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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절한 처벌에 관하여

Strega Nona 그림책 수업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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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학기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그림책은 토이 데파올라의 『Strega Nona』이다. 이 책은 다양한 영어 단어들, 인물의 성격, 형용사들을 가르치기게 좋고, 만약 가정법을 배운다면 가정법을 활용하기에도 좋다. (If I were Big Anthony, I would...../ If I were Strega Nona, I would.......) 또한 책임감의 의미와 규칙을 지키는 것 등 도덕적 관념을 가르치기에도 좋다. Big Anthony가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기 떄문에 온 마을이 파스타로 덮이기 된 이야기 등에서 인과 관계에 대한 문장 쓰기 훈련도 할 수 있다. 매 수업 때마다 이와 관련하여 수업을 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한가지만 바꿔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바꾼 한가지가 이 수업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고 학생들의 사고력을 확장시켜 주었다. 어떤 것을 바꿨을까?


이번 수업에서 바꾼 내용은 Big Anthony의 잘못에 대해 Strega Nona의 처벌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그동안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Strega Nona는 Big Anthony에게 자신의 pasta pot을 절대 만지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Big Anthony는 할머니가 파스타를 만들 때 몰래 엿보면서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어설프고 성급한 Big Anthony는 파스타를 멈추게 할 때 해야하는 세번의 키스인 마지막 주문을 보지 못하고 만다. 즉 그는 요술 냄비 사용법을 다 익히지 못한 것이다. Big Anthony는 할머니가 없을 때 그 냄비를 사용해 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드디어 할머니가 이웃마을의 친구를 방문하기로 하면서 집을 비우게 된다. 파스타를 만들어 온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지만 정작 파스타 냄비를 멈추지 못해서 마을을 위기에 빠지게 한다. 온 마을이 파스타로 덮히게 되는 공포로 몰아넣은 것이다. 다행히 할머니가 돌아와서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위험한 사태는 종료됐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게 있다. 바로 잘못을 저지른 Big Anthony에 대한 처벌이다. 마을 사람들은 "String him up."이라고 외치면서 그를 감옥에 가두고자 한다. 할머니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을까?


"The punishment must fit the 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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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ga Nona의 처벌방식은 이 책에서 매우 인상적인데, 할머니는 마을에 넘쳐나는 파스타를 Big Anthony가 "직접 먹어서 치우게"하는 벌을 준다. 그녀는 단순히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결과를 스스로 경험하게 하여 깨닫게 하는 교육적 처벌을 선택한다. 잘못에 대해 그에 대해 분노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고 수습하게 하는 처벌인 것이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Big Anthony가 책임과 겸손을 배우고 또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했으니 말이다.


학생들에게 이야기와 유사하게, 직접적 체벌이나 벌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반성하고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을 떠올려 보게 했다. 여러 책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 안소니 브라운의 『돼지책』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남성들이 집에서 모든 일을 엄마에게 떠 맡기자 화가 난 어머니는 조용히 집에서 사라지고, 집에 남겨진 남자들은 점차 돼지로 변해간다.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이었을까. 이 이야기 또한 직접적인 벌이 아닌 자신의 행동이 낳은 결과를 직접 체험하게 하면서 반성하게 만드는 구조이다.


좀 더 어린 시절에 기억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국민학교 학예회가 있던날, 고학년 선배들은 <스크루지 이야기>로 연극을 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소품과 음향으로 손수 공연을 했으니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공연의 질은 결코 낮지 않았다. 탐욕스러운 스크루지 영감이 세 유령의 방문을 통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면서 스스로 성찰하고 회개로 이어지는 내용이었는데, 전교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공연이었다. 이 연극은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근거한 연극이다. 어느 누구도 탐욕스러운 스크루지를 물리적으로 벌을 주려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자신의 행위가 초래할 미래를 직면하게 되는 심리적인 처벌을 받는 수준이다. Strega Nona 할머니가 Big Anthony에게 주었던 성찰과 비슷하게 이 작품도 스스로 깨닫는 것이 진정한 처벌이자 관계의 회복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소 마법적 장치가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도 비슷하다. 도리안은 젊음을 유지하는 대신, 자신의 초상이 그의 도덕적 타락을 대신 짊어지고 추하게 변해간다. 이 소설에서도 다른 외부의 누군가가 그를 물리적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초상화가 그의 죄와 부패를 온전히 반영하고, 도리안은 자신이 만든 결과를 보면서 공포에 질린다.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형국이다.


『Strega Nona』에서 중요한 것은 처벌은 그 죄에 딱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Anthony가 마술 파스타 냄비를 사용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신기한 냄비를 보여주고 더불어 맛있는 파스타를 제공하고자 했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잘못을 했다고 그를 감옥에 가둔다는 것은 할머니가 생각하기에도 매우 지나친 처벌이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딱 맞는 처벌을 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게 하는 벌을 내리는 것, 우리 삶에서,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죄에 딱 맞는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우리 사회에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규칙과 규범, 더 나아가 법을 어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왜 그럴까. 누군가는 아주 작은 실수를 했는데 막대한 처벌을 받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기도 한다. 여기에는 뭔가 수상한 부패가 개입되어 있기도 한다.


담임교사였던 시절, 학생이 지각하거나, 수업 준비물을 갖고 오지 않는 경우에 어떤 벌을 주는게 좋을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지각한 날은 종례 후에 교실에 남아 남은 과제를 하게 하거나, 청소당번이 아니어도 청소를 시킨 적이 있다. 어떤 교사들은 일명 '깜지'라고 하는 과제를 주기도 한다. 우리들끼리 어떤 벌이 가장 좋은 것일까, 이야기한 적도 있다. 가장 좋은 벌은 그 벌을 통해 학생이 더 이상 문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깜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더 이상 그것을 벌로 생각하지 않고, 다시 또 지각을 하게 된다. 이 경우 깜지 쓰기는 더 이상 효과적인 벌도 아니고,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 벌도 아니다. 이렇게 옛 일을 떠올리니, '적절한 처벌'에 대해 앞으로도 고민거리가 많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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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