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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5. 2024

아카시아 꽃이 피었네

민지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7

<2002-05-01-수> 오월의 첫날이구나


민지야 5월이 시작되었어. 너희들의 계절. 푸르른 오월.
오늘 아파트 입구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가를 보았단다. 어찌나 사랑스러운 모습인지...
우리 민지도 분명히 그랬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엄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를 몰랐단다.
포동포동 우유 냄새가 가시지 않은 손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쓰러질 듯 뒤뚱거리는 너와 함께 한낮의 여유로움을 즐기던 그 시간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그때는 몰랐었어...

어서 커서 엄마 손 잡지 않고도 걸을 수 있길 바랐고, 뛰길 바랐고, 그리고 성인이 되길 바라기만 했었어.
그러면 엄마는 그제야 자유롭게 나 만의 시간 속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될 거라고...
그렇게 어서 네가 10살 20살이 되기만을 바랬었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간을 그렇게 보내 버린 엄마가 너무 밉구나.

언니가 아가일 때도, 민지가 아가일 때도...

늘 그렇게 훌쩍 커 있는 모습만을 상상하며 하루하루의 흔적들을 소중히 생각하질 못했단다.
아... 정말 너무나 후회스럽구나.

이제 와서 가슴을 친들 되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인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우유 냄새나는 너의 손이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인 줄을...
아장아장 넘어질 듯 걷는 너의 발걸음이 소름 끼치도록 사랑스러운 모습인 줄을...

아가... 어제 외할머니께서 오셨단다. 낼모레가 언니 생일이어서 겸사겸사 오신 거야.
우리 민지 떠나고, 못난 이 엄마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도 되시고, 궁금도 하시고... 그래서 오신 거지.
덕분에 언니는 게를 실컷 먹었단다. 할머니께서 큰 영덕 게를 많이 가져오셨거든. 우리 민지는 언니만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먹었는데...

문득 군산 횟집에서의 민지 모습이 떠 오르는구나.
그날도 역시 옥수수구이를 제일 많이 먹었지만, 횟집에 간 이후 처음으로 음식을 많이 먹었었어.
죽도 두 세 그릇 먹고, 감자 으깬 것도 먹고, 밤 조린 것도 먹고.
그러고 보니 횟집에서 회는 하나도 먹지 않았네...

그래, 그날 바람이 참 많이 불었지.
현관문 앞에서 언니 오빠들과 까르르 웃으며 열리는 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좋아라 했었지.
아가... 그곳도 우리는 딱 한번 가보고 말았구나...

민지야 사랑하는 우리 아가야...
언니는 생일잔치를 하고 싶어 하지만, 올해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구나.
우리 아가 보내놓고, 어떻게 언니 생일잔치를 해줄 수가 있겠니.
올해만 하지 말자고 하니까 적잖이 실망하는 언니였지만,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민지에게 더 미안해서 그럴 순 없어...
생일이라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상을 차려준 적도 없는 우리 아가에게 너무 미안해서 엄마는 가슴이 아파.

미안해... 미안해 아가야... 

 


<2002-05-16-목> 


날씨가 흐리구나. 어제는 비가 왔는데.

비가 오는 날엔 이제 엄마는 우리 민지를 더욱 그리워하게 된단다.

민지를 완전히 보내던 그날도 비가 왔었지.

민지가 비를 좋아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던 엄마는 이젠 비 속에서 널 찾게 된단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단다.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하나.

무엇이 그리 바빠 우리 민지랑 이야기도 못하고 시간이 훌쩍 지났을까.

이렇게 눈물지으며 널 부르는 것을 일부러 피했다고 하면 우리 민지 많이 서운하겠지...

가슴이 울렁일 때마다 숨이 잠깐잠깐 멈추는 것 같구나.

너의 숨결을 떠 올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하지만 부질없는 몸부림이었음을 넌 알지?

민지야 너무나 보고 싶은 우리 아가야.
꿈에서 널 본 듯한데...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던 것 같아.

아주 커다란 강아지와 함께 엄마를 보러 왔는데 너의 눈빛은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았어.

그냥 덤덤히 엄마를 바라보는 널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잘 있는 거지? 재미있는 거지? 하고 물었더니 우리 민지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다 훌쩍 사라졌어.

이것이 꿈이었는지, 간절한 그리움으로 만들어진 상상이었는지 구분이 안 가지만 분명 널 본 것 같아...

엄마 없이도 잘 있는 네가 대견하면서도 엄마를 바라보는 심심한 눈빛에 가슴이 저렸단다.

아가... 그래 엄마 가슴은 짓물러도 너만 잘 있다면, 너만 행복하다면 그 무엇인들 참지 못하겠니...

아가 사랑해... 사랑해 민지야...

지난주 월요일에 언니가 스케이트 초급을 땄단다.

시험 보기 전에 그리도 떨린다고 노래를 하더니,

시험에 통과하고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또 노래를 하더라.

스스로 너무나 대견했나 봐.

그래 엄마 아빠도 언니의 모습이 참 대견하고 이뻤어.

그날 언니랑 함께 시험을 치른 친구의 동생이 함께 왔는데, 그 애의 행동 하나하나가 널 떠오르게 했단다.

상으로 받은 목걸이를 자기도 달라고 떼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민지도 분명히 그랬을 텐데... 언니 거 다 달라고 울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널 불렀는지 모른단다.

그 자리에 네가 함께 있었다면, 있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 이젠 절대 있을 수 없는 그 사실이 너무 슬프구나.

어떤 곳 이든 이제 넌 엄마의 마음속에서만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가슴 아파.

8일엔 현정이랑 민수랑 함께 애버랜드에 다녀왔단다.

엄마는 아직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지만,

그곳이 즐거움을 위한 곳이라면 더욱 가고 싶지 않지만,

언니가 유난히 애버랜드에 가자고 졸라서 어쩔 수가 없이 다녀왔단다.

그곳이 얼마나 먼 곳이라고 우리 민지는 한 번도 데려가 보지 못하고 떠나보냈을까.

그래서 그곳에 더욱 가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언니에게도 또 어떤 후회를 남길까 봐 다녀왔단다.

언니 오빠들은 무척 즐거운 하루였단다.

소풍 온 아이들이 많았지만 타고 싶은 것만 골라서 신나게 놀다 왔단다.

가끔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을 지나칠 때면 그 속에서 널 보았단다.

항상 맨 앞에서 선생님 손을 꼭 잡고 다니던 네 모습을 보았단다.

민지야... 널 정말 이젠 볼 수 없는 거니... 너의 손을 이젠 잡을 수 없는 거니...

아가... 보고 싶은 내아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엄마 목이 메고, 가슴이 저린다.

한 번만 널 안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02-05-18-> 아카시아 꽃이 피었네


조금은 더운 듯한 날씨라 창을 열고 운전을 했어.

신호등 사거리에서 갑자기 달콤한 향기가 코 끝을 스쳐 지나는 듯해 무심코 창 밖을 내다보았어.

세상에 언제 아카시아 꽃이 그렇게 활짝 피어 있었을까.

길에도 산에도 아카시아꽃들이 가득하더구나.

이렇게 자연은 자기를 드러 낼 시간을 어김없이 지키네.

아카시아 향 가득한 산등성이에서 사랑하는 우리 민지랑 놀고 싶구나...

내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 절에 갈 거야.

우리 민지가 새와 함께 떠난 그 산에도 아카시아 꽃이 피어 있을까.

내일은 그곳에 다녀와야겠구나.

아가... 우리 아가도 꼭 와야 해. 알았지? 

오늘밤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 것 같구나...

오늘 어떤 글을 읽었어.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이면서,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만능가입니다.>

마치 민지를 향한 엄마 마음을 읽은 듯한, 꼭 그대로의 내 모습인 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었어.

그래... 엄마는 지금 네가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몸은 움직여도 마음은 꽁꽁 묶여 있는 바보란다...

아가... 왜 엄마를 바보로 만들었니... 왜 엄마를 바보로 만든 거야... 응?....

아가...
민지가 좋아하는 오빠들이 왔단다.

오빠들의 웃음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운 오후였어.

시끌벅적한 그 웃음소리에 가슴이 훈훈해지면서 또 문득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 주는 오빠들의 따뜻한 마음이 눈물겹도록 고마운데

우리 민지가 있었으면 또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니까 소름 돋도록 가슴이 찡해지는 거야...

휴... 이 끝없는 아쉬움을 어찌 이겨낼지...

아가... 도와주렴.

널 떠올릴 때면 슬픔보단 미소가 이 가슴을 채울 수 있도록 엄마 좀 도와주렴...

사랑하는 민지야. 오늘밤 푹 자고 내일 예쁜 모습으로 엄마 마중 나와 주렴.
아가... 잘 자.... 사랑해..... 아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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