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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5. 2024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

민지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5

<2002-04-06-토> 


민지야 어제 밤늦게 할머니와 절에 다녀왔었어.
절에 가서 기도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그리고 민지와의 인연에 대해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힘든 건 할머니도 마찬가지 일 텐데 이 못난 엄마를 위로해 주시느라 당신의 슬픔은 드러내지도 못하시는 할머니께 죄송하고 감사할 뿐이구나.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절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되어 내리더구나. 너를 보낸 이곳에 오랜만에 온 엄마를 우리 민지가 반가이 맞아 주고 있는 것 같았어. 이제 비를 보면 우리 민지가 생각나...

절에 오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할머니의 생각과는 달리 엄마는 더 힘들고 슬퍼서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단다. 엄마도 할머니처럼 불심이 강해져서 너와의 인연을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참을 울면서 기도를 하니, 본 산에서 내려오신 스님께서 들어오셨어. 할머니는 이 엄마에게 힘을 주고 싶으셔서, 스님께 우리 민지가 떠난 것을 말씀드리며 엄마에게 한마디 해 주셨으면 하고 바라셨어.

하지만...

그 스님의 말씀이 엄마를 더욱 슬프게 했단다.
'민지와 엄마는 전생에 악연. 그래서 엄마를 슬프게 하려고 아직 엄마 곁에 머물면서, 엄마를 자꾸 울게 만든다고... 엄마가 모질게 잊어버려야 민지는 민지 세계로 떠나고, 우리 가족은 다시 편안해질 수 있다고..'

그래...
엄마가 잊어야 우리 민지가 훨훨 좋은 세상으로 편안히 갈 수 있다고 하는 건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라서, 꼭 그래야 된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

그런데 너와의 전생이 악연이라 네가 엄마를 괴롭히려고 우리 곁에 온 거였다는 말은 정말 듣기 싫구나.
우리 착한 아이가 엄말 힘들게 하려고 왔다니...
엄마 아빠를 다시 이어주고,
한 번도 아프지 않고,
말썽도 안 피우고,
오직 사랑만 주다가,
엄말 더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그리 쉽게 떠났는데.
엄마를 괴롭히려고 온 거라니!
너무 속상했단다. 엄마의 불심이 부족해 스님 말씀도 서운하기만 하구나...

하지만...
우리의 인연이 딱 이만큼만 정해진 시간이었다는 것은 맞는 것 같아.
처음부터 딱 이만큼만 함께 할 시간이었다는 거...
그걸 네가 떠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 너무나 속상할 뿐...

널 잊는 것이 너를 위한 것이라는 거...

이건 아닌 것 같아.

단지,

웃으면서 널 기억하는 거.
힘들지만 더 이상 울지 않고,
웃으면서 우리 민지를 가슴에 간직하는 거.
이것이 엄마가 널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이라고 생각해...

노력할게.

널 떠올리면서 웃음 지을 수 있도록 엄마가 노력할게...

민지야. 마음 편히 너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지내거라. 그리고 너도 웃으면서 엄마, 아빠, 언니를 기억해 주렴... 사랑해 민지야...



<2002-04-07-일> 
 

언니가 두 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고모네 자전거를 빌려서 언니 학교 운동장에 갔어. 자전거가 언니에게 조금은 커 보였지만,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올라 탄 자전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

옛날에 엄마 어릴 적에는 배달 자전거라고 어른들이 타는 무겁고 커다란 자전거가 있었어. 요즘은 볼 수 없지만 그때는 아저씨들이 이 자전거 뒤에 짐을 가득 싣고 다니곤 했단다. 엄마는 말이야, 그렇게 커다란 자전거로 동네 친구에게 배웠단다. 발이 짧으니까 페달을 다 돌리지도 못하고 반바퀴씩 겨우겨우 돌리면서, 수 없이 넘어지고 까져서 피가 나면서도 참 신나게 배웠었어. 그리고, 5학년 때 외할아버지께서 엄마가 시험을 잘 보았다고 선물로 자전거를 사 주셨단다. 엄마에게 꼭 맞는 예쁜 자전거를 갖게 되어 기뻐했던 기억이 나네. 참 행복한 순간이었지...

언니는 아직 연습이 더 필요 하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단다.
자전거 뒤를 잡아주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쉽지 않더라.
아빠가 힘들면 엄마가 잡아주면서 몇 바퀴를 돌고 나니 언니가 춥다면서 콧물을 조금 흘리더구나.
그래서 오늘은 그만하기로 하면서 만약 언니가 두 발 자전거 타는 것을 성공하면 자전거를 사 주기로 했어.

욕심 많은 언니는 오늘 겨우 몇 바퀴 돌고는 현정이 언니가 잘 타는 것이 샘이 나서 자기가 제일 못 탄다고 몇 번이나 투덜 대는 거 있지. 현정이 언니는 자기보다 몇 년이나 더 탔는데, 오늘 겨우 몇 번 타 본 자기가 어떻게 언니랑 비교가 된다고... 투덜대는 언니가 웃기지? 아마 언니도 한 번에 잘하고 싶은 건 욕심이라는 건 알 거야. 그냥 투정이었을 거야.


그런데 마지막 한 바퀴를 돌고 있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거야.
그때 엄마가 "민지야 벚꽃눈이다~" 그랬는데 민지야 들었니?
그 모습이 예뻐서 우리 민지랑 함께 보려고 민지를 불렀는데, 우리 민지도 보았니?
언제나 엄마랑 함께 있는 민지니까, 보았을 거야. 그지?...

민지야... 잘 자라... 사랑해 아가...



<2002-04-09-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민지야.
요즘 엄마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외출을 거의 안 하고 있어. 하지만 언니 때문에 오후에 한 번씩은 꼭 나가야 하는구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봐, 그러면 말을 건네올까 봐 엄마는 일부러 사람들을 외면해 왔단다.

그런데 오늘...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그 말을 듣게 되었구나.

언니랑 함께 스케이트를 타는 학생의 할머니께서 언니를 보면서 엄마에게 물었어.
"딸 하나예요?"
"......."

민지야. 엄마 용서해...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어.

엄마 가슴에 살아 있는 우리 민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일 시간도 갖지 않고 그냥 고개가 끄덕여졌어.

민지야... 미안해... 엄마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니? 널 없었던 것처럼 대답해야 하는 이 현실이 너무나 슬프구나.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있을 텐데... 그때마다 덜컹 가슴이 무너질 것 같은데... 이를 어쩌면 좋으니...

아가... 미운 아가야... 엄마 곁에 다시 올 수는 없니... 엄마에게 돌아와 줄 수는 없니...

보고 싶은 내 아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내 아가야... 사랑해... 사랑해...



<2002-04-10-수> 


언니가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생겼대. 재밌지?
조금씩 마음이 자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민지를 잃은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 싶은 심리적 욕구일까?
1학년 땐 남자친구한텐 전혀 관심도 없던 언니가 갑자기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겼다고 엄마에게 말을 할 때 내심 깜짝 놀랐단다. 재밌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참 여러 가지 마음이 뒤섞인 기분이었단다.


어린 언니 감정에 왜 이렇게 예민해지냐고?

그냥... 네가 떠난 후 일어나는 주변 모든 일들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래...

혹시 누군가가 우리 민지의 자리를 채워 주길 바라는 심리는 아닐까 하는 노파심. 그러면 언니도 너무 가여워서... 잘 참고 있는 언니가 대견하고, 가여워서...

그래, 엄마가 너무 예민한 걸 거야. 그지? 그냥 단순히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인 걸. 그럴 수 있는 걸...

언니가 좋아하는 친구는 <조성훈> 이래. 꼭 남자 친구로 사귀고 싶은데 편지를 써야 하냐고 묻는 거야.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더니, 편지를 조성훈이 몰래 가방에 넣어야 할 텐데 너무 떨릴 거라나. 정말 웃기지? 언니 특기잖아. 미리 걱정하는 거.

엄마생각에는 편지 보내지 않고 그냥 더 친하게 지내면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건 남자 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래. ^^

앞으로 언니가 어떻게 하는지 엄마랑 같이 지켜보자꾸나. 재미있을 것 같지? 제발 그 친구 때문에 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민지야... 언니가 잘 지내는 거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 응?
그래도 언니 가슴 깊은 곳엔 동생 민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단다. 그걸 잘 참고 씩씩하게 지내는 모습이 엄마는 고맙구나.

민지야...
네가 떠난 날로부터 또 하루만큼 멀어졌지만 엄마 마음은 언제나 그날이구나...

보고 싶은 아가... 사랑해...



<2002-04-11-목> 둥둥둥... 지금 언니의 심장 소리가 이렇대. ♡ 때문에.
 

아빠는 요즘 <바람의 나라>라는 오락에 푹 빠진 것 같구나. 언니와 친구처럼 지내려면 언니가 좋아하는 오락을 알아야 한다면서 시작한 게임이었는데, 지금은 언니를 위해서인지, 아빠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어.^^

그래 저렇게 무언가에 푹 빠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구나. 적어도 그때만큼은 아빠 마음이 평안할 테니까.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민지야 언니가 오늘 사랑 고백을 했단다.

고백을 할 때 부끄러워 혼났는데 그래도 말하고 나니까 가슴이 시원하다면서 웃더구나.

언니는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두면 가슴이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단다. 그러면서 오늘 종일 시간만 나면 그 친구 이야길 한다. 정말 무지 좋은가 봐.^^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구나.

효선이의 가슴이 조금씩 커 가고 있나 봐. 그 가슴이 밝고 건강한 자신감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착한 마음으로 채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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