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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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기차남은 저녁거리를 사 와 우리에게 터키 전통 음식을 만들어줬다. 카파도키아도 같이 가고 싶다고 했지만, 받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한다고 둘러대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렇게 기차남과는 자연스럽게 작별 인사를 했다.
카파도키아에 가기 위해선 버스터미널에 가야 했다. 그렇게 멀지 않아 걸어가 볼까 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결국 지하철을 탔다. 터키 지하철은 비자나 마스터 카드만 있으면 바로 탈 수 있다. 20리라, 한국 돈으로 약 800원이다.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데 시설이나 서비스는 비슷해서 감동이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예상했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호객행위가 쏟아졌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플릭스 버스를 따로 예매하고 갔다. 터키어에 능하고 흥정을 잘하는 편이라면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한 방법을 찾았다.
전쟁터 같은 분위기 속에서 괜히 또 싸움날 것 같아 조마조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또 주먹다짐이 벌어진 듯했다. 두 남자가 주먹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달려가 말리고, 또 구경하고... 우리가 잔뜩 겁을 먹고 있으니까 티켓 발권하던 직원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터키는 저게 일상이야. 너무 놀라지 마."
싸움구경 좋아하는 사람은 터키 여행, 강력하게 추천한다! (대신 싸움의 대상이 본인이 될 수 있으니 힘을 키워 갈 것!) 우리가 터키인이었으면 팝콘 들고 다니면서 팔았을 텐데... 그럼 아마 억만장자는 한순간일 것이다.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는 싸움을 보면서도 자낳괴 같은 생각뿐이었다...ㅋㅋㅋ)
티켓을 끊은 후, 터미널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대성공이었다.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착하고 친절해서 마음이 쓰였다. 기차남이 '16살 때부터 요리했다'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터키 사람들은 대학에 가지 않고 어릴 때부터 일을 하며 돈을 번다고 했다.
가난한 여행자지만 서버 아이한테 뭐라도 주고 싶었다. 우리는 큰 결심을 했다. 조금씩 돈을 모아 팁을 주자는 것! 처음으로 주는 자발적인 팁이었다. 앞으로도 삐뚤어지지 말고 잘 자라주길,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플릭스 버스는 진짜 감동이었다. 탑승 전에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안전벨트 착용을 확인하고, 일일이 손 소독제를 뿌려주었다. 에어컨 바람까지 체크해 주는 섬세함까지! 중간중간 물과 과자까지 챙겨주는 데다, 친근하고 장난기가 많은 직원 덕분에 이동 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열기구가 버킷리스트였던 효둘과 효삼은 더더욱 설레했다.
멀리까지 돌산이 뻗어 있는데 정말 이름다웠다. 숙소에 짐을 놓자마자 기념품샵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들 드릴 스카프와 친구들한테 선물할 책갈피, 문진까지. 카파도키아에서만 살 수 있는 소소한 보물들을 발견하고 우리는 눈이 돌아버렸다. 우리의 지갑을 울리는 물건들 뿐이라 카드까지 끌어와 과소비를 했다.
기대하던 한식당에도 갔다. 순두부찌개, 참치김치찌개, 그리고 돌솥밥. 너무 익숙하고 그래서 더 눈물 나는 맛이었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을 먹고 나니 몸과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았다. 여행 와서 느끼는 집의 소중함...
하지만 여행이 늘 순탄할 순 없듯, 고대하던 벌룬투어가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효둘의 얼굴이 급격히 구겨졌고, 위로삼아 음료수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는 길에 비닐봉지가 찢어져 효삼이가 고른 오이 음료수가 깨지는 사소한 참사까지 발생했다.
역시 여행이란, 늘 예측 불가한 하루들의 연속이다.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얘기 나누던 중, 노크 소리에 모두 조용해졌다. 문을 열어보니 외국인 여자 한 명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늦었으니까 조용히 좀 해주세요."
'우리가 그렇게 시끄러웠나?' 일단 알겠다고 돌려보낸 뒤, 다시 보니까 각 방의 문 아래쪽이 다 뻥 뚫려 있었다. 황당하고 미안했다.
우리는 조용히 속닥이며 하루를 정리했다. 그리고 갑자기 날씨가 좋아져서 다시 벌룬투어가 가능하길, 간절히 기대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