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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Oct 24. 2024

챕터 30. X 이야기

    30. X 이야기



    나는 늘 특별한 일을 하고 싶었어. 툭 터놓고 말하면 내 출생이 특별하지 않아서 그런 꿈을 가지게 된 것 같아. 1924년, 그 당시의 별 볼 것 없는 아이들처럼 뉘른베르크 옆의 퓌르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지. 이름도 그저 그런 게오르그 호프만. 생긴 것도 흐지부지한 것이 무색무취 그 자체였어. 늘 남자답고 뚜렷한 얼굴을 동경했지만 그것은 내 차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차지였지. 내 선대에 어떤 피가 섞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게르만의 굳센 이미지보다는 유약한 가는 선을 가진 내 얼굴을 어릴 적엔 종종 저주했다네.

    내 가늘고 길쭉한 코 때문에 학교에서는 ‘모기’라는 별명으로 괴롭힘을 당했어. 집 창고에 있는 쟁기를 들고 가서 놈들을 찢어버리는 상상만 혼자서 몇 번을 했는지 몰라. 그런 다음에는 잔인한 상상에 대한 죄책감이 따라왔지. 판을 뒤엎어버릴 능력은 없었지만 속에 화만 많았던 구제 불능이었다네.

    그러나 머리는 또래보다 비상한 편이었어. 그래서 불만이 많았던 걸지도 몰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으니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할 수 있는 거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진흙탕에서 웃기만 하는 행복한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


    그저 그런 유년기가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나는 청년기에 들어섰다네. 부모님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자신들의 농가를 이어받기를 바랐어. 하지만 나는 그들의 그 말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어. 나는 항상 그들에게 말했지.

    이제는 산업의 시대라고요! 언제까지 흙을 파면서 먹고살 수 없어요!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고요!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야. 아마 대를 이어 농업에 종사해 오던 그 뿌리의 문제였겠지. 나는 그 줄기에서 이만 벗어나고 싶었어.


    기회는 찾아왔어. 그 시절은 한창 우리의 위대했던 지도자가 독일과 전 유럽의 판도를 새로이 바꾸고 있었거든. 그는 결국 위대한 아리아 게르만들을 위해 폴란드를 공격했지.

    나는 그에게 열광했어. 당시에 청소년들은 ‘히틀러 유겐트’라는 나치 꿈나무들을 육성하는 교육을 받아야만 했지. 나치의 장교나 친위대가 되면 개인의 배경과 상관없이 노력과 헌신으로 위로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피가 끓더군. 마치 나를 위한 자리 같았어. 당시 나는 애매한 나이 때문에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자격이 갖춰지자마자 당장에 기차에 올랐지.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나치 친위대가 되고 싶었네. 힘들다지만 직접 부딪히면 길이 열리겠지라는 헛된 망상을 했었지. 하지만 막상 찾아가서 확인한 현실은 달랐어. 그 길은 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단번에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어. 촌구석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 천지차이더라고. 순간 후회 비슷한 것을 했지. 이 얼마나 대책 없이 뛰어들었는가? 이대로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야, 호프만이 다시 돌아왔어!’

    친구들이 놀리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았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길은 있었지.


    군대에 자원하고 동시에 입당을 했어. 전쟁이라는 배경은 지금의 시대와 비교하면 본연의 직업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시기였다네. 전쟁이 진행되고 길어질수록 군대는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내가 입대한 이후로는 히틀러 유겐트에서도 소년병을 모으기 시작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입당에는 내가 가진 나치 이념에 대한 신념을 보여줘야 했지. 사실 나는 나치의 이념에 큰 관심이 없었네. 내 상승 욕구가 나의 이념이었지. 상승의 기회는 나치에 있었기에 나치의 이념이 곧 내 이념이 되었어.

    다행히 그들에게 나쁜 인상을 남기지는 않은 것 같았지. 학교를 끝내자마자 집을 떠나온 나를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나치에 미쳐있는 꼴통 소년처럼 보였으려나. 그렇게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네. 비록 고향에서 비주류에 붕 뜬 느낌의 나라도 바로 직업을 가지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지.


    나는 매우 열정적인 신병이었다네. 내 의지는 이미 러시아를 향한 최전선에 가 있었어. 이번 겨울에 들어 동부전선 확장에 조금 주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믿지 않았지. 프랑스 놈들을 함락시킨 전격의 일원이 되어 러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싶었다네. 내 충성심과 전공을 입증받고 위풍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내 가슴팍 위에서 빛나는 철십자 수훈장을 닦으며 말이지. 그러나 나는 내 영혼이 좇는 곳과 다른 엉뚱한 곳으로 보내졌다네. 바로 폴란드 구석에 박혀있는 시골로 말이야. 베우제츠였어.

    후송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드는 실망감이란! 베를린의 화려함과 위풍당당함, 그리고 훈련소의 비장함을 경험한 다음에 맞닥뜨린 장소가 이런 허접한 시골떼기라니. 나는 멍하니 서서 짧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네. 여기에 오는 동안 뭐 하는 곳인지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했어.

    유대인들의 수용소더군. 수용소 자체가 아직 완공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어. 유대인들을 잡아놓는 구역은 임시 건물이 대부분이었고 시설도 열악했지.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표시하는 영역이 부지의 전부라니.

    한 마디로 정리하면 허름한 시골 마을 옆의 오래된 공터가 시설로 바뀌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군. 마을과 멀지 않으면서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 인간 돼지우리가 만들어지고 있던 거야. 냄새도 고향의 것과 비슷했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질척거리는 진흙탕물을 제대로 밟아버린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 군화가 미끄러지면서 볼품없이 넘어질 뻔했었지. 최악의 첫인상이었지. 그러나 곧 이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머리로는 젊은 시절의 대총통처럼 총탄이 날아드는 전선으로 가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안심했다네. 들끓는 열정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고 총알과 포탄이 나를 비껴가지는 않으니 말이야.

    그래도 그때까지는 내 열정을 의심하지 않았지. 그래, 나는 그 순간까지는 꽤나 열정적인 보충 인원이었다네. 그러나 그곳이 지옥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


    전입신고를 하고 최대한 상관에게 열심히 보이기 위해 노력했네. 내 신화의 첫 문장이 바로 이곳에서부터 적혀질 테니까. 베우제츠 수용소의 총책임자인 소장으로는 바로 고위급 나치 친위대가 자리하고 있었어. 나는 내 소속이 궁금해졌지. 나는 국군의 소속이 아니었던가? 내 소속이 무엇이든 시설에는 급히 일손이 필요했던 것 같아. 혹시 여기로 배정받은 것이 친위대의 눈에 들어 추천받아 친위대의 일원으로 편입될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졌다네. 어쩌면 나에게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내가 고향을 떠나며 그렸던 미래로의 발판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그에게 잘 보이기로 마음을 먹었지.

    소장은 생쥐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 나는 이 비실비실한 생쥐 인간은 최전선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어. 어쩌면 속으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의 두 눈만큼은 번뜩이고 있었어. 한 시설의 책임자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겠지. 오히려 나는 그에게서 나의 가능성을 보았네.

    다행히 내 희미했던 얼굴의 인상도 성인이 되고 군 훈련소를 겪으면서 조금은 또렷해졌는지, 고향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날 때와는 다르게 그렇게 나쁜 첫인상으로 시작하지 않을 수 있었어. 형식적인 환영이었지만 내게는 충분히 성대했어. 사람이 모여 새로운 그룹이 형성되면 보이지 않는 계층 피라미드가 자연스레 생기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아래 계층으로 분류되는 인생은 이제 끝난 것 같더군.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들은 이미 괴롭히고 관리할 대상이 시설에 넘치도록 들어오기 시작했기에 내가 그 타깃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그 대상이란, 자네도 유추할 수 있겠지만 바로 유대인들이었다네. 내가 도착했을 당시는 시설이 일부 가동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어. 아직 시설에는 순혈 아리아인들만 있는 곳이었지. 며칠이 지나고 새 환경에 적응이 되기 시작할 때쯤에 그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어. 시설이 제대로 가동되기 시작한 거야.

    그들은 뭐랄까… 말 그대로 가축 같았어. 그들의 수는 정말 많았지만 그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기 힘들었지. 관광객이 사바나 초원의 얼룩말 무리를 보면서 각 개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말일세. 그래서 그들에게 숫자를 붙여서 구분 지은 걸까. 키가 크고 작고, 남자고 여자고, 어른이고 아이고, 아직 건강하고 아프고. 그들은 각자 분명히 달랐지만 모두 회색이었어. 처음의 내 눈에도 그들은 그냥 움직이는 회색 생명체들이었다네. 그들이 도착한 다음에 이 시설의 진정한 목적을 알게 되었지.

    베우제츠는 도시에 있는 게토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었어. 유대인이 처음 시설에 오면 분류되는 것은 같았지. 그러나 그 이후의 방향은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야. 소수의 노동이 가능한 건강한 남성을 제외하고 환자, 여자, 아이, 노인들은 따로 집합되었어.

    분류되어 모인 사람들은 곧 가장 마지막에 완공된 가스실로 보내졌네. 도착부터 처리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어. 가스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들의 비명이 멎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았지. 그리고 그들의 잔해들을 노동이 가능한 남성 유대인들로 하여금 치우게 했어.

    나는 당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네. 지금 와서 죄책감을 덜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충격적이었어. 성공을 위해 나치의 이념을 내 이념으로 삼았다지만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게지. 그래도 나는 버티기로 했네. 그게 성공을 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으니.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하는 진통제였으니까. 다행히 나는 나치 친위대 소속으로 온 것이 아니어서인지 가스실 근처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었고 다른 소소한 노동 구역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건 행운이었어.

    우리는 그곳에 그들을 가두고, 그들을 먹이고, 그들을 노동하게 했어. 고향 부모님의 농장이 떠오르더군. 그런 내 배경 때문에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 정도였어. 사람을 가축처럼 가둔 곳. 동시에 감옥 같은 느낌도 있었지. 물론 그들이 무슨 죄를 저질러 이곳에 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 다만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분위기에 나도 묻어갔을 뿐이야.

    나는 깊게 나치즘에 빠진 사람들과 다르게 그들을 혐오하지는 않았네. 다만 내가 그들보다 잘난 존재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 유전적으로 내가 더 우월하다기보다는 내가 누군가의, 그들의 위에 있다는 것이 좋았네. 나는 늘 또래들의 바닥에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들을 보면서 나는 유년기에 채우지 못한 우월감을 뒤늦게 벌컥벌컥 들이켤 수 있었어. 그런 의미에서 재소자들은 내게 고마운 존재였지. 고향의 사람들이 사람들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봐야 하는데! 그들이 이동 중에 빌빌거리고 픽픽 쓰러지기라도 하면 나는 뿌듯함을 느꼈어. 나약한 놈들.

    그러나 동시에 자연스레 연민도 생기기 시작했어. 그리고 연민이란 감정도 내가 우월한 위치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도 배웠지. 내가 저들처럼 지옥 속을 구르면서 지옥의 간수들에게 연민을 느낄 여유는 가질 수 없을 테니까. 그간 고향에서 나를 이런 시선으로 바라봤을 사람들을 생각하자 속이 잠깐 역하기도 했지만 곧 괜찮아졌다네. 괴롭힘 당하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그 아이들의 눈이 기억났지. 그래도 이제는 나도 그들과 같은 위치니까. 아니지, 나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내 믿음에는 점점 회의감이 이끼처럼 끼기 시작했어. 이 미쳐버린 인간 도살장과 돼지우리에 높으신 분들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 내가 이 정신 나간 시설에 배정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높은 분들의 사찰이라든지 심지어 흔한 위문공연 하나 없었지. 그들은 이곳을 더러운 쓰레기 소각로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걸 깨닫는 순간 갑자기 시설의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어.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도 모두 무능력한 잉여 인간들이 아닐까? 전선에서 나라를 빛낼 수 없는 잉여품들을 모아서 뭐라도 시키기 위해 만든 시설? 이런 더러운 일들을 죄책감 없이 시킬 수 있는? 절멸이란 그런 것이었나?


    가스실로 보내지지 않은 소수의 남자들. 나는 자연스레 그들 가까이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 그들을 관찰할 시간이 많았네. 일정한 거리를 뒀어. 너무 가까워지기는 싫었지. 죽음이 예정된 사람들과 같이 생활한다는 것은 묘한 두려움을 주는 것이거든. 그런 거는 교도소를 방문하는 생의 의미에 통달한 성직자들이나 덤덤히 그들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나는 겨우 20살 근처의 핏덩이였으니까.

    생존자들. 사실 생존자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얼마를 버티든 끝은 가스실이었으니까. 그들은 정확히 두 부류로 나누어졌네.

    하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부류. 그들은 생존본능이 제거된 것 같았네. 어느 미친 과학자의 뇌 부분 분리 수술로 살고 싶다는 의지가 사라져 버린 실험체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지. 그들 중 대부분은 이곳에서 가족이나 지인을 먼저 가스실로 보낸 사람들이었어. 그렇게 보면 일종의 분리 수술을 당했다고도 할 수 있겠구만. 그들은 심한 경우에는 먹을 것도 거부했네. 당연히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 일반 노역을 나가는 경우는 그나마 나았지만… 가스실 정리를 하러 가는 날에 그들의 몸과 정신은 온전치 않았지. 결국 그대로 쇠약해져 그들의 가족을 따라 가스실로 끌려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네.

    다른 부류는 바로 생존의 의지가 강한 쪽이었어. 그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어. 부실한 배급 음식도 악착같이 목구멍으로 넘겼지.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했다네.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가혹했거든. 그리고 그들의 DNA는 얼마나 건강하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게 하는 시한부 선고 태그였어.

    그렇다면 수용소는 일정 수준의 노동력 보전을 위해 그들의 처우를 개선해 줬냐고? 전혀. 그들을 잃는 만큼 새로운 재소자들이 보충됐거든. 절멸이 시작된 이후로 물밀듯이 그들이 이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졌어. 나중에는 기차에서부터 벌거벗겨져 분류도 하지 않고 가스실로 직행하는 시기도 있었어. 그러니 노동력이 줄어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남자를 나는 알고 있네. 알다마다. 내 인생을 바꾼 남자니까.


    그는 가장 뜨거운 여름에 베우제츠로 이송되었다네. 학살과 함께 시작한 꽃과 새싹의 계절이 끝나고 매미의 계절로 바뀐 어느 날이었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몇 개월이 지나자 처음의 충격은 옅어지고 어느덧 우리의 일상으로 학살을 받아들였지.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했어.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났네.


    “조제프요.”


    그는 노역팀에 합류하는 날에 자신의 이름을 내게 알렸네. 당시 나는 노동 인원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최대한 알려고 하지 않았네. 그간 지켜봐 온 그들의 결말은 어차피 가스실을 거쳐 자신들이 청소하던 시체 소각로로 향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당찬 남자가 달갑지 않았어. 또렷한 눈빛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 다른 놈들처럼 보자마자 내 아래의 생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군요.”

    “그게 느껴지오?”

    “아무래도 그 의지는 잃을 것이 아예 없거나, 잃을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겠죠.”

    “나는 둘 중 어느 쪽인 것 같소?” 

    “모르죠, 나는 당신을 모르니.”


    내 말에 조제프는 크게 웃었지. 웃음이라. 그곳에서 내가 본 웃는 유대인은 한 명도 없었네. 그저 강한 척하는 걸까? 나는 직접 확인하고 싶어 졌네. 이 남자의 끝은 어떨지.

    며칠이 지나고 나는 다시 그를 마주하게 됐네. 그는 역시나 열심히 움직이더군. 그는 나를 보고 나를 알아본 얼굴을 하더군.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지.


    “잠깐이지만 당신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지켜봤어요. 살아남고 싶나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이 오기 전까지 여기서 가장 오래 버티던 사람도 바로 어제 머리카락이 모두 잘리고 뼛가루가 됐거든요.”


    그의 생존의지를 꺾으려 건넨 말에도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지.


    “그가 얼마나 버텼소?”

    “107일이요. 우리가 받은 첫 이송 기차에서 내린 사람이었죠.”

    “그렇다면 내가 그 기록을 깨겠소.”


    나는 실소를 터트렸지.


    “아무래도 이게 어떤 스포츠나 게임 같은 걸로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라도 버틸 수 있다면야. 많은 도움 부탁드리리다.”

    “당신 말대로 여기서 오래 버티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소리 입 밖으로도 뻥긋하지 마세요. 특히 친위대 대원이나 장교 앞에서는. 나도 방금 ‘도움’ 이야기에서 당신 얼굴을 후두려 패서 정신 차리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으니까.”

    “내가 주제넘은 소리를 했구만. 미안하오. 내 명심하리다. 그래도 당신은 내 얼굴에 펀치를 날릴 위인이 아니야.”


    내가 어리고 만만해 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군대에 들어가고 나치에 입당해도 결국 친구들에게 밟히는 모기 게오르그니까? 그의 말에 내 지난 시절들이 떠올랐지. 학교와 마을에서 무시받던 모습들. 나는 분노했네.

    이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란 말이야! 언제라도 죽어 없어질 녀석에게 이런 취급을!

나는 폭발하는 분노와 함께 그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벽으로 밀쳤네.


    “주제넘은 소리만 하는 것 같은데 입을 아주 뭉개버려야 그만할 건가? 나랑 당신의 위치를 체감시켜줘야 하나?”


    벽에 처박힌 그였지만 표정 하나 꿈쩍하지 않더군. 거기에 내 기세는 바로 꺾였다네. 이건 미친놈이다. 수용소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타입이었지만 이런 종자들은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 못 가 수용소의 다른 무장병력에게 총 맞아 죽을 운명이라 생각했지.

    나는 한숨을 쉬고 그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았는지도 몰라. 나는 그저 재소자들을 멀리서만 바라보며 혼자서 우월감을 느끼는 음침한 약골이었으니까.

    조제프는 그의 호언장담처럼 열심히 버텼다네. 우리의 작은 충돌 이후로 그는 나를 보면 꽤나 친한 척을 했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도 처음의 불쾌한 감정은 사그라지고 그와 조금 가까워졌다네. 아무래도 그와 나의 현실적 위치에서 오는 차이가 연민을 다시 불러왔기 때문이라고 믿었지. 그는 아무리 굳건한 사람이라도 돼지죽 같은 음식을 먹으며 더러운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잘 먹고 잘 입고 그들을 관리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나는 네 놈의 위에 있어 조제프.

    어쩌면 그게 조제프의 생존전략이었는지 몰라. 빌빌대는 회색 동지들이 아닌 멀쩡한 사람과 대화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면 정신을 좀 더 붙잡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을까? 내가 그의 생존에 딱히 직접적인 도움을 준 건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그를 더 버틸 수 있게 그를 도왔는지도 모르지.

    그는 노동 중간에 쉬는 시간이 생기면 가끔 나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그의 가문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태인 샤일록처럼 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치들이었네. 그러나 그는 독립을 원했고 가족들과 한바탕 싸운 다음 기회를 찾아 아르헨티나로 홀로 떠났다고 했지. 가족들 보란 듯이 거기서 사금 채취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와 성공을 얻었다고 했어. 개인의 성공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사회를 키우는 데에 일조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

    어떻게 보면 조제프는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야. 부모에게서 나와 성공과 인정을 받은 삶. 그러면 뭐 하나? 결국에는 가스실 입장을 앞둔 꼴이 돼버렸는걸.

    그는 사업차 유대인 아내와 유럽에 출장으로 장기간 머물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했어. 처음에는 게토에 함께 있었지만 자신만 이곳으로 보내졌다고 했어. 다행히 그녀는 조제프 본인이 취한 조치로 비교적 안전한 그곳에 머물 수 있었다고 말했지. 나는 그에게 연민과 동시에 작은 질투도 느꼈네. 그러면서도 그가 해줄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지. 나도 모르는 새에 그의 작전에 말려들었는지도 몰라.


    조제프가 베우제츠에서 드디어 107일을 넘긴 날이 찾아왔어. 계절은 다시금 바뀌어 겨울이 시작된 시기였지. 그날 새로운 유대인들을 실은 기차가 도착했어. 그들은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지. 기차에서부터 오는 내내 일산화탄소를 조금씩 먹였다더군. 덕분에 이미 기차에서도 시신이 칸마다 몇 구 발생한 상태였지.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옷을 다 벗은 상태였어. 벗은 옷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였지. 아마 호흡기를 보호하려고 한 최후의 발악이었다네. 물론 효과는 그리 보지 못한 것 같았지만 말이야.

    기차가 서자 사람들은 기차에서 뛰쳐나왔지. 먼지가 묻어 살색과 잿빛이 섞인 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어. 그들은 맨살로 받아내는 겨울의 추위보다 좁은 기차에서 그들을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에 더 괴로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네.

    우리 인원들이 몽둥이로 그들을 통제했어. 혼비백산하여 무리를 이탈하는 자에게는 앙상한 뼈가 드러난 맨살이라도 무참히 몽둥이질이 가해졌다네. 벌거벗은 야윈 몸이 단 한 번의 매질에도 픽 쓰러지는 모습은 아직도 꿈에서 나와.


    평소의 프로세스처럼 분류 준비를 하려는 차에 다른 명령이 내려왔어. 그들은 모두 가스실 행이라는 내용이었지. 그 소식에 나는 한숨이 나왔어. 그들이 안쓰러워서는 아니었어. 그저 치울 것들이 많은 하루가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반년 넘게 절멸 수용소의 일원으로 보낸 나에게는 농부가 밭을 관리하는 것처럼 일과일 뿐이었어.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법을 연습한 이후로는 더욱 쉬웠지. 유일하게 사람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조제프였어.

    우리는 노동반을 호출해 평소처럼 ‘그 일’을 준비했어. 가스실을 준비하고 희생자들을 인도했지. 아주 짧은 틈이었어. 아주 짧은 틈이었지만 조제프는 헐벗은 산 송장 틈에서 자신의 아내를 발견한 거야. 그리고 조제프의 눈에 들어온 그녀는 순식간에 가스실로 집어넣어 졌다네.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헤어졌다는 그녀가 그의 남편을 따라 이곳에 보내진 것이지.

    조제프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어. 가스실로 걸어 들어간 그녀는 나올 때는 제 발로 걸어 나오지 못했지. 그 시점부터 조제프는 변했다네. 내가 말했던 두 부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그중에 생존본능이 가득한 부류의 최첨단에 서 있던 그는 순식간에 정반대의 끝으로 추락했어. 베우제츠에서의 107일 차. 본인이 배포 좋게 세운 기록을 깨는 날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무너뜨려 버리는 날이었던 거지.

    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날 밤, 나는 그를 잠시 불러내어 달빛 아래에서 이야기를 잠시 나눴어. 그가 갑자기 돌변한 이유가 궁금했거든. 당시의 나는 그녀의 아내에 대한 것은 전혀 몰랐으니까. 나는 그냥 107일의 기록을 깨는 순간 동기부여가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 독한 사람이 이렇게 변하게 될 이유가 될 수 없었지. 분명히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에게 물었어. 그는 말한 것은 나를 바로 이해시켰다네.


    "그녀와 눈이 마주쳤소."

    "기운 내요."

    "그녀의 유해를 일부라도 내가 찾을 수 있겠소?"

    "당신도 잘 알잖아요."


    나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가로저었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어. 이렇게 전원 처형이 있는 날의 소각로 상태가 얼마나 엉망인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었지. 그는 힘없이 끌끌 웃었네. 그가 너무 안 됐더군. 어쩌면 나는 그를 내 친구라고 생각했었나 봐. 내 다른 동료와는 어느 정도 이상 더 친해지지 못했지만 조제프와는 달랐지.


    "내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나는 이제 얼마 못 버틸 거 같소."

    "오늘이 며칠째인지 알아요? 108일이에요!"

    "내가 해내기는 했군."

    "오늘부터 계속해서 매일매일이 신기록이라고요! 약한 소리 하지 말아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네. 몸은 아직 건강했지만 눈에 있던 생기는 사라져 버린 상태였지.


    "저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뭘 어쩌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않겠소?"

    "살고 싶지 않으세요? 다른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난리인데."

    "이미 죽음보다 더한 것을 겪었는걸."

    "살겠다는 목표는요?"

    "나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소. 그리고 실제로도 곧 죽겠지. 내가 과거에 얼마나 잘난 사람이었건 나는 체포된 유대인이니까."

    "동부전선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요. 어쩌면 이 미친 짓이 기적적으로 멈출 수도 있어요."

    "그런 소식은 관심 없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미 죽었소. 당신은 아직 살아있지 않소."

    "만약 동부 전선의 소식이 사실이라면 제 입장과 아저씨의 입장이 바뀔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것도 받아들이시게. 포로가 되거나 총탄이 심장을 꿰뚫어도 결국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지. 만약 그러기 싫다면…"

    "싫다면?"

    "내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내 인생을 한번 이어서 살아보는 것은 어떻소?"

    "네?"


    그의 부탁은 놀라운 내용이었어. 내게 그의 아르헨티나 금광 산업의 모든 것을 넘긴다는 거였지.


    "내가 죽고 당신이 이 생지옥을 빠져나가게 된다면 아르헨티나로 가서 내가 말한 곳을 찾아가시오. 내가 긁어모은 대부분의 금이 그곳에 있소. 자네는 슬쩍 그곳으로 돌아가 나로 살아가는 것이오."

    "너무 황당하지 않나요?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보세요?"

    "어차피 나와 아내의 가족경영으로 돌아가던 사업체였다오. 일을 도우던 아르헨 현지인들을 몇 고용했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고용주가 어떻게 바뀌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작자들이오. 아마 우리 가족이 모두 실종된 이후로 자신들이 사업체를 빼앗아 경영하고 있거나, 그럴 능력과 머리가 없으면 현장을 모두 약탈하고 떠났겠지. 아직 사람이 있다면 내 이름을 대고 자리를 이어받고, 모두가 떠나버렸다면 숨겨둔 금고를 찾아가시오. 내 위치를 알려줌세. 필요하다면 유대인 행세를 해도 좋네. 나와 그녀가 자식을 가지면 우리의 전통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교육책을 써놓았네. 그것을 숙달하게. 그리고 자네는 지옥 속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되어 내 이름을 마지막까지 이어가게. 내 이름은 조제프 스피노자라네."


    그는 잃을 것이 많아서 버티는 부류였던 것이지. 그를 버티게 만들었던 것은 단 두 개. 하나는 그의 아내였고, 다른 하나는 아르헨티나에서 그가 이루어낸 성공. 이 두 가지가 그를 강하게 붙잡고 있었던 것이야. 그중 하나가 끊어지자마자 그는 순식간에 위태로워졌고 잠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추락했다네. 그가 떨어진 날은 그가 이곳에 온 지 111일이 되는 날이었어. 그는 떨어지기 전까지 내게 모든 것을 남기고 알려줬다네.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일단 받아들였어.


    그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부전선의 상황은 추운 겨울바람에 밀려 더욱 악화되었지. 12월이 되자 드디어 이 시설이 있는 곳까지 전선이 밀려났어. 그리고 급박한 전황 때문인지 베우제츠 수용소에 대한 철수 명령은 너무 늦게 내려왔네. 서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러시아 군인들이 도착한 것과 비슷하게 도착했어.

    우리는 시설을 버리고 도망쳤다네. 다들 혼비백산했지. 여기는 애초에 전선이 아니었고 우리가 가진 물자나 시설로는 그들에게 저항할 수가 없으니까. 다들 짐도 제대로 안 싸고 마당 여기저기를 뛰어다닐 때 나는 그 기회가 찾아왔음을 느꼈네.

    나는 기차에 오르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근처의 마을로 뛰었어. 입고 있던 군복을 벗고 재소자에게 지급되는 옷으로 바꿔 입었네. 나는 마을의 성당으로 뛰어 들어갔어. 다행히 자애로운 그들은 나를 숨겨주었네.

    나는 거기서 2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네. 나의 새로운 이름에 대한 적응을 마쳤지. 유대인 생존자 조제프 스피노자. 나는 많이 바뀌었네. 그러나 나의 변신은 아직 한 단계가 남아있었지. 성당의 일을 도우면서도 머릿속에는 아르헨티나의 금광 생각뿐이었지. 마치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어. 어린 시절에나 읽었던 그런 소설 같은 일이 곧 내 앞에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몇 년이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스페인어를 공부했어. 목적이 있으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계획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

    1944년이었어. 그 유명한 D-Day가 일어났지. 그리고 자네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머지않아 결국 내 조국은 항복선언을 했다네. 내 우상이었던 총통도 비참하고 초라한 결말을 맞이했어. 내가 가지고 있던 그에 대한 환상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어. 그도 한 명의 실패한 인간이었어. 조제프와 마찬가지였지. 전혀 아쉽지 않았    어. 나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상태였으니까.

    //"베우제츠(벨제크) 절멸 수용소는 실제로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주로 유대인 학살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소설 내에서 등장하는 특정 인물과 사건은 허구이며,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종전이 되자마자 나는 아르헨티나로 향했어. 유럽 전체는, 특히 내 나라와 주변국들은 전후 수습으로 온통 혼란스러웠네. 그 혼란을 통해 나는 내 새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었네. 진정으로 지옥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 된 거지.

    새 신분으로 배에 오르고 전 유럽은 전범재판의 열기로 뒤덮였다네. 공교롭게도 재판은 내 고향 마을 근처인 뉘른베르크에서 열렸다네. 그리고 나는 기분 나쁜 소식을 들었지. 베우제츠의 총책임자가 자신의 벌을 최대한 덜기 위해 한낱 말단이었던 내 이름까지 전범으로 대었다는 거야. 더욱이 나는 실종상태였으니 나 자신을 변론할 수도 없었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징집병들은 전범에서 제외되었지만 죽음의 수용소의 일원이었던 내 이름, 게오르그 하프만은 전범이 되어 있었지. 거기다 행방불명된 내 소재 탓에 그들은 열심히 자신의 죄를 나와 나눴어. 그렇다고 그들의 죄가 덜어지진 않았지만 덕분에 더러운 얼룩은 내 이름에 덕지덕지 묻었지. 나는 조제프 스피노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진 것이야.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네. 조제프의 예상 중의 하나처럼 금광은 개판이 나 있더군. 이미 금이 나올 만큼 모두 채굴이 되었던지 일꾼 하나 없었지. 나는 조제프와 아내가 머물렀던 집으로 갔네.

    집도 엉망이었지. 나는 먼저 집을 정리했네. 정말로 책이 많더군. 그리고 그가 말했던 그의 자식을 위해 그가 집필한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한 서적을 찾았어. 미래에 만날 그의 자식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어. 나는 열심히 그 책을 읽었지.

    집 정비가 끝난 다음 한 일은 그가 알려준 비밀 금고를 찾아가는 거였네. 산속에 있는 금고는 금고라 부르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커 거의 창고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네. 그리고 그 안에는 금들로 가득 차 있었지. 혹시나 모두 조제프의 거짓이면 어쩌나 하는 내 일말의 의심도 모두 금빛으로 물들어 녹아 사라졌다네. 그렇게 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어.


    나는 새롭게 태어났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지. 고향의 친구들이 나를 다시 마주친다면 내가 그 시절의 '모기' 게오르그였다는 사실을 절대로 알아낼 수 없었을 걸세. 나도 모르게 인상도 바뀌었고, 전체적인 체격과 사람이 뿜어내는 분위기도 달라졌어.

    조금씩 사람들이 있는 마을을 방문하기 시작했어.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 독일 억양을 숨기기 위해서였어. 자연스레 남들 앞에서 말을 많이 아끼게 되더군. 대신에 나는 그의 집에 쌓여있는 책들을 통해 교양을 쌓고 그들의 언어를 파고들었다네.

    그렇게 10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나는 마을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지. 조제프의 유산을 물려받은 부와 교양, 그리고 내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말을 아꼈던 것이 그런 신비롭고 현명한 이미지를 내게 씌워버린 것이야. 웃기지 않나?

    문제는 유대인들 쪽이었어.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사회는 유럽이 전쟁의 불씨로 타오를 동안 더욱 굳건해져 있더군. 나는 나 자신을 베네치아에서 온 같은 이름을 가진 조제프의 동생으로 소개했네. 그의 유지를 잇기 위해 조용히 이곳으로 왔다고 설명했어. 그들은 내 기대만큼 순진하거나 멍청하지 않았어. 단번에 내게서 의심스러움을 발견한 것 같았지.

    그러나 아직은 심증만 있는 단계였나 봐. 나도 조제프의 조언 덕분에 준비를 하기는 했으니까. 내가 흉내 낸 그들 일족의 모습이 꽤나 그럴싸했던지 처음의 고비는 넘겼어. 나는 내가 이룩한 것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이 모든 연기가 들통날까 무서웠네. 극도로 조심했지. 결국 조제프가 활약했던 유대인 사회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네. 유대인들 보다는 마을 사람들과 가까웠어. 그래도 그들에게도 절대로 내 팬티 속을 보일 수 없었어. 나는 진짜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우연히 보게 되면 소문을 퍼뜨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거든.


    시간은 더욱더 지나 내 나이가 40줄이 넘었어. 선생님이란 호칭은 마을 사람들의 친근한 과장을 통해 교수님이라는 호칭으로 바뀌어 있었네. 그렇다고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간 건 아니었어.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꽤나 지났지만 전범에 대한 세상의 분노는 여전했고 히틀러와 나치는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 내가 아르헨티나로 떠날 때 게오르그 호프만이 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는 목격담이 돌았다더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 마음속에 남아있던 그 이름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모두 버렸어.

    안정감 속의 불안감을 느낄 때 그를 만났지. 앙드레 풀랑크. 바로 이 부르기뇽 요양원의 프란시스 풀랑크의 아버지였지. 그를 처음 본 것은 레스토랑에서였어.

    그는 프랑스에서 온 나와 비슷한 나이의 패기 넘치는 사업가였어. 그는 호화로운 여행에서 벗어나 내가 있는 마을까지 흘러들어왔지. 그는 외지인이었지만 그날 식당에서 목소리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어. 어느 그룹에 가서든 손쉽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종류의 인간 중에 하나였지.

    나는 그를 바로 알아보았네. 그에게서 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냄새가 났지. 베우제츠 수용소가 해산하는 그날에 맡았던 냄새와 비슷한 것이었어. 나는 그 냄새를 다시금 쫓기로 했네. 오랜 시간 쉬어서 그 특별한 후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도 했지만 도전하기를 선택했지. 어쩌면 이 생활에 지루해져버렸나 봐.

    마침 앙드레 풀랑크는 그의 돋보이는 존재감이 마음에 들지 않은 마을의 어린 청년들과 시비가 붙었네. 기회였지. 나는 적극적으로 중재를 나섰네. 그러다 양측 사이에 결국 주먹이 오고 갔고 어쩌다 보니 나는 그의 편에 서서 주먹을 날리고 있었어. 그날 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네.

    유머감각이 있는 앙드레는 나를 ‘프로페서 X’라고 불렀어. 마을 사람들이 실제 박사 학위도 없는 나를 교수님이라 부르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 처음에는 유럽의 적당히 부유한 집의 자제로 진짜 대학을 나온 입장에서 뱉는 조금은 조롱기가 섞인 별명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농일 뿐 그 이상의 악의는 없어 보였어. 그리고 내가 표면에 보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나를 미지수의 의미를 가진 X라고 불렀지. 하지만 당시 나는 그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는 없었네. 그냥 그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했어.

    그는 유럽의 갖가지 재미있는 소식을 들려줬지. 전쟁이 끝나고 유럽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고. 이 대륙 북쪽의 미국에 대한 이야기도 했어.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했지. 첫 번째 목표였던 스페인어를 완벽히 숙지한 나는 다음으로 영어를 공부했거든.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세계대전을 모두 종결시켜 버린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선택이었다네.

    그는 히틀러가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낸다는 루머가 있다는 소식도 전해줬네. 술자리 안주에 지나지 않은 소문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지. 억울하지만 내 본래의 이름인 게오르그 호프만은 전범의 이름이었으니까. 저 말도 안 되는 루머도 오래전 유대인 학살자 게오르그 호프만이 아르헨티나행 배에 올랐다는 소문이 변형되고 발전되어 나온 것이 아닐까 했지. 혹시나 나 때문에 난 소문은 아닐까 잠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네. 종종 예전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처럼 마을 광장에 묶여 화형을 당하는 꿈을 꾸고는 했어.

    앙드레는 자신이 호화 숙박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어. 서민들의 코 묻은 돈을 긁어모으는 것보다는 부자들의 씀씀이를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이 바로 큰돈을 모으는 방법이라고 말했지. 그래서 전 세계의 최고급 호텔을 돌아보는 여행 중이었던 거야. 아르헨티나도 그렇게 방문하게 된 거였어.

    그는 그것 말고도 재미있는 사업 구상을 많이 하고 있었어. 문제는 그 아이템들을 진행시킬 자본이 부족하다는 거였지. 나는 깨달았네. 내가 가진 금들이, 나 혼자 쓰기에는 너무나 많은 그것들은 그를 돕기 위해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날로 우리는 손을 잡았지.


    나의 잠들어 있는 자본을 활용해 그는 솜씨 좋게 그의 사업을 키워갔네. 그리고 그는 성공을 바탕으로 그가 꿈에 그리던 이 요양원을 건설했어. 첫 간판이 걸린 게 1973년이었지. 나는 그에게 나는 유럽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몸이라는 사실을 말했네. 그는 구린 내가 풀풀 나는 내 개인 사정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어. 그사이 다져진 우리 사이의 파트너십과 우정은 굳건했거든. 사업이란 것은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천상 사업가였던 그는 더러운 일도 발전에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해냈으니까.

    그는 오히려 내 사정에서 착안해 이 비밀스러운 요양원의 컨셉을 잡았다네. 앙드레는 나를 이 요양원에 평생 숨겨주겠다 약속했어. 나는 그 덕분에 아르헨티나를 벗어나 근 30년 만에 다시 유럽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 30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어. 나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네. 모두 이 요양원 덕분이야. 그는 내게 가장 좋은 방을 내어주고 여기에 살게 했어. 맞네, 바로 이 530호라네.

    그는 방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충족시켜 주고, 종종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내게 와서 들려주었지. 그게 비록 다른 손님들의 은밀하고 민감한 프라이버시 일지라도 말이야. 내게 들은 비밀들을 다른 곳에서 떠들어댈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한 행동이었지만. 그 전통은 그의 아랫대까지 내려져서 최근까지도 나를 즐겁게 해 주었지.

    그 외에도 이 방의 장식품들은 그가 내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었어. 어찌 보면 우리들의 공동 소유품이었지. 530호는 그의 개인 미술 소장고였던 거야. 나는 한창 오스만 미니어처에 빠져 있었는데 그런 나를 위해 소더비의 비밀스러운 경매를 통해 몇 점 구해다 주기도 했지.

    그랬던 그는 나처럼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네. 그의 다른 사업들은 전문 경영인들에게 넘기고 그가 가장 공을 들였던 이 요양원은 그의 아들인 프란시스에게 넘겼네. 그리고 요양원과 함께 나도 넘겼지. 그렇게 나는 요양원의 유령이 되어 지금 자네를 마주하고 있어.

    여기까지가 나의 이야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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