 셔틀 시간 맞춰서 준비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야, 사실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려워."

"사회성 키운다고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게 하는데 그것도 너무 스트레스야."

"왜, 무슨 일 있어?"

"그나마 잘 노는 날은, 손에 꼽긴 해도, 괜찮아. 엄마들이랑 계속 얘기해야 하니 부담스럽지만 애만 즐겁다면 뭐... 그런데 안 그런 날이 훨씬 더 많으니. 친구들이랑 트러블 생기면 화해시켜야 하고, OO이가 예민하게 굴면 그래서 겉도나 싶고, 나는 보이거든, 어울린다는 느낌보다 겉도는 게. 그런 거 보면 짠하고 속상하고. 애 친구 엄마들한테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고, 이 동네 말도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신경 쓰이고 눈치 보이고... 그런 날은 진짜 기가 쫙 빨려서 집에 오는 길에 애한테 짜증 내고 괜히 화나고."

"힘들지,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지켜보는 보통 일이 아니야."

"응, 친구들 주위만 서성이다가 끼지 못하고 괜히 웃고 실없는 소리 하고, 그런 모습 보기가 너무 힘들어. 그러다 상처받고, 그럼 집에 가자 하면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 하고. 그냥 별 트러블 없이 잘 어울렸으면 좋겠는데 예민하니."

"잘 놀다가도 티격태격하고 소외당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라는 건데 막상 그 현장에 있으면 엄마로서 참 쉽지 않지. 고된 일이야."

"언니도 그래?"

"그럼, 다 비슷해, 잘 지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려움이 있지."







"아이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잖아. 친구랑 트러블 나는 게 꼭 OO가 예민하게 굴어서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그리고 OO 엄마가 당연히 잘 알고 있겠지만, 내가 보는 OO는 섬세해.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잘 캐치하고 배려심도 많고. 장점이 많아. 나도 제일 어려운 부분이지만,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면 OO 이는 잘 성장할 거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럴 거고."

"응, 언니 말 듣고 보니... 맞아. 기다려주면 되는데 그 시간을 못 참고 자꾸 잔소리하고 다그쳤어. 분위기 망치는 것 같아서."

"항상 좋을 수 없어. 그런 상황 보면 불편하고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고, 알지. 그래도 그건 나(엄마)의 문제더라고. 그러니 스스로 풀어내야 하고. OO, 잘할 거야. 이렇게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노력하는 엄마가 있잖아."

"맞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서 그랬나 봐. 언니, 고마워. 뭔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아."





열과 성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에 대해 공부하고 잘 키우고 싶어 무진장 애쓰는, 우리네 엄마다. OO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부분 공감했다. 정도와 상황의 차이만 있을 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잘 키우고 싶은 만큼, 나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큼, 엄마는 늘 불안하다. 여유와 기품이 묻어 나오는 그녀도, '다둥이 엄마가 어찌 저리 평온해 보이지?' 호수 같은 잔잔함 속에 단단함까지 갖춘 그녀도, A부터 Z까지 완벽해 보이는 그녀도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 한 구석엔 늘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목숨만큼 사랑하는 '나의 이 작은 사람'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잘하고 있는 걸까,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다. 나로 인해 아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고 아득하다. 어려서는 아이의 발달로 엄마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평가당하고, 아이가 커가면서는 성적으로 엄마로서의 능력치를 증명해내야 한다. 재단당하고 비교당한다. 아닌 걸 알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가한다. 아무리 주관이 뚜렷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엄마라 하더라도, 자식일 앞에서는 속절없다.








첫째 행복이가 꼬꼬마였던 시절, 운명처럼 내게 온 글귀는 흔들리고 무너질 때마다 꺼내놓고 되새기는 '우황청심환'이다.


믿는 대로 말하는 대로 보는 대로
아이는 자라고 있습니다.
그저 따스한 시선으로,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바라봐주면 됩니다.  



주문처럼 되뇐다.

예민하다는, 까다롭다는 시선 너머 반짝이는 아이의 장점을 찾는다. 섬세하고 신중하고 조심성 있고 배려심 깊고 따스한, 5월의 햇살 같은 우리 행복이. 나는 이대로 아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행복이는 정말 그렇게 성장 중이다.


실버리이닝(Silver Lining), 짙고 어두운 장막 끝으로 비치는 한줄기 은색 위안의 선.

엄마의 마음속 먹구름을 걷어내면 그 자체로 반짝이는 아이가 보인다. 그렇게 바라봐주면 된다. 아이는 빛을 찾기 시작한다. 매일 흔들리는 나를 위해, 그리고 그녀들을 위해.





아이는 본 대로 물드는 존재다.
<엄마 수업>


“모든 좋은 일은 말버릇에서 시작된다!”
<말버릇의 힘>


작은 것의 소중함이 먼저입니다.
세상에는 사소하고 아주 작은 모든 것들이 모여서 크고 거대한 것을 만들죠.
진심으로 좋은 점을 드러내어 말해주세요.
<이 매력적인 친구와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출처: Unplash,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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