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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Sep 20. 2024

[소설] 헬로 시스터_지민 그리고 지수의 몸 (4)

<지민 그리고 지수의 세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37





<네 번째 이야기>

지민의 몸_이란성쌍둥이 엄마,  합창단 소속 피아니스트,  프리랜서 피아아니스트, 33살, 164cm 65kg

지수의 몸_대기업 소속 큐레이터, 30살, 167cm 50kg




“지수야, 무슨 돈을 보냈어?

“이번에 인센티브가 꽤 나왔어.”

“얼마 전에도 태건이, 태형이 선물도 사줬으면서.”

“언니 그렇게 열심히 돈 벌어서 정작 언니한테는 쓰지도 못하잖아. 태건이, 태형이 거 사지 말고, 형부 것도 사지 말고, 이 돈으로는 언니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 하고 싶은 거 있음 하고. 아, 언니 운동 시작 해 봐. 허리랑 무릎도 안 좋은데 제대로 PT 받아도 되고 아니면 필라테스 등록해도 되고."

“내가 너한테 해줘도 모자랄 판에 너한테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서 그래. 이 돈은 받은 것으로 할게.”

“언니! 마음도 받고 돈도 받아. 맨날 괜찮다 괜찮다 하지 말고. 몸도 좀 아끼고. 아니면 내가 운동 알아보고 언니 거 등록한다.”

“아니야. 내가 알아볼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렇지. 이제 형부도 취업하면 훨씬 나아질 거야. 우리 걱정하지 마.”

“응. 이번에는 형부가 진득하니 일하기를 바라, 제발. 언니 고생 좀 그만 시키고.” 

“그러겠지. 형부도 뭐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언니만 하루종일 종종 거리잖아.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렇다고 형부가 엄청 고마워하지도 않고, 집안일을 맡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언니가 다 하잖아. 애들 보는 것도 살림도.”

“…” 

"가끔 정말 형부가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워지려고 해."



잡티 하나 없이 뽀얀 피부에 백합처럼 고와 어디서든 눈에 띄는 지민이었다. 꽃 같이 예쁘고 공부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잘 놀아주는 언니가 있어 참 좋았다. 베프와 다투고 속상한 날, 몇 달을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져 좌절한 날, 믿었던 친구에게 뒤통수 맞은 밤, 꼴 보기 싫은 애가 잘 돼서 질투로 가득 찼던 날, 괴롭고 속상하고 우울한 밤에는 늘 언니가 있었다.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수많은 고민들에 지민은 항상 귀 기울여 들어줬고, 공감해 주었고 위로해 주었다. 지수의 친구들도 자상하고 다정한 지민을 잘 따랐다. 본인 언니, 오빠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바꾸고 싶어 했다. 지수는 그런 언니가 있어 행복했고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운명 같은 만남, 물망초 같은 사랑을 꿈꾸던 지민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형준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지민은 지수에게 가장 먼저 형준을 소개해 주었다. 알면 알수록 지수는 형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니가 너무 아까웠다. 조건도 조건이었지만 형준을 향한 지민의 애정과 마음 씀씀이에 반의 반도 못 미치는 듯한 형준의 태도를 몇 번이나 목도하며 언니가 이 첫 번째 연애를 통해 남자 보는 눈이 바뀌기를 바랐다. 지민은 훨씬 더 사랑받고 존중받을 만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렇게 해 줄 남자들이 주변에 있는데 왜 형준같은 남자를 만나는 걸까, 지수는 지민에게 묻고 싶었다. 그럼에도 지민의 눈에는 형준뿐이었다. 그저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지민에게 누가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언제나 지민의 뜻을 존중하고 응원하던 엄마 아빠조차도 반대하는 결혼이었다. 처음으로 지민은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형준과 결혼을 하였다. 상견례를 했던 식당에서부터 결혼식의 진행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지수는 형준의 부모의 모습에 더더욱 우려가 깊어졌다. 묘하게 선을 넘는 발언으로 식사 분위기를 엄하게 만들던 형준의 아빠, 그런 남편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그의 엄마, 놀라지도 않는 그의 동생들.


지민이 저렇게 살게 되지 않기를, 이 불길하고 불쾌한 예감이 절대로 들어맞지 않기를 바라며 지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민을 위해 지수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축하와 응원뿐이었다.


“형부, 언니 행복하게 해 줘요.”





결혼 11년 차, 지민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아이와 남편까지 책임져야 하는 생계형 가장이 되어 있었다. 입 짧은 아이들이 그나마 잘 먹는 소고기는 한우 안심으로 사면서 정작 본인이 그리 좋아하는 잡채는 금 값이 되어버린 시금치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시금치를 들었다 결국 세일하는 부추를 샀다. 지수의 쇼핑 메이트였던 지민은 결혼 후 그 좋아하던 쇼핑은 물론, 여행도 마음껏 다니지 못했다. 여행 비용도 물론 부담이었지만, 수시로 불러대는 시아버지의 호출 때문에 예약해 둔 여행 일정까지 몇 번이나 취소해야 했다. 



결혼하면서는 남편과 시가를 챙기느라,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육아와 살림을 하느라 돌보지 못했던 지민의 몸과 마음에 서서히 탈이 나기 시작했다. 아끼고 참고 견디는 삶은 지민에게서 생기를 뺏어 갔다. 이제 고작 서른 초반이었지만 임신과 유산, 쌍둥이 출산으로 십 년 넘게 방치되어 있던 피부는 잡티와 트러블로 족히 마흔은 되어 보였고 여리 여리하던 체형은 곳곳에 군살이 가득한 몸으로 변해 있었다. 






네 번째 회사인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며 형준은 달라졌다. 열의를 가지고 새로운 회사와 업무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끔찍이도 싫어하던 야근에도 불만이 없었다. 이제야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제대로 마음 잡고 일해 보려고 하는구나 했다. 잠시나마 형준을 한심하게 여겼던 지민은 미안했고 자신감과 열정 넘치던 예전의 형준으로 돌아온 것 같아 기뻤다. 새로운 팀에 합류하며 야근에 이어 철야와 주말 근무까지 하는 형준이 안쓰러웠다.


"이따 ㅅㅅ 먹으러 갈까요?”

이 메시지를 보기 전까지는. 






to be continued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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