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은 아니었다.
현재 나는 게임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내 전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직업이다.
내가 게임 기획자로 일하기까지의 과정을 이 글로 담아내려 한다.
고등학교 시절 국립대학교이면서, 고향인 청주를 벗어나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꿈을 이루긴 하였다. 청주와 멀리 떨어지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말이다.
대학교 전공은 어렸을 적부터 유독 통계에 관심이 많아서, 수학정보통계학부로 진학하였다. 1학년 때에는 학부에 속해 있었다가, 2학년 때 학부에서 정보 통계학과로 진학하였다. 처음에는 통계 전공이 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다. 통계는 어디에서나 필요하지만 그 범위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었는데, 당시에나 지금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난 통계 전공도 허덕이고 있었는데 말이다.
요즘에는 '컴퓨터 전자 공학과를 전공할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 개발자들의 대우가 점점 높아지고, 연봉 차이가 나고 있기 때문이다.
크론병으로 2학년 첫 학기를 휴학 후 군대 면제를 받고 복학하였다.
남자 동기들은 모두 군대에 갔고, 주위에 마음을 둘 편한 사람들은 3학번이나 높은 형들이었다. 형들이 다행히 잘 챙겨주어 곧 적응하고 같이 어울렸다.
고등학교 때 내재되어 있던 한량 같은 기질이 자유의 성인 되면서 터져 나왔다. 술을 좋아했고, 공부하는 것이 세상 싫었다. 고등학교 때 이미 공부하지 않았는가? 대학교 와서 끝이 나지 않는 시험에 난 스스로 놔버리고 말았다. 결국 3점대 학점과 토익 점수 없이 졸업했다. 좋은 취업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당시에 유명한 기업에는 모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군대 면제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아니다. 3점대의 학점과 한 줄도 없는 이력서를 받아줄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교양 수업으로 갔던 태안 기름 제거 봉사활동이라도 귀해서 넣어야 되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결국 졸업과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백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곳에 취업 지원을 해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다행히 용돈은 과외로 소소하게 벌면서 지내야 했다. 부모님이 당시에 크게 잔소리하진 않았던 기억인데, 지금 생각해 보니 무척이나 감사하다. 매일 집에서 게임하거나 밤새 술 먹고 새벽에 들어오는 철없는 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취업사이트에서 이런저런 공고를 보고 있던 와중에 게임 회사의 공고를 보게 되었다. 회사의 자유로운 분위기, 10시 출근, 사내 카페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잠이 많고, 화이트 셔츠의 차려입는 것을 싫어하며, 게임을 즐기던 나에게, 정말이지 운명과 같은 공고였다. 난 바로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게임은 나에게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던 즐거운 취미였다. 게임 보이, 오락실, 개인 컴퓨터, PC방 등 성장하면서 자연히 게임을 즐겼다. 그래서 게임 분야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게임 기획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QA 직무에서 시작하여 기획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류에 합격하여 여러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을 볼 때마다 으레 나오던 질문 중 하나가 면제에 관한 것 있었다. 당시에 면제는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였다. 지금도 물론 그렇겠지만 말이다.
난 면제 사유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면, 이 희귀한 질병에 대한 설명을 하기 어려웠다.
'장이 좋지 않아서 면제를 받게 되었다.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정도로 설명하였다. 이 대답이 내 길을 막지는 않았다. 다행히 취업에 성공하고, 이후에 기획자로 전향하여 게임 기획 분야에서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는 크론병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이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희귀 난치병과 취업은 아무 상관이 없다. 크론병이 걸림돌은 아니었으며, 진짜 걸림돌은 과거의 나의 모습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