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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5. 2024

가슴속에 흐르는 눈물

민지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6

<2002-04-22-월> 열 하루 밤을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사랑하는 우리 아가.
해맑은 너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구나.
눈물 없이는 널 떠올릴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으니...
총총히 빛나는 저 별들 속에서 너의 맑은 영혼도 함께 빛나고 있을까.
널 생각하며 눈물짓는 못난 엄마를 내려다보며 너도 울고 있는 건 아니니?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있으면 어쩌지...
엄마가 달래줄수도 없는데...
엄마가 업어줄 수도 없는데...
엄마가 너의 눈물 닦아줄 수도 없는데...

너무나 보고 싶은 민지야.
이렇게 너와 이야기 하는 이 시간이 참 좋으면서도 힘이 드는구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밀려와 참을 수가 없구나.
하염없이 흐르는 엄마의 눈물을 너도 닦아주질 못하는구나.
고운 너의 손가락으로 이 눈물을 닦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민지야... 민지야...

미안해 아가...
열 하루 만에 겨우 이곳에 와서는 눈물 타령만 하고 있구나.
엄마는 왜 이 모양일까... 왜 이렇게 약한 모습만 보여주는 걸까...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함께 나누고 싶은데, 그래서 늘 우리가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고 싶은데 이렇게 울고만 있으니...

이렇게 울게 될까 봐 왔다가 그냥 가기를 열 하루였는데...
그래서 열하루 밤씩이나 우리 민지를 외롭게 혼자 기다리게 했는데...
이 못난 엄마가 또 잔뜩 그리움만 털어놓고 있구나...

그래, 이제 그만 울게.
그리고 웃으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해 줄게.
언제나 엄마와 함께 하니까 잘 알고 있겠지만... 그지?

요즘 엄마는 가위 들고 오전을 보낸단다. 오래전에 손을 놓은 것이라 조금 걱정되었는데 이것도 기술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많이 잊어버리지 않았더라. 아직 미흡한 것도 있지만, 그런대로 잘 해내고 있단다. 이번엔 아빠를 미용실에 보내지 않으려고 해.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화장실에서 엄마 손으로 이발을 해주려고.

참, 우리 민지 머리카락은 엄마가 두 번 잘라 주었었지.
호주에서 한번, 우리 집에서 한번.
머리에 물을 잔뜩 묻히고 컷트보를 온몸에 두른 채 앉아 있던 너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었는지.
울지도 않고 착하게 참 잘 견뎠었지... 예쁜 것.......

오늘 언니가 밥 먹다가 또 이빨을 뺏단다. 엊그제 토요일엔 식당에서 한 개를 뺏다고 그러더니.
이갈이를 한꺼번에 하는 것 같구나. 털갈이는 안 하려나...^^
식당에서 밥 먹을 때마다 이빨이 뽑히길래 "너는 이 빼고 싶으면 치과를 갈 것이 아니라 식당엘 가야겠구나" 하고 엄마가 말했단다. 민지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며칠 전에 언니 머리를 빗겨 주다가 혹시나 해서 머리밑을 들춰 보았어.

언젠가 원형탈모증에 걸렸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런데 역시 또 동그랗게 머리가 빠져 있더구나. 언니 성격이 어떤 지 알 수 있겠지?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동생을 보낸 충격과 그리움이 가슴 가득 똬리를 치고 있는 거야.
민지야. 언니가 널 많이 보고 싶어 해... 아주 많이...

사랑하는 막내야... 이제 엄마 매일 올게. 울지 않고 올게. 울까 봐 돌아서는 바보 같은 짓 하지 않을게.
엄마랑 이야기하려고 왔다가 빈방에서 홀로 기다리게 하지 않을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2002-04-23-화> 


엄마가 가입한 사이트에서 5월 봄 소풍을 알리는 안내문을 올렸더구나. 작년 5월에는 대전에서 행사를 했었지. 엄마는 우리 딸들에게 기차 여행을 시켜 주고 싶은 마음에 선뜻 참가 신청을 했었어.

눈이 부시도록 햇살 가득한 일요일 아침.
우리 가족의 첫 기차 여행에 엄마는 설레었고

민지랑 언니는 엄마 아빠와 나들이 간다는 사실만으로 마냥 즐거워했지.

이른 아침이라 잠들어 있는 승객들로 가득 찬 기차 안에서
엄마는 너희들을 조용히 시키는데 정신을 쏟아야 했던 것이 얼마나 아쉬웠던지...

엄마 어릴 적에 외할머니와 부산을 다녀올 때

기차 안을 오가는 과자 파는 아저씨가 올 때마다 외할머니를 졸라서 한 개씩 사 먹는 재미에 초조히 아저씨를 기다리던 즐거움,
드디어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맛나게 먹으면서 깔깔깔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넘어질 듯 위태롭게 걷는 느낌이 재미있어 수시로 화장실 가고 싶다고 외할머니를 성가시게 하면서 즐거워하고,
창 밖을 내다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전봇대의 수를 세면서 미처 세지 못한 채 놓쳐 버린 전봇대를 보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납작하게 붙이며 아쉬워하던 그 모든 기억들이 행복한 추억으로 엄마의 가슴에 살며시 남아있어서 너희에게도 그런 즐거운 여행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저 "쉿" 소리만 반복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속상했었어.

하지만 대전에서의 소풍은 너희를 충분히 즐겁게 해 주었기에

기차 여행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내년엔 더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그것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 기차 여행이 되어 버렸구나...

오늘 사이트에서 올린 봄 소풍 안내문에는 작년 소풍 때 찍은 사진들이 올라 와 있었어.
혹시 우리 민지가 찍힌 건 없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확인을 했지.
제발 없기를 바랐어. 누군가가 아무 의미 없이 우리 민지 모습을 본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하지만 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사진을 본 엄마의 마음은 너무나 허전하구나.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멀리 찍힌 작은 너의 모습을 엄마는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어.
분홍색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분홍색 티와 바지를 입고 있는 우리 민지가 작은 점처럼 찍혀 있지만 엄마는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어.
그래 아가... 그때 넌 그곳에 있었지.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했었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된 그날이지만,

아가야 절대 과거가 될 수 없는 것이 있단다.
그건 바로 엄마의 사랑이야...
우리 민지를 향한 사랑은 절대로 과거가 될 수 없단다.

사랑해 아가...



<2002-04-24-수> 소리 없이 흐르는 가슴속의 눈물

 
엄마가 요즘 오전에 미용 연습을 다니느라 바쁘단다. 밤에 잠이 안 오면 몸을 고달프게 써야 한다던 할머니 말씀이 엄마에겐 소용없는 조언인 것 같구나. 하루 종일 앉아있을 틈도 없이 바삐 움직였지만 지금 새벽 2시가 훌쩍 넘어가도록 여전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언니가 또 원형 탈모가 되었다고 했지? 그래서 오늘 수지침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노란 반지를 사러 갔단다.

변색 없이 오랫동안 낄 수 있는 건 진짜 금 밖에 없을 것 같아 14K 실반지를 사서 끼워 주었어.

엄마와 다르게 장신구를 좋아하는 언니가 오늘 얼마나 좋아했을지 상상이 가지?

우리 민지도 참 좋아했을 텐데... 그 예쁜 손가락에 반지를 단 한 번도 끼워 주지 못하였구나.

민지야... 엄마는 모든 게 너무나 아쉬워.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언니에게 뭔가를 해줄 때마다 민지가 생각나서 엄마 가슴속엔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른다...


오늘 **치과에 갔단다. 언니 학교에서 구강 검사를 해오라고 했거든.

언니가 누워 있는 의자 옆에는 다른 아이가 앉아 있었지만

낯선 그 아이 얼굴 위로 그리운 너의 얼굴이 겹쳐져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충치 치료를 잘 참아내던 너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눈앞에 놓인다.

아가... 보고 싶은 아가야. 부족한 엄마의 사랑이 널 지켜주지 못했다.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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