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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버블과 뱅크런, 그리고 부동산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by 송두칠

앞선 몇 편의 글을 통해 우리 집(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바로 그 집!)의 실질 가격은 지난 수십 년 간의 추세와 달라질 것임을 추측해 봤습니다. 오름세가 꺾일 것이고, 어쩌면 가파른 내리막을 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따져본 몇 가지의 근거들은 아주 심플하면서도 꽤나 직관적입니다. 게다가 그럴듯합니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수요가 가변적입니다. 과연 우리 집에 대한 선호가 미래에도 유지될까요.


둘째, 사람들의 구매력이 뒷받침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지금이 최고점일지도 모릅니다.


셋째, 집에 들어와 살 사람들이 없습니다. 외국인도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이거, 큰일 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최고의 재테크 수단 아니었나요. 이거 아주 큰 손실을 보게 생겼습니다.


대한민국 부동산, 큰일 났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꽤 그럴듯해 보이는 이 걱정들이 정말 타당한 예측이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파트들이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으니까요.


▲ 강남과 과천은 과반수 거래가 신고가 거래다. 매매 절반 이상은 이전 최고가 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거다. (출처: 서울경제)


올해 3월, 서울시가 강남 3구와 용산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지만 신고가는 보란듯이 쉬지 않고 갱신되고 있습니다.


6.27 부동산 대책 이후에도 신고가 거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록 직전보다 비중은 좀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서울 아파트 매매 중 22.9%가 신고가 거래입니다.


이만하면 예측이 틀린 것 아닐까요. 부동산은 내리막을 탈 거라더니, 여전히 핫하디 핫한 불장 같은데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입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예측은 일희일비할 영역이 아니라는 겁니다.


혹여나 지금 가격이 꺾이고 떨어지고 있다고 해도, 저는 그것이 부동산 빙하기 초입 신호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


당장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냐 오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동산 시장처럼 수요-공급의 텀이 긴 곳에서는 호흡을 길게 하고 눈은 냉정하게 가져가야 합니다.


핵심은 심리입니다. 사람들의 심리, 시장의 심리, 수요자와 공급자의 심리. 이것이 A이자 Z입니다.



경제학계 씬에 유명한 버블들이 있습니다. 현대 경제계에서는 우리나라도 휘말렸던 IT버블(또는 닷컴버블)이 유명하고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유명합니다. 고전 경제기에서는 남해 버블, 미시시피 버블, 그리고 튤립버블이 유명하죠.


09-02.jpg ▲ 얀 브뤼겔이 그린 '튤립 광풍에 대한 풍자'. 튤립을 사고 파는 사람들을 원숭이로 묘사해놨다. 괜히 나까지 찔린다. (출처: 동아일보)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는 희귀한 튤립 구근들로 튤립을 재배해서 팔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튤립 구근에 대한 수요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가격도 미친듯이 올랐습니다.


더군다나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금융업이 발달했던 나라.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 투자자들이 대출을 끌어다가 쓰면서 튤립 가격은 더욱 올라갔죠. 당시 튤립 가격이 한 달 동안 2,600%가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별로 낯 선 풍경은 아닙니다. 요즘 우리로 치면 레버리지 끌어다 쓰는 셈이죠. 주담대와 신용대출까지 영끌해서 부동산을 사거나요.


결국 튤립 구근 하나의 가격은 네덜란드 평균 가정 1달 생활비의 10배까지 올라갑니다. '나만 뒤쳐질 수 없다(FOMO; Fear Of Missing Out)'는 공포 심리와 한탕주의 투기 심리가 만들어낸 작품이었죠. 당시 튤립은 오늘날의 선물(futures) 형태로까지 거래되었다고 하니, 그 열풍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09-03.png ▲ 폭락. 말 그대로 폭락이다. (출처: 매일경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회로를 돌리게 했을 튤립 광풍은 허무하게 막을 내립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법원에서 '튤립은 튤립일 뿐'이라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설, 어떤 튤립 경매에서 아무도 입찰을 하지 않자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는 설, 튤립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재가 나왔다는 설, 유행이 바뀌면서 튤립 수요가 줄었다는 설 등 정말 다양합니다.


어찌됐건 명확한 사실은 튤립 가격이 고점 대비 99%가 폭락했다는 사실입니다. 불과 4개월 만에요. 참고로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로 유명한 세계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 때 미국 주가 지수가 약 4년 간 80% 정도 빠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빠르고 심하게 가격이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서자,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한 겁니다.



09-04.jpg ▲ 코스닥 그래프에서는 닷컴버블의 산이 아직까지도 매우 드높다. (출처: 경향신문)


이 외에도 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시장은 심리가 지배한다는 것을요. 시장이 아무리 차갑고 냉정해보인다고 해도 사람이 모여 만든 곳입니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IT광풍으로 인해 코스닥에서 쌓아올렸던 산은 2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회복이 요원합니다. 거의 3천 선까지 다다랐던 코스닥 지수는 2025년 7월 18일 현재 820 수준입니다. 지난 3년 간, 1천을 뚫어본 적도 없습니다.


2000년 3월에 고점을 찍었던 코스닥은 같은 해 마지막 날 5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채 장을 마감합니다. 시장이 무너진 건 불과 10개월 만이었습니다.


09-05.JPG ▲ 영국 남해회사의 주가 그래프. 사과 그 뉴턴 맞다. 음악의 어머니 그 헨델 맞다. (출처: 나무위키)


남해 버블도 순식간에 꺼졌습니다. 회사 주가는 4개월 만에 약 80%가 떨어졌습니다. 물론 이 사례는 한 회사가 사기를 쳤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문제의 그 회사 시가총액이 당시 영국 국내총생산의 2배가 넘는 막대한 규모였다는 점은 자못 놀랍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이 사태에 휘말려 크게 말아먹은 것은 유명하죠. 뉴턴은 일찍이 적절히 익절을 했었지만, 계속 달나라로 날아가는 주식 가격을 보면서 "내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저 인간들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가 없다"는 말과 함께 결국 상투를 잡아버립니다.



돌이켜 보면 다 그렇습니다. 튤립 가격도 말도 안 되고, IT 버블도 너무 심했고, 심지어 남해거품은 사기 건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주변에서 다른 의견들은 있었습니다. 이거 좀 이상하다고. '닷컴'자만 붙이면 주가가 무조건 뛰고 있다고.


그러나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밝은 미래와 더 나은 내일만을 꿈꾸며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보고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도 이와 같을지 모릅니다.


09-06.JPG ▲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볼수록 인간은 멍청해진다. 스스로 또 찔린다. (출처: 네이버블로그 yminsong)


저는 '부동산의 시대는 끝났다'고 봅니다. 이것은 그냥 제 주장이고 제 예측입니다. 누군가는 이 예측이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불확실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누군가는 머리로는 언뜻 이해가 가지만 마음으로 공감되지는 않을 거고요.


지금의 부동산 시장을 이루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부동산 시장은 잘 나갈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망할 거라고 안 봅니다.


설령 제 주장에 일부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뼛속까지 와닿는 공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피상적인 이해 정도일 거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부동산 시장의 가격은 건재합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요.


09-07.png ▲ 아파트 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아직도. (출처: 데일리안)


사람들은 아직 공감하지 못합니다. 부동산, 특히 목 좋은 서울 집값들은 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가정 하나만 해봅시다. 만약 내일 당장 부동산 값이 폭락한다고 칩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부동산 시장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내가 산 값보다 비싸게 내 집을 사줄 누군가가 있을까요? 아니요, 단언컨대 없을 겁니다.


가정 하나만 더 해봅시다. 만약 내일이 아니라 내일 모레라면요?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이게 일주일 뒤라면요? 한 달 뒤라면요? 내년이라면요?


5년 뒤, 10년 뒤라면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 참 괜찮은 사람인데?'하는 믿음은 스스로를 정말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래, 내가 그럼 그렇지 뭐'하는 믿음은 스스로를 그냥 그런 사람으로 만듭니다. '우승도 해 본 놈이 한다'는 말이나, 한 때 유행했던 '위닝해빗'도 다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9-08.JPG ▲ 사람들의 심리는 없던 위기도 만들어낸다. (출처: 잡플러스교양)


경제학계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뱅크런(bank-run)'일 겁니다.


은행은 예대마진으로 장사를 하는 곳입니다. 즉, 고객에게 내어주는 예금 이자보다 더 많은 금액을 대출 이자로 벌어들이죠. 이를 위해서는 고객 예금 중 일부를 기업이나 다른 개인에게 대출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당장 은행 금고에 있는 돈(=지급준비금)은 고객들이 통장에 넣어둔 돈(=예금 총액)보다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어떤 은행을 '저거 못 믿을 은행이구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합시다. 이러한 불신이 시장에 빠르게 퍼졌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모든 예금주들은 은행으로 달려가서 통장에 있는 돈을 싸그리 인출하게 될 겁니다. 은행은 당연히 당장은 그만한 돈이 없으니까 일부 금액을 못 돌려주게 될 거고요.


그러면 결과론적으로 그 사람들의 믿음은 맞는 게 되어버립니다. 내 통장에 있는 돈을 안 돌려주는 곳. 부실한 곳. 또는 사기처먹는 곳.


사람들의 믿음만으로 건실한 은행은 순식간에 부실 금융 기관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09-09.jpg ▲ 2023년, 자칫 새마을금고도 뱅크런 사태의 주인공이 될 뻔 했다. (출처: 문화일보)



앞서 몇 번이나 얘기했듯, 지금 부동산 시장에는 큰 불안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더 비싼 돈을 주고 집을 사는 거죠. 앞으로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렇지만 건실한 은행 하나쯤은 손쉽게 말아먹을 수 있는 게 시장의 심리입니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도 그렇습니다.


부동산 시장도 결국 심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파트값 하락을 예상하면, 그래서 그런 심리가 시장에 쫙 퍼지면, 그 길로 부동산 값은 폭락입니다.


별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아이템들이 순식간에 픽 꺾여버리는 걸 수많은 버블 붕괴를 통해 우리는 계속 봐왔습니다.


09-10.jpg ▲ 로드리게 모델(Ridrugue Model)을 창안한 로드리게 교수는 '거품은 붕괴 이후에야 거품인줄 안다'고 말했다. 자신도 미리 알 수는 없다는 거다. (출처: 디지털투데이)


그렇다면 대한민국 부둥산 시장의 붕괴는 언제부터 시작될까요?


어찌 보면, 이거야 말로 핵심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30년은 더 있어야 슬슬 붕괴가 된다고 하면, 그 전까지는 얼마든지 재테크 수단으로 써먹으면 되는 거니까요. 얼마나 꿀입니까 이게.


불행히도 제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하이먼 민스키 교수의 이론 등을 토대로 '버블의 단계(Phase of Bubble)'이라는 모델을 만든 장 폴 로드리게 교수는 거품을 사전에 거품인줄 알기는 어렵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대단한 뉴턴도 자신이 인간의 광기를 계산하지는 못하겠다고 했고요.


09-11.jpg ▲ 14년 전 만평이지만 지금과 정말 똑같다. (출처: The Economist)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시장 붕괴 시점을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군중들의 심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요. 만일 누군가가 예측이 가능하다고 하면 둘 중 하나입니다. 사기꾼이거나, 신내림 받은 무당이거나.


부동산 시장이 유지되기 위한 세 가지 전제조건의 붕괴 시점 정도는 전문가들이 대강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동산 시장의 붕괴 시점은 그 이전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요. 가령 세 번째 조건인 '구매자의 수'가 30년 안에 무너진다면, 집값은 그보다 빨리 무너질 겁니다.


이 경우에도 얼마나 더 앞서 무너질 것인지는 예측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심리란 말 그대로 '사람 마음대로'니까요.


다만, 지난 몇 편의 글을 통해 우리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한국 부동산 시장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언젠가는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약간의 데드캣바운스(Dead cat bounce)를 친다 하더라도요.


그리고 한 번 시작된 불안심리는, 결코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무너질 겁니다.



송두칠 doo7@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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