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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Sep 17. 2024

[소설] 헬로 시스터_지민 그리고 지수의 몸 (3)

<지민 그리고 지수의 두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36





<세 번째 이야기>

지민의 몸_이란성쌍둥이 엄마,  합창단 소속 피아니스트,  프리랜서 피아아니스트, 33살, 164cm 65kg

지수의 몸_대기업 소속 큐레이터, 30살, 167cm 50kg





형준의 부모는 참하고 지고지순한 지민을 마음에 들어 했고, 가끔씩 그녀의 노고에 고마워하기도 했다. 집에는 자고로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하는데, 이 씨 집안 대들보인 형준을 정성껏 보필하는 모습이 철딱서니 없고 자기 위주인 요즘 애들과는 다르다며. 지민은 새벽에 출근하는 날에도 형준이 최대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두뇌 회전과 기력 보강에 좋다는 각종 재료들로 끼니를 준비해 놓았다. 잠을 쪼개며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마땅히 해야 된다고 여겨지는 그림자 같은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했다. 본인이 좋아서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민을 평생 지켜봐 온 가족들은 알 수 있었다. 형준의 부모가 지민에게 거는 기대에 부합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해내고 있음을. 신 씨인 지민이 이 씨 집안의 대소사에 가장 열심히인 모습은 그들에게 점차 당연한 듯 익숙해졌다. 잘하면 잘할수록, 애쓰면 애쓸수록 지민의 노동과 노고는 당연시되었다. 더 이상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아니, 젊은 애가 몸이 그리 약해서는. 그러니 임신도 자꾸 그렇게 되지. 손주 며느리가 와서 제사상 준비를 해야지 원.”

형준의 아빠는 갈비찜을 먹다 말고는 어금니에 낀 고기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 빼며 공연히 쏘아 댔다. 삼일 째 열이 떨어지지 않아 시댁 행사에 처음으로 빠진 지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건너 식탁에서 갈비를 뜯고 있던 형준의 엄마도, 잡채를 먹고 있던 시누이도, 형준의 아빠 옆에서 불고기 국물에 김치를 얹어 두 그릇째 밥을 먹고 있는 형준도, 그의 문장을 바로잡지 않았다. 



형준은 가끔, 아주 가끔 그의 부모- 주로 그의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로 인해 지민의 표정이 놀라거나 당혹스러워지는 걸 알아챘지만 그뿐이었다. 지민도 본인의 당황하는 모습을 형준이 눈치챘다는 걸 알았지만 앞으로는 표정 관리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형준의 부모와 자신 사이에서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형준의 처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간혹, 정말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형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더 노력하면 어른들도 나아지시겠지, 희망적으로  바라보았다. 선을 넘는 발언은 빈도가 잦아졌고, 지민은 자꾸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래도 그렇게 나쁜 분들은 아니라고.





5년 간 온 힘을 쏟아부었던 형준의 고시 공부는 불합격 통보를 받고 끝이 났다. 그 사이 습관성 유산을 진단받은 지민은 극도로 몸이 안 좋아졌지만 일을 놓지 않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피아노를 치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면 마음은 편안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살림을 하고 형준을 뒷바라지했다. 더 이상 고시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형준의 선언에도 지민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형준이 좋아하는 햄을 잔뜩 넣은 부대찌개와 탕수육을 만들어 상을 차렸다. 형준은 전공과는 무관한 영업관리 직으로 입사했고 8개월 만에 퇴사했다. 이직 준비를 한다며 몇 개월을 쉬다 집 근처 회사에 재취업을 하였다. 고작 이런 곳에서 일하려고 몇 년을 허비했던가, 형준은 출근길이 고통스러웠고 두 번째 회사는 5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입사와 퇴사, 이직 준비가 반복되며 형준은 삼십 대 후반이 되었다. 지민은 인공 수정으로 쌍둥이를 임신하였다. 이번에는 기필코 지켜 내리라, 지민은 처음으로 일을 쉬었다. 아빠가 필요할 때 쓰라고 넣어 준 비상금 통장이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쌍둥이를 임신하고도 아침을 차리고 출근을 하던 지민은 퇴근 후에도 그녀가 차려 놓은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낄낄대는 형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보…”

“응?”

“아빠 대학 선배가 하시는 회사에 영업직 티오가 났는데 지원해 보겠냐고…?”

“어떤 덴데?”

“여기.”

“뭐야? 매출도 그렇고 직원 수도 그렇고 엄청 작은 회사잖아. 이런 데는 비전이 없어. 내가 전 회사를 왜 그만둔 건데? 조금 더 준비해서 큰 곳에서 일할 거야.”

“알았어. 내가 아빠한테 잘 말할게.” 

“지난번에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버님이 계속 이러시면 부담스러워. 알아서 하고 있잖아, 내가 알아서 한. 다. 고.!”


힘주어 말하며 형준의 입에서 큰 소리가 나오자 지민은 깜짝 놀라 배를 만졌다. 배 속의 아이들은 잘 있었다. 






“어 형준이 아니야?”

어어…”

“어떻게 지내?”

“뭐… 잘 있어. 너는?”


고시원에서 알게 된 기한은 사법고시에 합격에 대형 로펌에서 일하며 잘 나가는 이혼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기한을 만난 후 형준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더욱더 깊어졌고, 매사에 늘 짜증과 화가 배어 있었다. 본인의 처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과거에 어느 시점에 붙잡혀 있는 형준의 모습을 볼 때면 지민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아이들도 곧 태어나는데 자기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지민은 불안했지만 형준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벤트가 많다는 쌍둥이 임신 중이라 늘 조심하며 지냈는데 자궁수축 조산 증상이 보여 급하게 입원까지 하게 된 지민은 거의 누워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몇 주 사이 지민의 몸은 급속도로 살이 붙었고 30kg 가까이가 쪘다. 화장실 갈 때만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누워 있어야 했기에 온몸이 힘들었지만 건강하게 아이들을 출산할 수 있다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아이는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지민은 황홀했고 감사했다.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 즐기라는 말이 전혀 와닿지 않을 만큼 하루하루가 소중했고 행복했다. 그럼에도 아이를 기른다는 건, 출산의 기쁨과는 별개이긴 했다. 육아는 기존에 그녀가 살아왔던 삶과는 판연히 다른 차원의 세계로 그녀를 데려갔다. 거기에 동시에 두 명의 아기를 돌 봐야 하는 쌍둥이 육아는 제 아무리 지민이라고 해도 벅차고 힘든 일이었다.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자는 날이 이어졌고 편하게 밥 한 끼 먹어본 적이 언제인 지 까마득할 정도로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종종 거리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손목이며 발목이며 어디 하나 성한 곳도 없었다. 거기에 돈 들어갈 곳은 왜 이리 많은 지… 구매품목을 확인해 보면 사는 것이라고는 기저귀, 젖병 같은 아기 용품뿐인데 생활비 통장의 잔액은 훅훅 줄어들었다. 지민과 쌍둥이 육아를 한다는 명목 하에 형준은 구직 활동에도 소홀해져 갔다. 그렇다고 한 아이의 육아를 전담하지도 않았다. 지치고 고단한 지민은 아무 약속도 지키지 않는 형준에게 점점 실망했고 불안했고 두려웠다. 투자를 한다면 방으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는 형준의 뒤통수가 한심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서는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두 아이가 번갈아 가며 토를 하는 바람에 밤새 30분이나 잤나, 꺼끌한 눈을 겨우 떠 잔뜩 쌓여 있는 이불과 아이들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었다. 형준은 그 밤에도 코를 골며 잤다.  



“아침은 뭐야?”

“…”

“아침 메뉴가 뭐냐고?”

“애들 어제 계속 토한 거 알아? 나 한숨도 못 잤어.”

“그래? 지금은 괜찮아?”

“…. 언제까지 준비만 하고 있을 거야? 육아도 같이 안 해 취업 준비도 안 해 도대체 오빠는 뭐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뭐 팽팽 놀고 있는 거야? 이것저것 투자 관련 공부하고 있는 거 안 보여? 그리고 내가 애들 볼 때 뭐 해달라는 거 안 해 준 적 있어? 도와 달라는 거 안 해 준 적 있느냐고?”

“도와달라고 말하기 전에는 먼저 뭐 한 적 없잖아. 정작 뭐 부탁하면 급한 거 있다고 그러고. 그리고 아빠가 일자리도 몇 번을 알아봐 주셨는데 그때마다 거절하고, 이제 엄마, 아빠 보기도 민망하고 죄송스러워.”

“결국 그거야?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거야? 누가 알아봐 달라고 했어? 아버님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그러신 거잖아. 것도 괜찮은 데도 아니고.”

“뭐라고? 진짜 말하면 좋은 소리 안 나올 거 같으니깐 그만하자. 오빠랑 말하면 가슴이 답답해.”

“아버님, 어머님이 이것저것 해 주셨다고 그러는 거야?”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런 걸로 말씀하실 스타일이야? 우리 친정에서 그만 받고 나도 잘 사는 모습 좀 보여 드리고 싶어.”







to be continued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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