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끝낸 노인의 얼굴에 주름이 더욱 깊어진 듯 보였다. 남아있었던 피부의 수분이 증발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모든 걸 토해낸 노인의 만족스러운 미소에 얼굴 주름이 자글자글 잡혔다.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까?”
“어쩌면 자네에게 이 이름을 이어가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몰라. 내가 그때 그 불쌍한 유대인에게 물려받은 것처럼 말이야.”
“제가요? 저 자신을 버리고요?”
“나는 자네를 맡긴 캐리비언의 그 가문을 알고 있네. 아주 무서운 자들이지. 올해 그들이 사람 하나를 이곳에 맡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당히 의심스러웠네. 그리고 그날 밤 자네를 직접 본 순간 한눈에 알았네. 자네는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란 걸. 그들 속에서 절대 어우러질 수 없는 사람이 그들 속에 머물고 있다는 것의 결말은 뻔하지.”
나는 아무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나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말을 이어갔다. 정말로 이 노인은 나를 알고 있었다.
“내 나이가 딱 100살이야. 생일이 지나자 급격히 몸이 나빠지더군. 자네를 처음 본 그날이 내 100살의 생일이었어. 100년이라… 나는 결국 조제프를 이기진 못했군. 조제프는 베우제츠에서 111일을 버텼으니까.”
“지금까지는 만족스러운 사람이 없었나요?”
“이 세상에 자네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그렇게 많이 벌어질 것 같나?”
그건 또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는 그와 사정이 달랐다. 그처럼 성공을 갈망하지도 않았고, 도망가야 하는 신세도 아니었다. 가진 것이 많이 없더라도 내 이름 정진 하나만으로 흘러가듯 살아온 삶이었다.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자산을 더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세요. 가령 프란시스의 사업확장을 돕는다거나요. 아니면 불우이웃을 도우시던가요.”
“이거 참 헛헛하구먼. 어쩌면 지금까지의 말은 다 핑계고 나는 인간의, 동물의 본능대로 내 대를 잇고 싶었는 건지도 몰라. 그간 슬하에 자식이 없었으니. 이곳에서 50년의 시간 동안 자식을 대체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의 후손이 될 수 없었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나? 나는 그저 우물쭈물했다. 노인은 이런 내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감사하네. 자네는 나와 달리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기를 바라네. 자네는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존재야. 한 곳에 50년을 살라고 하면 자살을 감행할 작자지. 자유롭게 떠나게. 떠나서 산이 푸르고 새가 아름답게 노래하는 한 작은 마을에 다다르면 그곳의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주게. 그게 자네에게 바라는 마지막 소원이네. 만나서 반가웠네 501호.”
“영감님도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자그마치 100년이야, 100년… 인제 그만 좀 쉬고 싶구만. 나는 눈을 좀 붙일 터이니 이제 돌아가도 좋네.”
그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 눈을 감았다. 조용히 숨을 쉬는 그의 모습은 곧바로 잠에 든 것 같았다. 나는 미동 않는 그에게 꾸벅 인사를 올리고 방을 나왔다. 응접실을 지나오며 다시금 여기저기 눈을 돌려 구경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방의 장식들이 어쩐지 지금은 쓸쓸해 보였다. 커튼이 걷혀 있는 창밖의 하늘은 오늘도 흐린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2024년 12월 21일에, 100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으로 생을 마무리했다. 나는 그 이후로 다시 530호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노인의 장례가 매우 조용히 치러진 이후에도 프란시스는 한동안 530호의 뒷정리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