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튀르키예 여행기
[이전 화]
우리를 도와주던 기차남이 버스 티켓을 알아보다가 여행사 할아버지한테 얻어맞았다. 기차남은 주먹다짐이 튀르키예의 대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며 우리를 안심시켰지만,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기차남에 대한 의심과 미안함,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문화에 공포감과 불안함까지 생겼다. 기차남에 대한 의심과 미안함, 우리나라와 너무 다른 문화에 대한 공포와 불안까지 밀려왔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작은 버스가 도착했다. 그 버스를 타고 또 다른 큰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앙카라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려는데, 매표소 직원이 말했다.
“이미 결제되었어요.”
어리둥절한 그 순간, 나타난 건 기차남이었다.
“위험하니까 같이 가요.”
작은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기차남이 위험하니까 같이 가 주겠다고 말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너무 부담스러웠다. 괜찮다고, 이미 충분한 도움을 받았다고 몇 번을 강조했지만, 그는 계속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했고 우리는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럼 어쩔 수 없다는 듯, 안타깝다는 제스처를 취해 잘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자기 마음대로 앙카라까지 가는 기차를 끊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우리 것까지! 갑자기 경계심이 확 올라왔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외국인들을 도와주려 서울에서 해남(땅끝마을)까지 함께 가겠다는 건데, 순수한 호의만으로 그럴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몬테네그로에서 3일 휴가를 받았다는데, 벌써 반나절 이상을 우리에게 다 사용한 상태였다.
그가 표를 끊은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같이 가는 수밖에. 심지어 숙소도 우리랑 같은 곳을 잡았다고 했다. 머릿속은 별의별 시나리오로 난리가 났다.
앙카라에 도착하자 그는 다시 한번 택시를 두 대나 잡았다. 그리고 그 모든 비용을 또 자기 혼자 다 냈다. 처음 받아보는 호의에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럽고 불편하기만 했다. 기차남도 우리가 경계하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계속 '자신의 친 여동생 같아서 도와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은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혹시 우리가 믿지 못할까 봐 동생의 사진도 보여주었다. 효일은 기차남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도 지켜야 하는 동생이 둘이나 있었으니까.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쳤는데 기차남이 누가 이 숙소를 잡았냐고 물었다. 그냥 우리끼리 제일 저렴한 호텔을 고른 거라고 하니, 주저하다 어렵게 입을 뗐다.
“이 숙소… 매춘부들이 쓰는 곳이에요. 바꾸시는 게 좋겠어요.”
그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하고, 조용히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깔끔하게 본인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진짜 그냥 착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숙소에 들어와 긴급회의를 했다. 기차남은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변수였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결국, 우리는 너무 날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경계는 필요하지만 정말 순수하게 우리를 돕고자 하는 착한 사람일 수 있으니 너무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차례대로 씻고 나와 조금씩 긴장을 풀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언니, 기차남이야. 일단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마.”
씻고 있던 효일은 동생들의 말에 다시 예민해졌다. 온갖 상상을 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효일에게, 동생들이 말했다.
“같이 밥 먹재. 밖에 나가는 건 위험해서 자기가 저녁 사 왔대.”
정말이지 혼란 그 자체였다. 사실 반가움보다 불신이 먼저였다. 기차남이 우리 방에서 같이 먹자고 했지만 너무 위험했다. 효둘이 재빨리 숙소 사장님께 1층 레스토랑 식탁을 써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럼요, 쓰셔도 돼요.”
우리는 기차남에게 캐리어 세 개를 펼쳐 놓아서 자리가 없다고, 1층 식탁을 써도 된다고 하니 거기 가서 먹자고 설득했다. 기차남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는 마트에서 장 봐온 것들로 ‘치쿄떼(?)’라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비주얼은…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약간 똥 같았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맛있었다. 기차남은 또다시 우리가 열기구를 타는 카파도키아까지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이 모르는 남자랑 같이 다닌다고 하니까 엄청 걱정하셔. 미안해.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
기차남은 그럴 수 있겠다며, 자신은 내일 날이 밝은 대로 떠나겠다고 했다. 기차남은 우리가 의심한 게 민망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만 챙긴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세심하게 챙겼다. 같은 빵 네 장 중, 본인은 양념만 뭉쳐 먹으면서도 호텔 사장님과 직원에게도 정성스럽게 빵을 만들어 나눠줬다. 그의 친절에 감동했는지, 숙소 직원분이 직접 차를 내려주셨다. 맛있고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
기차남은 1년 후, 한국에 고급 레스토랑을 차릴 거라고 말했다. 여자친구와도, 이 꿈 때문에 헤어졌다고 했다.
물론 완전히 의심을 거둔 건 아니었지만, 기차남은 우리의 예상과 완전히 다른, 큰 꿈을 가진 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린 그가 한국에 온다면, 나는 더 극진히 대접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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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효일이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음에도 갑작스러운 고백 공격을 해서...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