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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올랐다는 착각

부동산 시장에서 을은 없다

by 송두칠

지난 번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요. 우리는 부동산 상승기에 집주인들이 호가를 낮춘 급매물을 다시 거두는 모습까지 봤습니다.


11-01.JPG ▲ 매물이 줄어드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급매물이 줄어드는 건 십중팔구 부동산 상승기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출처: 이데일리)


이렇게 되면 결론적으로, 아주 극소수의 실거래만으로 아파트 단지 집값 전부가 떡상하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일종의 착시효과죠.


상황 ⓛ

11-02.JPG ▲ 매수인 3사람(갑, 을, 병)이 매물을 둘러보고 있다. 집 컨디션이 똑같다면, 이 세 사람은 6억짜리 집을 살 거다. 당연히 저렴한 매물부터 팔린다.


여기, 서울시 A 아파트 단지에 매물이 총 15개 나와 있습니다. 6억에 5건, 7억에 5건, 8억에 5건이요. 각자 자신의 집에 매긴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호가는 2억이나 차이가 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같은 아파트 단지, 같은 평형에서 호가가 차이나는 건 정말 흔한 일이죠.


자, 여기 A 아파트 단지를 꼭 사고 싶어하는 매수인이 3명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굉장히 급한 상황이에요. 얼른 집을 사서 이사를 해야 해요.


보통의 경우라면 3명의 매수인은 6억짜리 집을 구입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6억짜리 매물은 2건 남았네요.


하지만 이 아파트 가격, 즉 호가는 여전히 6억입니다. 집을 구매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6억짜리도 있고 8억짜리도 있으니까 이 집은 대충 7억쯤 하는군'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6억짜리 호가가 있으면 6억짜리 집입니다. 6억만 주면 이 아파트를 살 수 있으니까요.

11-03.JPG ▲ 3명의 매수인이 모두 집을 샀지만, A아파트의 호가는 여전히 6억이다. 새로운 매수인(정) 입장에서 이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6억이다. 가격은 그대로다. 안 올랐다.


상황 ②

11-04.JPG ▲ 매물이 줄었다. 심지어 6억짜리 매물은 하나 뿐이다. 이러면 이거 선착순이다. 매수인들끼리 경쟁이 붙는다.


이제 상황이 바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집값이 오를 거라는 심리가 시장에 짙게 깔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집주인들이 매물을 싹 거둬서, 6억에 1건, 7억에 2건, 8억에 3건, 이렇게 6건 밖에 안 남았다고 칩시다.


참고로 집값이 오를 거라고 온세상이 믿는 와중에도 6억이나 7억에 집을 파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요, 이들은 급한 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 매물을 내놓는 집주인들은 당연히 급한 사람들이죠. 급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호가를 더 높게 부르겠죠.


지난 글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집주인은 갑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을도 아닙니다. 매도인이건 배수인이건 급한 쪽이 을일 뿐이죠.


11-05.JPG ▲ 저런, 저렴한 매물이 다 나갔다. 새로운 매수인(정)은 선착순에서 패배했다. 이제 이 사람 눈에 A 아파트는 잠깐 사이에 2억이 비싸진 집이 됐다.


이 상황에서 아까처럼 급한 매수인 3명이 집을 산다고 할게요. 낮은 가격 순서대로 6억짜리 하나와 7억짜리 둘이 팔리겠죠. 이제 외부인의 시각에서 A아파트는 원래 6억짜리였는데 순식간에 7억이 됐다가 이제 8억이 된 걸로 보이게 됩니다. 한번에 2억이 올랐네요.


(매수인 3명 중 2명이 기존 실거래가 보다 1억이나 더 비싼 가격에 거래를 하는 이유는요, 이들이 급한 매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모두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늘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더 급합니다. 그리고 더 급한 사람이 보통 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격에 조금 덜 민감해지는 거죠. 좀 덜 받아도 팔거나, 좀 더 비싸도 삽니다. 이것이 가격 탄력성(price elasticity)입니다.)


만약 급한 사람 1명이 더 나타났다면요? 평소라면 여전히 6억에 거래가 됐겠지만, 이렇게 매물이 없어진 상황에서는 8억에 실거래가 찍히게 되는 거죠. 쐐기골입니다.


이게 부동산 시장에서 호가의 함정입니다. 부동산 상승기에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고요.


극소수의 거래만으로 집값이 폭등하는 매커니즘입니다.


11-06.JPG ▲ 매물이 적은 상황에서는 소수의 실거래만으로도 후진입한 예비 매수인들의 집값 부담이 크게 높아진다. (출처: 아주경제)



조금 샛길로 빠져볼까요. 꼭 해드리고 싶은 재밌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A아파트 단지가 총 1,000세대라고 칩시다. 이 집을 갖고 있는 1천 명은 모두 자신의 집값이 6억에서 8억으로 뛰었다고 생각할 거에요.


아니, 세상에! 그럼 이게 다 얼마죠. A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총 2,000억 원을 앉아서 벌게 된 셈입니다!


이 사람들의 집값을 올려준 건 누구죠? 맞아요, 아까 그 급하게 집을 산 3명이에요. 1명은 6억에 샀고, 2명은 7억에 샀어요.


그런데 잘 보세요. 평소보다 더 들어간 금액은 딱 2억이에요! 왜냐면 원래 집값은 6억이었으니까요! 1명은 선착순으로 제값에 잘 샀고, 2명만 각각 1억씩 더 주고 샀잖아요.


와, 예수님이 행하셨다던 오병이어(五餠二漁)의 기적 같네요. 2억 원으로 2,000억 원을 만들었어요!


11-07.JPG ▲ 쐐기골이 박힌 상황. 더 등장한 예비 매수인(무) 눈에도 그렇고, 이미 아파트를 매매한 사람 눈에도 이제 집값은 8억이다. 급하지 않으면 8억 밑으로는 매물이 안 나올 거다.


이거, 실제로는 만들어진 돈이 없지 않냐고요? 집을 실제로 안 팔면 이득이 아니지 않냐고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금융기관(은행)에서 평가하는 A아파트 자산 가격이 달라졌잖아요.


금융기관의 평가는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돈을 만들어내는 평가죠. 대출 규모가 달라지거든요.


만약 자산 가격의 50%까지 담보 대출을 해준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A아파트 주민들은 이전보다 유동성이 1,000억 원이 증가한 겁니다.


이렇게 증가한 유동성은 주식시장으로 갈 수도 있고, 가상화폐시장으로 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지난 글에서 이미 확인했죠. '큰 돈은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흐른다'는 걸요.


네, 이 돈 중 상당수는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올 겁니다. 기존에 A아파트에 살던 사람은 오른 가격대로 집을 팔고요, 다시 주담대를 껴서 상급지로 갈아탈 겁니다. 그럼 집값은 또 오르겠죠.


A아파트 밑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이제 더 비싸진 A아파트의 평가가격을 기준으로 담보 대출을 받고, 본인이 갖고 있는 자산을 합쳐서 이사를 오겠죠.


적은 매물, 소수의 실거래, 높은 호가, 금융기관의 대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매커니즘입니다.


11-08.JPG ▲ 주식도 팔고, 대출도 끼고. 상급지 주택 수요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출처: 매일신문)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부동산 상승기에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입니다. 그리고 시장에 남은 소수의 매물은 미래에 부동산 가격이 하늘을 찌를 거라는 기대심리가 이미 듬뿍 반영된 매물들입니다. 호가가 엄청 높죠.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실제로 내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 무지막지하게 올랐다고 느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자, 이제 핵심입니다. 급한 매수인이 3명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나머지 매수인들은요? 네, 급하지 않아요. 급하지 않다는 말은 '최대 지불의사 가격(WTP; Williingness To Pay)'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말입니다. '나는 아무리 비싸도 이 물건에 이 가격 이상은 못 줘'하는 금액이 낮다고요.


그런데 시장에는 그거보다 높은 호가의 매물들만 남아있죠. 이 상황에서 결론은 하나입니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거래량이 뚝 떨어지는, 이른바 거래량 절벽입니다.


11-09.JPG ▲ 급한 사람이 다 사고 나면, 비싼 가격에 집 팔기가 어려워진다. (출처: 베타뉴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이제 매도인들은 슬슬 의심을 하게 됩니다. '진짜 미래에 우리집 가격이 그정도로 오를까?' 하면서 말이죠.


이 상태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요, 슬슬 한 두 명씩 호가를 내리게 됩니다. 호가를 내리다가 만약 누군가의 '최대 지불의사 가격'보다 낮아지게 되면, 그 순간 거래는 다시 이루어지고요.


당연하지만 이 때의 가격은 최초의 호가보다 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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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곡선(WTA)과 수요곡선(WTP)의 교차점에서 시장 가격은 결정된다(좌). 부르는 값(WTA)이 사려는 값(WTP) 보다 높다면 시장에서 거래는 일어나지 않는다(우).




다만, 한 가지 고려하지 않은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은 매도인 뿐만 아니라 매수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집값 상승의 믿음은 매도인에게는 매물을 거두게 하는 동시에, 매수인들을 더 간절하게 합니다. '이러다가 더 오르면 어떡하지'하는 마음을 들게 하면서 매수인들의 가격 탄력성을 낮추는 겁니다. 더 비싸도, 최대한 빨리 얼른 사게끔 조바심을 나게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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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다 똑같다. 더 급하면 불리하다. 연애도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출처: 네이버블로그 heromento)


그래도 결론은 변하지 않습니다. 종국적으로 최대 지불의사 가격 보다 희망 가격(호가)이 높다면 시장에서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변수가 없다면, 다음 거래는 필연적으로 현재 호가보다 낮은 지점에서 이루어집니다. 마치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써있는 글귀처럼 '보이는 것보다 낮은 가격대에 있습니다'의 상황이 되는 겁니다.


집값이요? 사실, 그만큼 비싸진 거 아니에요.



송두칠 doo7@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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