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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불패라는 신화

신화창조의 기원

by 송두칠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말은 한국에서 신화가 아닌 진리처럼 통용됩니다. 언론이나 부동산 전문가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국민들까지 과학처럼 믿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대출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습니다. 가계부를 쓰는 가정도, 회계장부를 만드는 기업도 모두 부동산 때문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작년 기준 총 1932조 5천억 원입니다.


▲ 가계고 기업이고 '부동산 불패신화'에 돈을 쏟아 부었다. 부동산업의 대출집중도는 타 업종 대비 압도적이다. (출처: MTN)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부동산으로 성공한 사례가 이루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떼돈을 벌었던 강남, 일산, 분당 땅주인들도 그렇고요, 재개발·재건축 바람을 타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차익을 누린 사람들도 그렇고요, 가까이는 불과 1년만에 몇 억씩 오른 아파트 시세를 목격하고 있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 강남은 정말 보법이 다르다. 1억도 2억도 아니고 7억이 올랐다. 세상에. (출처: 헤럴드경제)


이렇게 많은 실증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말합니다. '부동산 불패신화'는 '신화'라고. 이거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고 말이죠.


'부동산 불패신화'는 신화입니다. 그럴듯하게 과장된 얘기입니다.



요즘 세대는 공감하지 못하는 얘기인데요, 예전에는 짜장면이 대단한 음식이었습니다. 졸업식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 외식 메뉴였습니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1980년에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은 세전 71,000원이었습니다. 2025년 현재는 1,938,941원이니까 대략 지금의 3.6% 수준인 셈입니다.


한편 1980년 짜장면 가격은 416원으로 지금의 평균 가격인 7천원의 5.9%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짜장면은 지금 우리 체감보다 1.6배 이상 비쌌던 거죠. 아니, 당시는 외벌이가 대부분이었으니까 3배는 더 비쌌다고 봐야겠네요. 그러니까 아무 때나 먹을 수 없었죠.


▲ 아니, 요즘 짜장면 값은 7천원 보다 훨씬 비싼 것 같던데? (출처: 서울시)


이렇게 비싸진 건 짜장면 뿐이 아닙니다. 1980년 당시 영화 티켓값은 갓 2천원 수준이었고요, 쌀은 1가마니에 2만원, 휘발유는 리터당 2백원 수준이었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100이었고요(애초에 기준점이 1980년이다!), 지금의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1주에 42원이었습니다.


당시 막 미국 증시에 데뷔한 애플 주식의 가격은 지금 기준 0.51달러였습니다.


▲ 20년 전인 2005년 기준 자료인데, 이미 당시에도 물가 상승은 어마어마했다. (출처: 세계일보)


부동산 얘기를 하다 말고 짜장면이니 공무원 봉급이니 애플 주식 가격이니 같은 얘기를 하는 이유는 독자님들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바로 아파트만 비싸진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 2008년 어느 주부의 가계부. 오르지 않은 건 남편 월급뿐이었다고 한다. (출처: 매일경제)


아파트 값이 많이 오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비싸진 건 아파트 뿐이 아닙니다. 짜장면도 그렇고, 세상에 안 오른 게 없습니다.


즉, 물가가 올랐습니다. 인플레이션(inflation)입니다.



▲ 대한민국 인플레이션 계산기. 1952년 기준, 화폐 가치의 99.8% 가량이 증발했다. (출처: in2013dollars.com)


인플레이션이란 단지 물건 몇 개 품목이 비싸진 현상이 아닙니다. 경제 전반적으로 가격이 싹 다 올라서 화폐 가치가 떨어진 상황을 말합니다.


2000년에 3억 원이었던 아파트가 2025년에 9억 원이 되었다고 칩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아파트 값이 3배가 된 것 같습니다.


아, 물론 3배가 된 것은 사실이죠. 그렇지만 이건 단지 매매계약서에 찍히는 숫자일 뿐입니다. 이를 명목가격(nominal price)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만으로는 실제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2000년부터 2024년 사이에 물가가 2배 올랐다면, 아파트의 가치가 전혀 상승하지 않았어도 가격은 3억 원에서 2배 오른 6억원이 됐을 겁니다.


즉, 이 아파트의 진짜 가격 상승분은 2025년 화폐가치 기준으로 3억원이고요, 아파트 값은 3배가 아니라 1.5배 오른 셈입니다.


▲ 서울시 아파트 주택가격지수(매매)는 2000년 40.3에서 2024년 98.6으로 약 2.4배 증가했다. (출처: 서울시 공공데이터)
▲ 2000년에 40.3원이었던 물건은 2024년에는 73.9원을 줘야 살 수 있게 됐다. (출처: in2013dollars.com)


서울 아파트의 실질가격(real price)이 얼마나 올랐는지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2000년 40.3이던 주택가격지수는 2024년 98.6으로 2.4배 상승했습니다.


한편, 같은 기간동안 우리나라 물가 역시 꾸준히 올라서 2000년에 40.3원에 팔리던 물건은 2024년에 73.9원에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아파트 가격의 실질 상승은 2.4배가 아니라 약 1.3배에 그칩니다. 24년에 걸쳐 1.3배 올랐으니까, 연평균 실질가격 상승률은 1.1% 수준입니다.



자, 이제 다른 재테크들을 살펴볼까요.


사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을 버는 거잖아요. 그게 꼭 부동산일 필요는 없고요.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일단 주식입니다. 만약 1980년에 코스피 지수에 투자했다면, 2024년 기준 수익률은 16,700%입니다. 나스닥에 투자했다면 25,200%이고요.


애플 상장 당시 주식을 샀다면, 무려 185,889%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백만원만 묻어뒀어도 185억, 천만원만 묻어뒀으면 1,859억 원입니다.


▲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숫자인가?! 연이율 20%대라니! (출처: MBN)


예금은 어떨까요. 지금은 은행 통장에 돈 넣어두는 사람을 바보 취급 하잖아요. 하긴, 이자율 3%도 받기 힘든 요즘 상품들을 생각하면 그런 취급이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이랬던 건 아니죠. 비록 당시의 물가상승률을 고려는 해야겠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20% 이상의 금리가 흔했고요, 1990년대도 두 자리수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만약 1980년에 연복리 20%짜리 정기 예금을 들었다면 2024년 기준 수익률은 얼마일까요. 애플의 수익률을 아득히 뛰어넘는 304,711%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숫자죠.


그 외에도 재테크할 방법은 많습니다. 적금도 있고요, 국채도 있고요, 금테크도 있습니다. 알고보면 정말 많습니다.


▲ 2025년 대한민국에도 20%짜리 이자율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 (출처: MBN)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부동산만 비싸졌다? 아니고요. 부동산이 제일 수익률 좋은 재테크였다? 아닙니다.



살펴봤듯이 '부동산 불패'라는 건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이 왜 신화처럼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요. 재미삼아 추측해볼 수 있는 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격의 규모입니다. 아무래도 커다란 숫자는 우리들에게 주는 임팩트가 크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은 그 어떤 자산이나 재테크보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가장 비싼 자산이기 때문에 '레버리지(leverage)'라는 이름으로 '빚'을 지면서까지 들어가죠.


그러다보면 수익률은 같아도 수익금은 부동산이 크게 됩니다. 애초에 초기 비용을 많이 투자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 막상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심정은 그게 아니죠. '이야, 옆 사무실의 정 대리가 아파트로 5억을 벌었다는데?'와 같은 소문만 들으면, 초기 투자비용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어집니다. 땅 샀다는 소리만 들어도 배가 아픈 우린데요.


▲ 부동산은 거대하다. 비싸고, 텀이 길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특성들이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 창조에 기여했다. (출처: 이로운넷)


둘째, 투자 기간입니다. 부동산은 비교적 긴 호흡으로 가져가야 하는 자산입니다. 딸깍 하면 매매가 이루어지는 주식과 달리, 맘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돈을 뺄 수 있는 예적금과 달리, 아파트는 환금성이 떨어집니다. 부동산에 내놔도, 팔려야 내 돈입니다.


부동산이 갖고 있는 이러한 특징은 오히려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심리와 이에 따른 야성적 매매를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내일 당장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 같아서 안절부절하며 매물을 내놓아도 오늘 당장 팔리지는 않습니다. 부동산 사장님이랑 얘기도 해야하고, 매수할 마음이 있는 누군가가 물건도 살펴봐야 하고, 가계약도 쳐야 하고, 계약서도 써야 하고 등등 할 일이 많습니다.


일종의 자기구속(self binding) 장치입니다. 마치 주식 장기 투자를 마음먹은 사람들이 주식 매수 후에 주식 어플을 삭제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부동산의 가치는 장기적으로 거의 반드시 올랐고, 우리나라에서도 당연히 그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에 매도하지 않으면 시장은 으레 보답을 해줍니다.


▲ 5년 전 삼성전자를 5만원대에 구입했다는 C씨. 아직까지 주식 어플을 다시 안 깔았다면, 최소 20% 가까운 수익률을 보고 계실 거다. 축하드린다. (출처: 뉴스웨이)


셋째, 근접성입니다. 지금 와서 1년에 20%씩 이자를 내어주는 예금 상품에 가입할 길은 없지만, 부동산은 다릅니다. 성별과 세대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찾는 재테크입니다. 인간은 의식주가 필요하고, 큰돈은 결국 부동산으로 흐르기 때문이죠.


모두가 아는 이슈고, 모두가 접근하는 재테크. 그만큼 부동산을 하는 사람도 많고, 주변에는 100%의 확률로 무조건 부동산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로또 된 사람은 없어도, 연 20%짜리 예금에 가입한 사람은 없어도, 부동산으로 성공을 한 사람은 있습니다. 부동산 성공 사례는 언제나 우리의 옆에 있습니다.


부동산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됩니다. 복도통신을 타고 흐르기도 하고,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재생산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이런 저런 사례들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부터 믿음이 슬슬 생깁니다. 부동산은 꽤 괜찮은 재테크라는 믿음이요.


▲ 英옥스퍼드 대학의 다니엘 프리먼 교수는 근접성(proximity)을 사회심리학적 '호감'의 배경으로 꼽는다. '호감'의 다른 말은 곧 '믿음'이다. (출처: 다니엘 프리먼 X)


넷째, 안정성입니다. 부동산은 다른 재테크와 비교해서 꽤 안정적입니다. 가격 자체가 비싸고 진입 장벽이 높고 매매 기간이 길기 때문에 쉽게 인생을 걸기가 어렵습니다. 선물(futures)은 클릭 몇 번이면 패가망신할 수 있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심사숙고해서 진입하게 되죠.


주식은 자칫 상장폐지라도 되면 말 그대로 한 푼도 못 건지고 투자금을 다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은 어쨌든 실물이 남습니다. 거주 목적으로 부동산에 투자를 하면 '소비'와 '투자'의 경계가 흐릿해지고요, 최악의 경우에도 내 한 몸 뉘일 공간은 건집니다.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실거주 1주택 투자는 진리'라는 말이 돌지요.


이와 같은 네 가지 이유 외에도 다른 다양한 요소들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원인이 몇 가지인지가 아니라, 이러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 부동산은 불패가 아니다. 때때로 부동산은 패배한다. (출처: 업다운뉴스)



투자는 믿음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해야 합니다. 부동산 신화를 덮어놓고 믿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도 부동산 시장 부침의 역사적 경험을 해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가 대표적이고요, 지방 부동산의 경우 2010년대 이후 장기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악성 미분양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서울 상급지 역시 난공불락의 요새는 아닙니다. 금융위기 당시 아파트 매매가격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던 지역이 바로 강남입니다. 강남 아파트 역시 '안전자산'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 그 대단하던 강남·송파가 20%에 육박하는 하락폭을 보였다. 짧게 보면 폭락이고, 길게 보면 조정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출처: 부동산114)


한 마디로, 데이터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부동산 불패'라는 것은 그저 '신화'일 뿐입니다.



송두칠 doo7@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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