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움 Sep 24. 2024

[소설] 헬로 시스터_지민 그리고 지수의 몸 (5)

<지민 그리고 지수의 네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39





<다섯 번째 이야기>

지민의 몸_이란성쌍둥이 엄마,  합창단 소속 피아니스트,  프리랜서 피아아니스트, 33살, 164cm 65kg

지수의 몸_대기업 소속 큐레이터, 30살, 167cm 50kg





“이따 ㅅㅅ 먹으러 갈까요?”

“오늘 가능한 거예요?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너무 속상했어요.”

“보고 싶어서^^”

“바로 가게요. ㅅㅅ 뭐 먹고 싶어요?”

“딸기 맛 도너츠^^.”

“거기로 갈게요. 빨리 ㅂㄱ 싶어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민차장님이라는 상대와의 카톡은 하트로 끝나 있었다. 그 전의 히스토리는 모두 지워져 있었다. 휴대폰을 집어 든 오른손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왼손으로 받쳤다. 지민의 옷을 잡고 있는 태건이의 눈을 보자 정신이 들었다.



“엄마, 왜 그래요? 세 번이나 불렀어요.”

“그랬어? 미안해 아가.”



지민은 덮고 가야 했다. 형준의 방황일 거라고 믿었다. 자신만 눈 감으면, 한 번만 참고 넘어가면, 아이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가정을 지킬 수 있을 테니.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무너질 수 없었다.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노력한 만큼, 이번에도 노력하면 형준이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기대를 걸었다. 그럼에도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만 보며 생활을 해봐도 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단 한순간도. 쌍둥이들을 돌보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자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무너졌다. 무너진 틈 사이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분노와 슬픔이 마구잡이로 찾아왔다. 증오와 분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지민에게 수치심과 자책감, 우울함이 밀려왔다. 유일하게 바라고 바라던 평온한 일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민에게는 이제 그런 것들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이 있기에 버텨냈다. 세상에서 지민을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던 형준은, 이제 그녀를 가장 비참하고 초라하고 불행한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형준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체하기 힘든 실망과 증오가 일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숨을 쉬는 내내 떠오르는 악몽을 혼자서 견뎌내고 떨쳐내야 했다. 퇴근 후 형준에게서는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체취가 나는 듯했고, 형준이 속옷을 벗는 모습을 목도할 때면 뒷목이 뜨거워지며 구토가 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지금은 아니었다. 지옥 같던 하루하루도 흘러가고 있었다. 뜬 눈으로 지새우던 밤들을 지나니 이제는 네다섯 시간은 잠도 들었다. 태건이, 태형이를 보며 웃음도 나왔다. 먹고 싶은 음식도 하나둘씩 떠올랐다. 괜찮아지고 있는 듯했다. 지민이 그토록 바라던 일상이 돌아오고 있었다.  






두 번째 카톡을 보았다. 형준이 애걸복걸하며 갖은 애교로 잠자리를 갈구하던 그 밤은 둘째 태형이가 폐렴으로 입원한 날이었다. 더 이상은 아니었다. 

형준은 경리 팀 대리라고 했다. 야근하면서 몇 번 다 같이 회식만 했던 사이라고 했다. 

형준은 딱 한 번이었다고 했다. 회사 적응하는데 많이 도와준 직원이라 고마워서 밥 한번 같이 먹다 술 김에 그렇게 됐다고 했다. 상대도 남편이 있는 여자라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장문의 각서까지 쓰며 빌었다. 태건이, 태형이를 봐서 이번 한 번만 넘어가 달라고 자신을 믿어달라며. 형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지민은 결심했다.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달라져야 했다. 고통과 분노와 수치심으로 망가져버린 몸부터 추슬러야 했다. 생활비로 쓰던 지민의 월급을 저축으로 돌렸다. 형준과 상간녀와의 카톡을 찍은 사진들, 형준의 자필 각서, 거짓말이 의심되는 모든 정황들을 기록하여 메일 함에 보관했다. 추가로 아르바이트도 구했으며,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곱씹고 자책하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 구렁텅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요즘 많이 바빠?”

“응, 조금.”

“이 서방 좋아하는 갓김치랑 총각무 가지러 와. 저녁도 먹고 가고.”

“엄마 어깨도 아프다면서 무슨 김치까지 담갔어?”

“이모가 시골에서 갓 좋은 거 있다고 해서, 주말에 이모랑 같이 했어.”

“…….”

“지민아?”

“.. 응, 엄마, 고마워. 금요일쯤 갈게요.”

“잘 지내는 거지?”

“그럼.”

“그래, 들어가.”



"언니, 무슨 일 있어? 엄마가 언니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

"아니야. 그날 컨디션이 좀 안 좋았어."

"요즘 집에도 안 오고, 무슨 일 있음 바로 얘기해. 동생 좋은 게 뭐야. 나 고민 있을 때 언니한테 제일 먼저 털어놨던 거 알지?"

"말이라도 고마워, 지수야."



지수를 만난 지민은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지민의 입에서 나왔다. 그토록 닮고 싶던 언니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다. 지수는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선배를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알릴 사람들을 찾아갔다. 말이 통하지 않아 형준과 상간녀와의 카톡을 보여주었다.

“여자가 먼저 꼬리를 친 거겠지. 오죽했으면 우리 형준이가 그랬겠니. 그리고 너도 젊은 애가 진즉 살도 좀 빼고 했어야지. 애 낳았다고 그렇게 퍼져 있으니 남자가 밖으로 도는 거야.”

역시 형준의 아빠였다. 





백합같이 곱고 환하게 빛나던 언니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언니의 행복은, 지수로서는 상상조차 안 되는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음에 한쪽 가슴이 시린 아침이었다.






to be continued










[사진 출처: 픽사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