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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Mar 20. 2024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다고요?

당신의 여권은 안녕하십니까?



"비행기를 타실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비행기를 타신다고 해도 싱가포르에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어요."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이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갑자기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다니.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다니.


나란 사람은, 회원은 한 명뿐이지만 엄연한 "밝사모(밝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남편이 만들어 주었다.)의 회장이다. 플로깅을 하고 평소에도 눈에 보이는 쓰레기가 있으면 줍고 다닌다. 항상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이 몸이다. 그런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싱가포르에서 입국을 거부시킬 수 있단 말인가. 한국에서도 경찰서에 한 번 가보지 않았던 나인데. 아, 물론 러시아에서 집시로 몰려 경찰에게 잡힌 적은 있었지만 구세주가 나타나 다행히 경찰서까진 가지 않았다. 이번엔 대한민국인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러시아에서 경찰에게 붙잡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lillysbear/2



우리는 지금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다.

왜.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비행기를 타더라도 입국을 금지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문제는

여권이었다.

여권? 

 

이든이는 여권 유효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이번에 새로 여권을 만들었고 나는 아직 기한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이지?


아뿔싸.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여권 한 페이지에는 형광펜으로 낙서가 조금 되어 있다.(사진이 있는 페이지는 아니다. 이제껏 아무 문제 없이 다녔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 여권을 항상 서랍 안에 넣어두는데 그날은 비행기 티켓 예매를 위해 식탁 위에 올려두었었다. 이든이가 종이에 그림을 그리다가 순식간에 여권에 형광펜으로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이든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릴 때의 일이다. 다행히 별문제 없이 출입국을 해왔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오늘 여기서 문제가 될 줄이야. 항공사 직원에게 이때까지 이 여권으로 여행을 잘 다녔다. 문제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후 다른 직원이 오더니 규정이 강화되어 실제로 입국거부를 당할 수도 있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이 비행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입국금지가 되더라도 항공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비행기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걱정과 불안함을 가득 안고 돌아오게 될지도 모를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방콕 공항에서 조금 대기하다가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다시 타야 한다.)  

코로나 이전의 일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다 싶지만 그땐 몰라서 용감했다.


여권 훼손 시 출국 가능 여부 - 출국 가능 여부는 훼손 정도에 따라 다른데, 기계 판독이 가능하지만 여권 훼손이 일부 발견될 경우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서 탑승권을 발급해 주긴 하나, 대신 현지 입국 시 여권 훼손으로 인해 입국이 거부되어도 항공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출국해야 한다. 만약 판독이 안 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면 탑승권 발권이 거부된다.
출처 - 나무위키 2024 -03 -07


걱정 인형 남편에게 용감하게 인사했다. 걱정 말라고.


내 몸만큼 무거운 캐리어 두 개를 위탁수하물에 맡기고도 짐은 남아있었다. 여섯 살 이든이가 비행기에서 잘 보낼 수 있게 도와줄 아이템들이 가득한 가방 하나를 손에 들었다. 여행 기간 동안 읽을 책과 아이패드가 들어있는 가방 하나는 어깨에 메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든이 손을 꼬옥 잡았다. 이제 우리 둘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지켜야 한다. 무사히 방콕을 경유하고 싱가포르에 도착할 수 있기를. 싱가포르에서 입국심사관을 잘 만나 아무 문제 없이 창이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기를 빌었다.








방콕에 도착했다. 길지 않은 경유 대기 시간 동안 혼날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정말로 입국을 거부당하면 어떡하지?’ 

‘바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다시 끊어야 하는 건가?‘

‘태국 땅도 싱가포르 땅도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설마 공항에 붙잡혀 있는 건 아니겠지. ‘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입에 침이 마르고 신남과 들뜸으로 가벼워야 할 엉덩이가 무겁기만 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방콕을 무사히 경유했고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대에 줄을 서기전 누가 인상이 좋아 보이는지 살폈다. ‘그래, 너로 정했다. 아니, 심사관님 부탁이에요. 제발 도장 찍어 주세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이든아, 저기 앞에 가면 인사하고 웃고 있어야 해. 알겠지? “ 여권사건에 대해 이든이가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해 주었다. 이제 내 차례다. 입안의 모든 이빨들이 다 보일만큼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 심사관님, 나 지금 되게 신나요. 저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아들이랑 한 달 살기 하러 왔고요, 돈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있는 거 없는 거 다 쓰고 갈게요. 물건살 때 깎지도  않을 거예요. 제발 입국만 시켜 주세요. ’

PLEASE~~~~








심사관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더니 말을 건넸다. 기분은 어떤지, 또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싱가포르는 처음이라 너무 기대된다고. 공항에서부터 인상이 너무 좋다고 한 달이 금방 지나갈 것 같다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유쾌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좋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든이에게도 사람 좋게 웃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즐거운 대화를 하며 통과했고 그제야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권에 아주 작은 낙서나 오염이 있더라도 재발급받기를 바란다. 그 이전에 여권을 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고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도 손에 들고 있기로 하자. 실제로 지금은 여권 훼손으로 인해 입국 거부된 사례들이 적지 않다.)


"엄마, 이제 괜찮은 거야?"

"응, 괜찮아. 정말 다행이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이든이도 많이 긴장했었지?"

"응, 나도 심장이 막 콩닥콩닥 거렸어. 내가 아기 때 왜 그랬을까?"

"ㅎㅎㅎㅎ 네 잘못 아니야~ 아기가 뭘 알겠어? 엄마가 거기에 안 놔뒀어야지."

"우리 둘 다 이제 그러지 말자. ㅎㅎ"

"그래 ^^"








싱가포르야, 안녕! 잘 부탁해.


창이공항은 정말 멋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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