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었다.
아직은 설익은 색깔,
바람에 흔들리며 빛나는 풋내의 시간들.
아무것도 모르기에 모든 게 두려웠고,
아무것도 몰랐기에 모든 게 아름다웠다.
햇살은 따가웠고,
비바람은 견디기 어려웠지만,
나는 그저 빨갛게 익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당당하게, 뜨겁게.
그러나 익어가는 건 고통이었다.
햇살은 나를 태우고,
비바람은 나를 흔들어 놓았다.
어쩌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지 끝에서 홀로 버텨야 했던 그 긴 시간들.
다른 이들은 저마다 빨갛게 물들어 가는데,
나는 왜 아직 이리도 초록일까.
왜 내 속은 여전히 단단하고,
겉은 투명하게 상처받기 쉬운 걸까.
시간은 잔인하게도 나를 지나쳤고,
마침내 나도 알게 되었다.
빨간 것은 단순히 뜨겁거나 아름다운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바람과 햇살을 견딘 흔적이라는 걸.
뜨겁게 익어가며 흘린 눈물과 땀이,
내 색깔을 만든다는 걸.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빨갛게 익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알지 못했다.
내가 빨개졌다는 걸 깨달은 건
다른 누군가의 손끝에서였다.
"잘 익었구나."
누군가의 짧은 한마디에,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았다.
익어간다는 건,
그저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모든 계절을 담아내는 일이었다.
삶이라는 나무 끝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티어낸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나는 그저 빨갛게 익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