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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누 Nov 05. 2023

6. 한 원룸에서 13년 살기

이제는 주(宙)가 아닌 식구로 느껴진다.

당신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몇 년 동안 살고 있나요?


전 지금 13년 동안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7평의 원룸에서요.


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전하면 굉장히 놀란다. 13년이란 세월에 놀랄 것이고, 원룸이란 집크기에 놀랄 것이다.

처음엔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나 자신이 대견해서이다.

하지만, 30대 후반에 살고 있는 집이 작은 원룸이라니.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창피했다.


나도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다.

처음엔 '곧 이사 갈 텐데 아무것도 꾸미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엔 '곧 이사 갈건대 새로 사지 말고 고쳐 쓰던가 버티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게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내가 이사하지 못했던 이유에 설명하자면,


첫 번째 이유는 이 집에 들어올 때 내가 이 신축 건물의 첫 입주자였기 때문이다. 새집 냄새가 나는, 비닐로 덮인 새 원룸이었다. 난 책상과 세탁기 등에 비닐을 떼며 이 방의 첫 주인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집에서 나만의 흔적을 남긴 결과, 이제는 익숙해진 곳이 되었고 다른 이의 흔적이 묻어있는 집으로 이사 가기가 어려워졌다.


두 번째 이유는 특이하게도 집주인이 개인이 아닌 건설회사이다. 그러다 보니 관리나 컨디션이 무척이나 좋았다.

반지하를 포함한 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1층은 밑에 반지하가 있어 높이가 어느 정도 있는 1층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또한, 내가 입주할 즈음에 건물에 아직 입주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5층까지 많은 방중에 난 1층 현관문과 가까우면서 어느 정도 현관 소음은 없는 방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짐을 들고 나르기에 무척이나 편한 방이었으며, 현관과 가까우면서 소음은 덜한 아니 거의 없는 최적의 방이었다.

또 다른 좋았던 점은 작은 고장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면 바로 회사 직원분이 찾아와서 수리해 주었다. 회사 소속의 직원분이기 때문에 빠르게 처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배달이 잘되고 배달비가 비싸지 않았다.

초기에는 아직 배달 어플이 크게 발달되지 않아 고작 중국집 배달이 전부였으나 점점 배달 어플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웬만한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배달비도 평균 3000원으로 특이하게 비싸거나 하지 않은 수준이다. 금요일 저녁을 제외하고는 모두 1시간 이내로 배달된다. 언제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먹는다. 이제는 전국 어디든 그렇겠지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사하지 못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네 번째는 주차 걱정이 전혀 없다.

중요도가 2번째로 높은 이유이다. 건물 앞 1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건물 뒤편으로는 50여 대 이상을 주차할 수 있는 공용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와서 한 번도 주차 걱정을 한 적이 없다. 차 있는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 것이다. 매일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여행을 다녀와서 주차 걱정 없이 생활을 했다. 몇 번이나 이사를 하기 위해 알아봤지만, 그때마다 주저하게 만든 것이 주차 문제이다. 또한 외진 곳이지만, 판교가 차로 10분 내외이며, 큰 도로가 원룸을 나오면 금방 있어 교통 체증이 덜 한 편이다.

다른 곳은 퇴근 시간에 교통 체증으로 심하게 막히던데 이곳은 그것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도심 지역하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강남, 판교, 근처 지하철역까지는 환승 없이 다닐 수 있는 버스가 있다.


마지막 13년 동안 집값을 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모두가 공감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도심 지역하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기 때문인지 처음 입주할 당시만 해도 공실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보이긴 한다. 확실한 건 아니다. 짐작일 뿐.

그래서 그런지 한 번도 보증금을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 무려 10년이 넘게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의리로 올려주지 않고 있나 싶다. 이제는 내가 이 40세대 정도가 되어 보이는 건물에서 제일 오래 살고 있는 최장 기간 입주자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무엇인가 부탁을 할 때면, 직원분들이 언제나 바로 처리해 주었다. 매번 고맙기도 하면서 뭔가 머쓱하기도 하다.


10년 동안 같은 보증금에 이사 가지 않는 입주자라니…

이제 2월에 결혼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이곳을 떠나게 된다. 이사 갈 그즈음에는 어떤 기분이 들지 아직은 모르겠다.

10년간의 애정이 깃든 이곳이 나에겐 이제 큰 의미가 있다. 다음 집도 이 집처럼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다.


집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넓은 도로와 좋은 산책길이 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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