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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29. 2023

아빤 좋은데 엄만 좀 그래.

아니 대체 쟨 누굴 닮아서 저래?

출생의 우여곡절 때문일까? 어린 시절 나와 엄마는 상극이었다. 엄마가 하라는 건 다 하기 싫고 하지 말라는 건 다 하고 싶었다. 엄마랑 한번 부딪혔다 하면 숨이 넘어가도록 울며 발버둥 쳤다. 지금 같았으면 <금쪽같은 내 새끼>에 '떼쟁이 둘째 금쪽이'로 출연하고도 남을 정도로 진상이었다.


엄마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 같은 고집불통을 붙잡고 옥신각신해 봐야 서로 못할 짓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내가 울음보를 터뜨릴 때마다 엄만 콧방귀를 뀌었다.


하루는 집 앞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데 엄마가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난 엄마의 시선을 끌기 위해 냅다 흙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었다.  엄마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난 승리를 만끽하며 빙그레 미소 짓고는 얼른 다시 우는 척했다. 내 입 주위엔 흙이 묻어 있었다.


"여기 봐라~."


무릇 엄마라면 헐레벌떡 달려와 재빨리 날 일으켜 세운 다음 흙을 털어주고 눈물을 닦아줘야 옳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엄마 손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찰칵'


엄만 재빨리 날 찍었다. 난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더 목놓아 울었지만 엄만 그저 귀엽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내겐 엄마의 손길도 너무 거칠었다. 지금은 힘이 다 빠져서 스스로 때도 못 미시는 엄마, 그래서 목욕탕에 가면 꼭 세신을 시켜드려야 하는 엄마지만 젊었을 땐 힘이 장사였다. 엄마가 머리를 감기거나 목욕을 시켜줄 때마다 난 너무 아파서 울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동네 사람들, 여기 사람 죽어요~!"


어디서 주워들은 멘트였는지는 몰라도 난 매일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물론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애 넷을 씻겨야 하는 엄마의 전략은 속전속결이었다. 아이들의 요구를 하나하나 들어주다 보면 끝도 없을 터. 어느 놈이 울든 말든 일단 후다닥 씻기고 등짝 스매싱 날린 다음 제자리로 돌려보내면 그만이었다.


나는 엄마가 하는 말도 영 못 미더웠다. 다섯 살 무렵인가? 어느 날 엄마랑 치과에 간 적이 있다. 엄마는 이를 뺄 건 아니고 선생님이 좀 보기만 할 거라고 했지만 난 그 말이 거짓말 같았다. 진료 의자에 누우라기에 일단 누웠는데 의자가 '징~'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다가 의자가 높은 위치에서 멈춘 순간, 난 그만 참지 못하고 폴짝 뛰어내려 잽싸게 달아났다.


"야! 어디 가! 거기 서!"


난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심지어 맨발이었다. 죽자고 달리며 뒤를 힐끗 돌아보니, 날 따라오다가 숨이 턱에 닿은 엄마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인도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흥! 쌤통이다!'


난 엄마를 비웃으며 슬슬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차를 두고 집에 도착한 엄마에게 빗자루로 얻어맞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엄만 아빠를 붙잡고 푸념했다.


"아니, 쟨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래? 왜 저렇게 고집이 세고 엉뚱하냐고! 암튼 유별나다니까."


그때마다 난 속으로 투덜댔다.


'누군 뭐 아닌 줄 알아? 나도 엄마가 좀 그래. 아빤 좋은데 엄만 좀 그렇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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