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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사 주고 욕먹기는 처음,
튀르키예 손님 대접

한국에서는 빚을 지면 꼭 갚아야 한다고요!

by 사과
IMG_6313.JPG 귀여운 갈매기 사진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브런치


"근처에 해변이 있는데 가 볼래?"


기차남이 물었다. 우리는 다시 고장 난 캐리어를 끌고 밖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얼어붙고 말았다. 기차남은 우리의 마음을 읽었는지, 캐리어는 여기 카페에 둬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사실 캐리어에는 옷이나 세면용품 같은 것들뿐이라 가져간다고 해도 큰 타격은 없었다. 그래도 여행 막바지에 험한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우리가 우물쭈물하자 기차남은 카페 직원에게 돈다발을 건네며 캐리어를 잘 맡아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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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라 불리는 참깨빵, 길가에 많이 팔고 있다.


우리는 그를 따라 근처 해변으로 갔다. 그는 터키 인기 간식이라는 '스미스'라는 참깨빵을 사 주었다. 비주얼은 별로였는데 먹어보니 맛있었다. 근처에 새들이 아주 많았는데 기차남은 빵은 새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참깨빵을 손으로 숭덩숭덩 찢어 던졌다. 하지만 터키의 새들은 이런 식의 애정 표현이 너무 익숙한지 정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쪼아 먹는 시늉 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빵을 퍽 맞고는 짜증이 난 건지 귀찮다는 듯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민망해진 건 우리였다. 기차남은 어떻게 해서라도 새들의 관심을 끌려했으나 보는 내가 무안할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는 이후로도 포기하지 않고, 보이는 새한테 마다 빵을 던져댔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IMG_6310.JPG 타 보고 싶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너네 페리 투어 해볼래?"


돈 많은 아빠를 새로 얻은 것 같았다. 터키에 존재하는 모든 좋은 경험을 다 시켜주려는 것 같았다. 고마웠지만 우린 의심을 완전히 버릴 수 없었다. 솔직히 우리 셋 모두 배 타는 걸 좋아했지만 너무 위험했다. 만약 기차남이 갑자기 돌변해 해코지를 한다고 하더라도 도망갈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


"미안, 나 뱃멀미가 있어."


효일이 거짓말했다. 기차남은 아쉽다는 듯 제스처를 하고는 다시 앞장서 걸어갔다.


드디어 근처 식당 문이 열리는 시간이 되었고, 기차남이 물었다.


"치킨 먹을래? 소고기 먹을래?"


평소의 우리라면 치킨을 선택했을 테지만, 고마운 기차남에게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사 주고 싶어 소고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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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 식당이다...ㅎ


그런데 기차남이 정말 만백성을 먹이고도 남을 양을 시켰다. 네 명이서 먹기엔 말도 안 되는 양이었다. 3~4인분은 족히 될 것 같은 메인 요리 세 개나 나왔고, 샐러드와 피클, 각각 콜라와 평소라면 함께 나눠 먹을 법한 디저트도 세 개나 나왔다.


IMG_6328.JPG 사진으로는 안 보이겠지만... 하나도 정말 양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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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소고기가 깔려 있는데... 거의 못 먹고 남겼다.


이번엔 우리가 대접할 생각이었던 터라 기차남의 배포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는 한 번 마음먹은 것을 지키는 법! 혹시 기차남이 또 본인이 결제하겠다고 할까 봐, 그가 담배를 피우러 갔을 때 미리 계산을 해뒀다. (한 7~8만 원 정도 나왔다. 터키 물가를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소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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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도 새롭고 맛있었다! 다만 많았을 뿐.


그런데 우리가 계산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차남의 마음이 팍 상해버렸다. 엄청 화가 난 것 같았다.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왜 너네가 계산했냐면서 내 손님이지 않냐고 불쾌해하는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고 말했다.

우리도 나름 큰맘 먹고 큰돈 주고 대접한 건데... 억울하고 속상했다. 밥을 안 산 것도 아니고 샀다고 이렇게 욕을 먹을 줄이야. 우리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한국에선 빚을 지면 갚아야 돼. 아무리 손님이라도 계속 받기만 할 수는 없어. 한 번 대접받았으면 한 번은 사야 하는 게 한국의 룰이야!"


기차남은 우리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더니 축 가라앉아서는 말도 하지 않고, 우리의 질문에 대답도 건성건성이었다. 황당했지만 우리가 그렇게 큰 실수를 한 건가 싶어 눈치가 보이고 미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대체로 한국 사람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을, 분위기 반전을 위한 이 무기는 바로바로...!


다음 화에 계속!


그나마 빵에 관심을 보이던 애가 이 정도... 거들떠도 안 보는 애들이 태반이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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