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아_ 前 아이돌 연습생, 172cm 48kg, 25세, 모델, 비서, 해외 항공사 승무원 지망생
“어머, 신생아가 진짜 예쁘다.”
“눈도 똘망 똘망하고 이목구비가 어쩜 이래. 피부도 고새 뽀얘졌네.”
태어날 때부터 채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쭈글쭈글하고 울긋불긋한 신생아에서 빠르게 벗어나더니 태어난 지 삼 일이 지나자 큰 눈과 오뚝한 코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채아는 엄마, 아빠의 보물이자 가족과 동네의 자랑이었다. 책상과 사물함에는 구구절절 써 내려간 채아를 향한 마음이 담긴 쪽지와 편지, 간식거리와 선물들이 예쁜 봉투에 포장되어 담겨 있었다. 버스를 타면 남학생들은 서로 자리를 양보하려고 안달이 났고, 학교까지 쫓아오거나 하교하는 채아를 기다리다 연락처를 물어보는 남자들이 즐비했다. 길거리를 걸어갈 때면 연예계 기획사 캐스팅 담당자들에게 명함을 받았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엄마를 도와 떡볶이를 서빙하던 채아를 발견한 탑스카이엔터테인먼트의 김실장은 그녀가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현재 활동 중인 배우들 중 탑 쓰리로 불리는 양지원을 비롯해 여러 유명 탤런트와 모델들을 발굴한 김실장이었다. 연예인을 시킬 생각이 전혀 없던 채아의 부모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김실장의 거듭된 간곡하고 진정성 있는 설득에 그의 안목과 탄탄한 회사를 믿고 채아를 맡겨 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김 실장은 회사에 큰 키와 남다른 비율이 돋보였던 채아를 센터로 ‘모델 비주얼 아이돌 그룹’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늘 촉과 감이 좋았던 김 실장을 믿고 송 대표는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열여섯, 채아는 눈부시게 예뻤다. 그렇게 그녀는 영화배우와 모델들이 메인인 탑스카이엔터테인먼트의 첫 번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
채아를 포함한 5명의 멤버로 구성된 팀이 결성되었고, 모델 비주얼 아이돌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멤버들 모두가 여리여리한 몸과 큰 키, 작은 얼굴의 소유자들이었다. 유명 프로듀서와 안무가들이 합심하여 대박 예감의 후보곡들도 하나둘씩 완성되어 갔다. 마음에 드는 노래와 안무가 너무 많아 데뷔곡 결정이 어려울 정도였다. 회사에서도 채아는 주목받는 연습생이었고, 그녀의 팀은 곧 데뷔가 예정된 분위기였다. 하루 10시간씩 연습하고 쪽 잠을 자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도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채아와 멤버들에게는 디데이(D-day)가 있었다.
“그거 알아? 천주아, 회당 출연료가 삼천이래.”
“삼천? 삼천… 만원???”
“응, 장난 아니지?”
"와..."
“얼마 전에 쇼 프로그램 30분 출연하는데 3시간 녹화했다고 엄청 난리 쳤대. 저 돈을 받으면서.”
“그럼 시급이 천만 원인 거네.”
“그렇지. 탄산수 광고로 그 뭐냐, 인질로 나왔던 영화 있잖아, 거기에 캐스팅되고 대박 나면서 몸값이 어마어마하게 뛰었데.”
“부럽다. 나는 시급 십만 원 이어도 진짜 좋을 것 같은데. 한 시간에 천만 원을 벌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도 안 간다.”
“그렇지? 정말 너무 부러워. 우리는 언제 저리 되나? 나 이번 달에도 잔고가 간당간당해. 카페에서 받은 아르바이트 비로 피부과 결제했더니. 저렇게 탑이 되면 피부과, 성형외과 시술도 다 회사에서 내주겠지?”
“규리야, 우리도 될 수 있어. 탑 아이돌!”
“그럴까? 그래야지! 이렇게 빡 세게 연습하는데.”
“파이팅, 파이팅!!”
“역시 박채아, 긍정의 아이콘.”
"히히, 연습 끝나고 뭐 먹을까? 내가 쏜다!"
데뷔를 하고 활동을 시작하면, 그날만 온다면 채아와 멤버들이 꿈꾸는 삶을 살 것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완벽한 무대를 선 보이고,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와 팬미팅을 하고… 아아, 이왕이면 해외에도 진출해야지, 뉴욕 카네기 홀, 음 그리고 유럽에 진출하자마자 대히트를 친 퍼스트 두어 (First Doer, 6인조 보이그룹)가 공연한 알버트 홀에서도 공연해야지. 유럽 여행 한 번도 못 해본 엄마랑 아빠, 할머니도 꼭 초대해야지, 일등석으로!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행복했다.
데뷔를 목전에 앞두고 멤버 두 명이 건강상의 이유와 일신상의 사유로 급작스럽게 팀을 나가며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또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멤버들도 충원되었고 활동을 위한 관리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밤낮 없는 연습 생활로 트러블이 난 멤버들은 진정 케어, 까무잡잡한 피부톤을 가진 멤버는 탄탄함과 섹시함이 부각되게 태닝을 뽀얀 피부의 멤버들은 화이트 태닝으로 각자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무대 및 인터뷰를 위해 탈부착 교정기로 바꾸고 치아 미백을 받고 잇몸 케어와 눈 미백까지 받았다. 다이어트는 숨 쉬듯 매일의 미션이었다. 원래도 날씬한 그녀들이었지만 연습생 초기보다 적게는 3kg 많게는 7~8kg을 감량했다. 얼굴, 체형, 피부, 노래, 안무, 의상, 무대 세팅까지 완벽에 완벽을 가해 준비했다. 이제 진짜 데뷔가 코 앞이었다. 디데이가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수요일 저녁,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사 대표인 송지훈이 배임 및 횡령 혐의로 피소되었다. 임원들도 줄줄이 들어갔다. 채아네 팀의 데뷔는 다시 흐지부지 되었다. 순식간에 4년이 흘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