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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매매의 기회비용

매년 얼마씩 올라야 본전일까

by 송두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코인이든 절대다수의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껄무새' 병입니다.


내가 안 담았는데 떡상하는 종목들을 보면서 "그 때 살 걸!"

매도 타이밍을 놓치고 떡락하는 종목들을 보면서 "그 때 팔 걸!"

내가 팔았더니 떡상하는 종목들을 보면서 "팔지 말 걸!"

좋은 소문을 듣고 고민하다 샀더니 떡락하는 종목들을 보면서 "사지 말 걸!"


그리고 이건 계속 반복되죠. 그래서 "그 때 살걸!이라고 할 때 살걸!".


13-01.png ▲ 2,000,000,000배 공감되는 짤. 자매품으로 '라고 할 때 팔 걸'도 있다. (출처: 페이스북 몽글이)


많은 경우, 내가 가진 주식이 올라도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내가 담은 종목들은 끽해야 10%쯤 올랐는데, 옆자리 직장 동료가 가진 주식은 왜 30%, 50%씩 오르는 걸까요.


우리는 10% 올랐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못 먹은 30%와 50%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20%만큼, 또는 40%만큼을 손해본 것처럼 느끼죠.


돈을 벌고도 기분이 안 좋게 됩니다.


13-02.JPG ▲ '남보다 덜 벌었다'는 위기감은 우리 스스로의 '삶의 질'을 깎아먹는다. (출처: 네이버블로그 hsy418)



그런데요, 이러한 현상은 경제학적으로 아주 말이 됩니다.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개념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기회비용이란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 인해서 놓치게 되는 다른 것의 가치를 포함한 '총 비용'입니다. 실제 지불한 회계비용과 숨겨진 비용을 더한 값입니다.


명시적 비용(explicit cost)은 회계적으로 얼마를 썼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암묵적 비용(implicit cost)은 우리가 따박따박 따져봐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잘 따져봐야 합니다. 때때로 어떤 선택은 회계적으로는 이득이라 할지라도,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이득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3-03.jpg ▲ 출처: 이 그림을 보고 '아이스크림을 저렇게 상온에 두면 녹을 텐데'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T병일까. (네이버블로그 econismypassion)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반드시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매년 얼마씩 올라야 본전일까?"


답은 이렇습니다. "5천만원"



"아이스크림은 1개에 얼마일까?"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디바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8,000원이고요, 베스킨라빈스 싱글킹은 4,700원이고요, 롯데 돼지바는 800원입니다.


아니, 사실 고디바는 1+1쿠폰 쓰면 2개 8,000원이고요, 베스킨라빈스는 통신사 할인 먹일 수도 있고요, 돼지바는 매장에 따라 400원에도 살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매년 얼마씩 올라야 본전일까?"하는 질문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집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하에서는 서울 소재 12억짜리 아파트(전용 84m²)를 매매하는 상황으로 가정하겠습니다.


(6.27 부동산대책의 상한선인 6억 대출, 최대 LTV 50%를 가정해도 이 정도 사례는 현실성이 있겠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13-04.jpg ▲ 이른바 6.27 부동산 대책 이후 거래량이 훅 떨어졌다. (출처: 충남일보)


앞서 이미 결론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매년 5천만원씩 올라야 본전이라고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발생한 대출에 대한 이자비용이 발생합니다. 회계상 비용이고 명시적 비용이죠.


만약 주담대로 6억 원의 대출을 땡겼고, 금리가 대략 5% 수준이라고 한다면, 매년 이자비용으로만 발생하는 금액이 3천만 원입니다.


13-05.JPG ▲ 주담대 금리는 약 4% 수준이지만 계산의 편의를 위해 5%로 잡았다. 그리고 또 막상 내가 대출 받을 땐 평균보다 비싼 게 국룰이니까. (출처: 뉴시스)


둘째, 아파트 취득 시에 또다른 명시 비용으로 취득세가 발생합니다. 이것도 무시하지 못 할만큼 꽤 큽니다.


12억 원짜리 아파트를 새로 취득했다면, 총 납부세액은 약 4천만 원입니다. 6억 이하, 또는 9억 이하의 경우 취득세율이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12억 원의 아파트라면 4천만 원을 내야 합니다.


참고로 85m²초과 주택이거나 조정대상지역 내 유주택자라면 2배가 넘는 취득세를 납부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13-06.JPG ▲ 정확히는 39,600,000원이다. 쌩돈 나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출처: 위택스)


셋째, 예정되어 있던 수익 포기분이 있습니다. 집을 매매하지 않았더라면 갖고 있던 종자돈을 굴려서 얻을 수 있었던 수익 말입니다.


가령 12억짜리 집을 구입할 때, 주담대를 6억 꼈으니 나머지 6억 원은 원래 갖고 있던 종자돈이겠죠. 이건 은행에만 넣어둬도 거의 5% 수준의 이자는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13-07.JPG ▲ 재작년 상황. 1금융권에서도 연 5% 금리의 예금이 있었다. 2금융권에서는 더 높았다. 지금은 저 때에 비해서는 뚝 떨어진 상태다. (출처: 네이버블로그 dbsppl)


2금융권으로 가면 더 높아질 거고요, 증권사 CMA에 넣어두거나, 하다못해 미국 국채, 지수연동 ETF, 발행어음, 원금보장 ELD 등을 생각하면 기대수익률은 그보다 훨씬 높을 수 있습니다.


사실 대출 받아서 주식하는 이유가 이거잖아요. 대출 금리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요.


어쨌든 보수적으로 5% 수준의 수익률을 생각하면 이 또한 연 3천만 원입니다. 종자돈 6억 원을 아파트 매수금으로 넣는다는 건, 3천만 원의 예상 수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13-08.jpg ▲ ELD 판매액은 매년 증가중이다. (출처: 한국경제)


넷째, 반면 주택 매수를 통해 절약할 수 있는 비용이 있습니다. 바로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입니다.


만약 집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어디에선가 거주를 하며 일정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입니다. 전세니 월세니 하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서울은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대략 50% 수준이니까요, 서울에 소재한 매매가 12억짜리 아파트에서 거주하기 위해서는 약 6억 원 수준의 전세 보증금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대수익률 5%를 가정하면, 6억 원 전세보증금에 따른 기회비용은 연간 3천만 원입니다. 주택을 매수하면 이만큼을 절약하게 됩니다.


13-09.JPG ▲ 물론 서울에서도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전세가율은 많이 달라진다. (출처: YTN)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일단 대출 이자가 연간 3천만 원이고요, 취득세가 4천만 원이고요, 포기해야 하는 수익이 3천만 원입니다. 다만, 전세비용으로 연간 3천만 원이 세이브 되네요.


13-10.JPG ▲ 거래금액 중 12억까지는 과세가 되기 때문에 어지간한 경우 2년 거주요건은 채우고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처: 국세청)


그렇지만 아파트를 구입하자마자 바로 팔아치우지는 않을 테니, 양도소득세 비과세 거주요건인 2년을 기준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대출 이자가 2년이면 6천만 원, 취득세는 한 번만 내면 되니까 여전히 4천만 원, 포기해야 했던 연간 수익도 2년이면 6천 만원. 여기에서 2년 간 아낀 전세 비용 6천만원을 빼면, 네, 딱 1억입니다.


오늘 내가 산 아파트 가격보다 2년 뒤에 1억 원은 비싸게 팔아야 비로소 본전인 셈입니다.


매년 5천만 원씩 올라야 합니다.


13-13.JPG ▲ 상황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결과값을 정리한 표. 12억 짜리 집을 사면, 매년 4~5천만 원씩은 올라야 본전이다. 이득 아니고 본전.



논의의 편의를 위해 생략하거나 단순화한 요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택을 구입하지 않고 전세로 들어가는 경우, 저렴한 금리로 전세담보대출을 받고 그 종자돈으로 다시 재테크를 하면 실질 전세 비용은 더 낮아지겠죠.


반대로 주택을 매입하게 되면, 매년 재산세가 1백만 원씩 발생하게 되고요, 매입 시에는 복비가 약 7백만 원 정도 듭니다. 이것만 해도 2년이면 거의 천만 원이네요.


요즘 이사비는 또 얼마나 비싸다고요. 아파트 살 때 한 번, 팔 때 한 번 하면 5백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주담대는 5% 아니고요, 종자돈 굴려서 얻는 수익률도 5% 아닙니다. 각자의 성향이나 상황, 부지런함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경우, '복리의 마법'도 생각해야 합니다. 연 이율 5%를 가정하면, 지금 내 종자돈은 20년 뒤 2.7배가 넘게 불어납니다. 그렇다면 비용부터 계산을 다시 해야겠죠.


13-12.jpg ▲ 6억 종자돈을 코인에만 묶어둬도 이게 다 얼마냐. (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핵심은 같습니다. 아파트 매매의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이만큼은 값이 올라야 비로소 본전입니다. 결코 회계 비용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처럼 기회비용을 모두 고려한 부동산 매매는, 우리가 갖고 있던 이미지보다는 꽤 덜 매력적인 재테크 수단일 겁니다.



13-11.jpg ▲ 강원도 평창 장전리 이끼계곡의 모습. 이곳은 '국내 3대 이끼계곡'으로 불린다고 한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영미권 속담 중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Rolling stone gather no moss)'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지런해야 녹슬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이 말은 원래 '이사를 자주 다니면 돈을 못 모은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이사를 하면 소비가 늘어납니다. 작은 가구라도 하나 더 사게 되는데, 이것도 긴 시야를 갖고 복리로 생각해보면 또 무시하기 어려운 금액입니다.


물론 수 억, 십수 억, 수십 억이 왔다 갔다 하는 부동산 거래에서 돈 백만 원쯤은 우스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딱 이거 하나입니다.


부동산 재테크,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잘 생각하셔야 한다고요.



송두칠 doo7@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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