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여름, 엄만 날 제주도에 데려갔다. 친가와 외가 모두 제주에 있었다. 가족 중에 또 누가 함께 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엄마가 나만 놓고 서울로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다음 달에 데리러 올 테니 혼자 있으라고 할 땐 아무렇지도 않았다. 놀아줄 친척이 많으니 오히려 좋았다. 내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으니 엄마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났으리라.
문제는 그날 밤이었다. 단칸방이었던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한창 놀고 있는데 할머니가 이제 그만 잘 시간이라며 자리에 누우라고 했다. 그리고 전등과 TV를 전부 끄셨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제주도 시골 밤'과 '칠흑 같은 어둠'은 동의어라는 사실을. 내겐 아직 잘 시간이 아니었기에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지만 눈을 감은 것보다 더 깜깜했다. 서울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어둠이었다. 게다가 고요하긴 또 얼마나 고요한지 마치 물속에 잠긴 기분이었다.
덜컥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내 상태 같은 건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았다. 울음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울어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이 눈물샘을 지배했다. 나 따위, 울어 봐야 괜히 할머니 할아버지 잠이나 방해하는 거겠지.
그러나 이튿날 동이 텄을 때부터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난 걸핏하면 울었다. TV를 보거나 친척들과 놀 땐 명량 쾌활하다가도 잠깐의 틈만 생기면 엄마를 찾으며 통곡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작은엄마였다. 아들만 둘인 작은엄마가 여자애인 날 예뻐해서 어디든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은엄마의 애 다루는 솜씨도 보통은 아니었다. 한 번은 작은엄마랑 귤을 따러 갔는데 어지간히 심심해진 나는 또 떼를 쓰기 시작했다.
"작은엄마, 가자~."
"가자? 가자, 과자, 아~ 꽈자 사달라고? 작은엄마 이것만 하고 사 주께이~."
"아니, 가게~('가자'의 제주도 사투리)."
"가게? 가게 가자고? 아~ 가게 가서 과자 사달라고? 작은엄마 이것만 하고 사 주께이~."
"아니이, 가자아~"
"가자? 과자 사 줘? 작은엄마 이것만 하고 사 주께이~."
그것은 끝나려야 끝날 수 없는 네버엔딩 스토리였다.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또 하루는 작은엄마랑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 졌고, 난 버스 안에서 습관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글을 뗀 지 얼마 안 된 내 눈에 빠르게 지나가는 간판들이 읽히니 신기하기도 했다.
작은엄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날 바라보았다. '엄마를 찾든지 간판을 읽든지 하나만 할 것이지, 누가 오씨 집안 종자 아니랄까 봐'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그보다는 만으로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애가 한글을 읽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애가 한글을 줄줄 읽는다고, 얘 천재 아니냐고, 형님도 알고 있었냐고 물었으니까. 엄만 가르친 적도 없는데 지가 알아서 뗐다고 우쭐댔다. 거기엔 짠한 내 노력이 숨어있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그리고 며칠 후에 날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얼마 후, 엄만 정말 약속한 날짜에 날 데리러 왔다. 엄마가 몰래 도망간 것도 아니고 약속한 날짜를 어긴 것도 아니었지만 난 그 후로 엄마 말을 잘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