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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5. 2024

엄마 앞에 나타날 것 같아

민지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8

<2002-05-20-월> 민지야 어제 엄마 아빠 보았니?
 

널 보냈던 대안사 앞 산엔 어느새 푸른 녹음이 가득해서 그때 그 모습이 아니었어.

산속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에도 잎새 푸른 나무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어 마치 다른 곳처럼 보이더구나.

문득 널 보낸 그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차마 그쪽으로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단다.

바보 같은 엄마는 그 산의 모습이 철마다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어.

그래서 언제든 그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어.

엄만 어찌 이리도 바보일까. 정말 싫다...
민지야 그래도 지금 그 산에 핀 아카시아 꽃 향기가 널 즐겁게 해 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허전한 엄마 마음을 달래 본다.

민지야, 어제 너도 즐거운 하루 보냈니?

부처님 곁에서 특별한 하루를 보냈니?

법회 시간 내내 눈물은 그치지 않았지만 마치 네가 부처님 곁에 앉아 즐거워하면서 엄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단다.

마지막 관불 의식을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어.

엄마 속에 있는 모든 집착의 때를 깨끗이 씻게 해달라고.

그래서 우리 민지를 떠 올릴 때마다 우리의 인연에 대해 감사만 하게 해달라고...

아빠는 법회 중간에 법당을 나가셨대. 아마 아빠도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그랬을 거야. 아빠는 남자니까 엄마처럼 마음 놓고 밖에서 울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곳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을 거야. 왜 중간에 나갔냐고 묻지 않아도 엄마는 아빠 마음을 알 수 있어. 민지야 너도 알지? 아빠 잘 참고 계시다는 거...

언젠가는 엄마랑 아빠가 웃으면서 우리 민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지금은 서로가 약속이나 한 듯 차마 너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오늘 우리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세 번을 들렸단다. 마음에 있어하는 것 같지만 두고 봐야겠지.

어쩌면 곧 새 사람이 이곳의 주인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까 참 많이 속상하고 서운해.

엄마가 원한 일이지만, 너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이곳을 떠나길 원한 것이 엄마지만

막상 우리의 예쁜 추억이 가득한 이곳을 정말 떠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까 참 많이 슬퍼...
우리가 매일 아파트 10층에서 내리는 걸 기억하면서 어느 곳에서든 엘리베이터만 타면 "우리 집은 10이지~" 하던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지금 엄마 마음이 너무 아파... 이제 그 10 인 우리 집을 떠날 꺼란다.

아가... 미안해... 너와 함께 했던 그 어떤 것도 지켜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아가...

하지만 엄마는 여기서 계속 살아갈 용기가 안나.

순간순간 너의 숨결을 느낄 때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어... 그래서 그래서 여길 떠나려고 해.

또 어떤 후회가 가슴을 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너의 손자욱이 가득한 이 자리를 안고 살 용기가 없구나...

미안해 민지야... 그리고 용서해 자꾸만 널 지우려고 하는 이 엄마를 용서해 줘......

사랑하는 내 딸 민지야.
그거 알지? 온전히 너만을 생각하며 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비록 널 떠올리며 가슴 저려 눈물 흘려야 하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엄마는 너무 좋아......

사랑해 아가... 예쁜 민지야 너무너무 사랑해..... 



<2002-05-22-수> 
 

민지야 어제 우리 집이 새 주인을 찾았단다. 세 번씩이나 보고 갔다는 그 가족이 역시 마지막 도장까지 찍은 거야.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모두 우리 민지가 돕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민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민지야 너무너무 허전하구나.

널 기억하게 하는 것들이 엄마를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있어 어쩌면 위안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구나.

가르쳐 주렴, 이 엄마가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어떤 것인지 제발 말해 주렴 아가...

민지야 요즘 우리 아파트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사람들 애를 태우고 있단다.

지난 19일 아침에 아빠의 차 보닛 안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를 처음 본 이후에 번번이 화단 앞에 서 있는 차들의 보닛 속에서 그 울음소리를 듣게 된단다. 어제는 낮에 잠깐 세워 둔 엄마 차에도 들어갔었어.


처음 아빠 차에서 그 고양이를 보았을 때는 혹시 어딜 다친 건가, 어디에 걸려 못 내려오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얼마나 놀라고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 차 밑으로 빵조각을 던져 놓고 내려오라고 유인도 해 보았지만 계속 울기만 하는 새끼 고양이를 보면서 민지가 생각나서 참 많이 슬펐어. 엄마를 잃어버려 울고 있는 것 같은 그 울음소리가 마치 너의 목소리처럼 들려 너무나 가엾고 가슴이 저렸어.

민지야 넌 그렇게 울고 있는 거 아니지?

불러도 불러도 알아채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쉴 새 없이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는 거 아니지?

절대 그러면 안돼, 절대 그렇게 울고 있으면 안 돼, 넌 언제나 웃어야 해.

너무 행복해서, 너무 즐거워서, 웃다 웃다 지치게 되더라도 그렇게 웃기만 해야 해. 알았지? 아가 꼭 그래야 해......

다행히 그 새끼 고양이는 다친 것도 아니고 엄마를 잃은 것도 아니었단다.

어제 엄마 차에서 그 고양이를 밖으로 유인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아줌마가 엄마 고양이를 보았다고 하더구나. 그러니까 그냥 차 밑을 지나다가 올라가곤 하는가 봐.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어느 날 차 안에 고양이가 있는지를 미처 모르고 시동을 걸다가 고양이가 다치게 될까 봐 걱정이야. 어서 그곳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더 이상 엄마 곁을 떠나 그런 위험한 곳엔 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민지야.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있는 그곳이 너무 궁금해. 어떤 곳인지 한 번만 보여줄 순 없니?

엄마 꿈속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곳을 보여 주고 이야기해 주렴.

오늘밤도 널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잠들게 되겠지.

엄마의 기도 소리가 네가 있는 그곳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구나..



<2002-05-26-일> 벌써 오월 마지막 일요일도 지나가고 있구나
 

목요일에 엄마 친구 만나고 그날 이후부터 오늘까지 침대 밑이 꺼지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단다. 오랜만의 외출에, 아니 오랜만의 긴 얘기에 지쳤었나 봐. 오늘 오후에 밭에 가자는 할머니 덕분에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단다.


토요일에 아빠는 IELTS 시험을 보셨단다. 첫 리스닝 시간에 여기 내가 왜 왔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더란다. 너무 어려웠다고 기대하지 말란다. 엄마는 이렇게라도 가만히 있지 않아 주어서 고마워. 결과는 어찌 되었든 열심히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가고 있음을 보여 주어서 고마워. 그것도 지금 이런 상황에서 말이야.

엄마는 영어공부... 민지 핑계 대면서 못하고 있는데, 집중이 안되어서 도저히 못하겠다며 그냥 너 핑계만 대고 있는데, 그새 아빠는 한 가지를 하셨잖니. 그래서 고마워...


오늘 농장 밭에 언니가 가지 모종을  두 개 심었단다. 욕심꾸러기 언니는 둘 다 자기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엄마는 마음속으로 바깥쪽 가지를 민지 거라고 생각했어. 잘 자라도록 보살펴 줄게 민지야. 너도 너의 가지가 얼마큼 커가는지 함께 지켜보자꾸나...

사랑해 민지야.

문득문득 엄마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네가 밉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사랑해.

예쁜 아가야... 잘 자라..............



<2002-05-27-월> 남대문에 다녀왔단다

 
얼마 만에 갔을까. 그곳도 참 많이 달라졌더구나. 철이 바뀔 때마다 밤 시장을 휘둘러 다니는 걸 즐겼는데 이젠 정말 재미없더라. 빨리 필요한 것 사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어. 사람들로 가득 찬 그곳에서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어. 저 사람들도 하나씩 슬픔을 안고 살아갈까... 나 만큼이나 끔찍한 아픔을 갖고 있을까......


민지야. 할머니께서 언니 점심 챙겨 주시고 함께 우리 집에 와 계셨어. 아주 오랜만에 오신 거지. 여기저기 쌓여 있는 짐들을 보시면서 좀 심란하셨을 거야. "어딜 가든 다 잘 되길 바랄 뿐이다"라고 언제나 하시는 말씀을 또 하시더구나. 죄송한 마음뿐이다.

그리고 오늘은 동생을 가지면 좋겠다고 하시더구나. 직접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몇 번 안 되지. 곧 떠날 채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으셨나 봐. 민지 너 닮은 동생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래, 민지야... 엄마도 너랑 똑같은 아가를 가질 수 있다면 낳고 싶어. 정말 너랑 똑같은 아가를...
기적이 생겼으면 좋겠어. 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적...... 절대 없겠지?...
아가... 매일밤 꿈에서 민지와 놀 수 있는 그런 기적이라도 생겼으면 좋겠어.

눈만 감으면 널 만날 수 있는, 그런 행복한 일이 생길 수만 있다면...

보고 싶은 아가야...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떠난 것을 아직도 믿을 수 없어.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다녀왔어요> 하면서 엄마 앞에 나타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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