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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누 Nov 08. 2023

7. 6번째 대장 내시경

매번 너무 새로운 너.

내 또래 기준으로 나보다 대장 내시경을 더 많이 받은 사람도 있을까?

물론 장과 관련된 병이 있는 환우라면 나보다 많거나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아마 또래 상위 1%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한 원룸에서 13년 살기'와 함께 상위권 안에 드는 나만의 타이틀 일 것이다.


사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얼추 계산해 보니 이번이 6번째 인 듯하다.

크론병 진단 전 1번.

크론병 진단 직전 1번.

그리고 2년 ~ 3년 주기로 받았던 듯하다. 과장은 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잡아도 아마 5번일 것이다.


이번에 퇴원 후 원래 다니던 아산병원에서 대장 내시경을 하자고 하여 6번째 내시경을 하고 왔다.


첫 대장 내시경은 수면 내시경이 일반과 비용차이가 있어 어린 나이에 무수면으로 받았었다.

그 수치스러움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장 안으로 들어오는 호스가 강하게 느껴졌고, 어딜 지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아프다고 내시경 내내 크게는 아니지만 흐느끼는 수준으로 말했던 듯하다. 이후로는 절대 무수면을 하지 않는다.


매번 내시경 준비 루틴은 똑같다. 전날 저녁 6시에 죽을 먹고 8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을 지닌 나트륨 물을 마시는 것. 과연 그 물맛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표현하는 문장이 있을까 싶다.

약간 짜면서도 이온음료 같으면서도 불쾌한 맛.

정도로 난 표현하고 싶다.


너무 긴장하고 있는 탓인지 8시에 마시라고 안내된 약물을 난 당연히 9시라 생각하고 마셨다. 마시다가 안내문을 보니 8시 시작으로 적혀 있어 놀랬다.


안내문에 따라 500ml 3컵을 마시고 나니, 서서히 신호가 왔다. 그렇게 3~4번을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2차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 누웠다.


잠이 금방 올 줄 알았는데 뒤척였다. 왜 뒤척였는지 알 수가 없다.(너무 긴장을 한 것인지) 결국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고, 1시간 뒤에 귀를 찌르는 듯한 알람 소리에 깨고 말았다. 알람 소리가 그리 날카롭진 않은데 그날은 1시간 밖에 잠을 못 자 너무 시끄럽게 느껴졌다.


다시 500ml 3컵을 마셨고, 또다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정확히는 2컵 반을 마셨다. 두 번째 약물은 반을 남기고 버렸기 때문이다. 도저히 마실 수 없었고, 이미 변은 물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반을 버리는 선택을 하였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대장 내시경은 왜 할 때마다 늘 새로운 것인지.

20대 초반에는 약물도 곧잘 마셨다. '이게 왜 힘든 거지?'라고 생각하며 벌컥벌컥 마시고, 사탕을 입에 넣어서 단맛을 돌게 한 후, 다시 뱉어내면 그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적응도 되려만 오히려 더 힘들다. 그렇게 지쳐 다시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깨서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오전 8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병원으로 향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한 상태여서, 비몽사몽으로 병원에 도착하였다.

"약은 다 드셨죠?" "네 다 먹었습니다." 다 안 마셨다고 하면 다시 돌려보낼까 걱정되어 오히려 더 큰소리로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이가 연로하신 분들일수록 약 먹기가 힘든 것 같다. 약을 안 먹고 오셨다는 분을 3분이나 보았다. 굶고 와서 괜찮다고 하시는 어르신도 있었다. 간호사는 단호하게 보호자를 불러 돌려보냈다.


수면 내시경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과 주의사항을 듣고, 한참을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난 베테랑인 마냥 침대에 옆으로 자신 있게 누웠다. "더 웅크리시고 엉덩이 더 빼세요" 간호사의 자세 교정을 몇 번이나 받았다. 역시나 내시경은 늘 새롭다.


주사제가 팔에 꽂은 관을 통해 주입되었다. 매번 긴장되는 순간이면서도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한숨 잔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잠이 오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첫 수면 내시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들었는데 '약이 약해졌나?', '이제 다른 수면약을 쓰나?' 온갖 생각이 들었다. 정신은 몽롱했지만 분명 눈에는 화면 속의 내 장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잠이 오지 않아요." "이상해요" 정신은 살아있지만, 약에 취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말을 했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TV에서 웃긴 명장면으로 꼽히던 내시경 받는 연예인의 모습과 흡사 비슷했을 것이다.

이윽고 내시경이 끝나 회복실로 옮겨졌다. 회복실로 옮겨지고 나서도 눈은 떠있는 상태로 의식이 있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 손을 들어 의식이 들었음을 간호사분께 알렸다.


3차 병원에서는 수면 내시경을 할 때는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하다. 보호자 없이는 수면 내시경이 불가하고, 회복실에서 퇴실이 불가능하다. 아빠가 와서 퇴실을 허락 맡았다.

병상 침대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는 순간 알았다. 머리가 띵하고 굉장히 어지러웠다. 아! 내가 수면 주사를 맞은 건 사실이구나. 천천히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6번째 나의 대장 내시경이 모두 끝났다.


매번 처음과 같이 새롭고, 해가 갈수록 점점 버거워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나트륨 물은 정말 마시기 힘들다. 크론병은 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내시경을 통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기술이 발전되어 먹으면 장 속을 훤히 알 수 있는 알약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 통 안의 500ml 물은 세상에서 제일 마시기 힘든 물일 것이다. ↑ 분명 8시로 적혀있는데 왜 9시로 생각한 건지 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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