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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n 05. 2024

32. 세인트 킬다 군도(영국)

32. 세인트 킬다 군도 (영국)  복합문화유산 영국 끝에 있는 지상낙원     

- 이제 영국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섬, 스코틀랜드의 아우터 헤브리디스제도 연안에 있는 세인트 킬다 군도. 고리처럼 생겨서 환상화산인데 히르타섬, 덤섬, 소이섬, 보어레이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절벽이 보어레이섬 근처에 있는데 빙하와 풍화작용으로 빚어진 가파른 절벽이 멋지게 서 있어. 여기에 퍼핀, 개니트, 부비새들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어. 여기서 문제 세인트 킬다 군도에는 사람이 살까요, 살지 않을까요?

- 본토에서 멀리 떨어지고, 가파른 절벽이 있고, 자연유산 아니 복합유산이 되었으니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람이 살고 있으면 제대로 보존이 되었을 리 없어요. 

- 맞아.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이 군도에는 2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는데, 1724년 무렵 천연두로 많은 사람이 죽은 후로는 인구가 110명을 넘은 적이 없어. 그러다가 1936년 여러 곡절로 힐타 섬에 남아 있던 주민 37명이 본토로 이주했어. 지금은 섬을 방위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야.


-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서 어찌 살았을까요? 제주도처럼 바람도 심했을 것 같은데.

- 그간 사람들이 살았던 정착지들이 여러 군데 있는데 보호를 받고 있어. 빌리지 베이와 히르타호를 내려다보는 마을을 비롯해 글린 모어 취락지, 지오크루바이드 취락지, 클레이진 언 타이 페어 등. 이게타 게이코가 쓴 ‘세인트 킬다 이야기’를 보면, 인환이 말대로 거센 바람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나 봐. 그래서 사람들은 두께가 2미터가 넘는 돌집을 짓고 살았어. 한쪽에는 가축들을 살게 해서, 겨울에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에는 모조리 돌담을 둘렀고.

-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았어요?

- 외부에서 들여올 물건이 없으니 당연히 자급자족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 바위나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거나 절벽 꼭대기에서 내려와, 풀마나 갈매기 둥지를 뒤져 새를 잡고 알도 얻었어. 물론 양을 키우거나 농사를 짓기도 했어. 그런데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살았어.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이었지. 서로 돕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이웃과 유대감도 굳건했고.


-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을까요?

- 치킨이나 피자도 먹고, 하하!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 폭풍우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즐겁게 살았다는 거지. 이 때문에 당시 세계를 제패하던 강국, 영국에서 화제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영국 끝에 있는 지상낙원’을 보기 위해 트럼펫과 드럼을 연주하며 몰려들었어.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주민들은 어땠을까? 처음에는 관광객이 무서워 가축을 데리고 숨기까지 했어. 그러다가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주민들은 물질문명에 적응해 갔어. 더 이상 절벽을 기어올라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는 대신 관광객들에게 특산물을 팔거나 사진을 찍게 해주고, 팁을 받는 것으로 살게끔 되었어. 

- 섬 주민들은 어떻게 살게 될지 걱정돼요.

- 검소하게 살던 습관뿐 아니라 이웃 간에 유대감은 사라지고 싸움을 일삼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영국에서 관광객이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어. 때 묻지 않은 주민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고 탐욕스러운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거든.


- 최악의 상황이 왔군요. 마음이 아프니 조금 있다 해주세요. 다른 이야기 먼저 하구요.

- 그래. 사람들은 돌을 쌓아서 만든 건물, 클레이트에 살았어. 벽을 돌로 쌓고, 흙과 풀로 덮은 석판을 지붕에 올리고. 돌로 쌓은 작은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 히르타섬에 1,260개, 스택 및 외딴섬에 170개 이상. 창고 형태로 만들어진 집도 발견되었어. 아, 그것을 말하지 않았구나. 19세기에 초기 구조물이나 주거용 건물 대부분이 교체되었지만 청동기 시대 사람들 흔적이나 바이킹이 머문 고고학적 증거가 남아 있어.

- 섬 고유식물은 없나요? 

- 약 130종의 고유식물이 곳곳에 살고 있어. 야생 면양도 1,400마리나 살고. 

- 새들은요? 

- 약100만 마리 정도가 사는데, 리치바다제비는 이 군도에서만 살아. 회색기러기, 큰도적갈매기, 검은다리세가락갈매기는 히타르섬에 살고 있고. 보어레이섬에 몸집이 큰 얼가니새 최대 서식지가 있고. 


- 새 이름이 ‘얼가니’예요?

- 응. 날개 끝이 검고 몸집이 크지. ‘부비새’라고도 하는데 스페인어인 보보(bobo)가 부비(booby)가 된 거야. ‘보보’는 스페인어로 바보거든. 이 새가 아주 맹해. 날아가다가 배에 앉아 쉬곤 했는데 선원들이 잡으려고 해도 도망을 안 가고, 멍때리다 잡혔거든.

- 기억해 두었다가 써먹어야겠어요.

- 이런, 내가 좋지 않은 것을 가르쳤구나. 

- 그냥 해 본 말이에요. 결국 섬 주민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 다른 일들도 그렇지만 자급자족적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1822년에 청교도 기반을 만들기 위해 전도 목사인 존 맥도널드가 섬을 찾은 게 시작이었어. 이후 닐 매켄지 목사는 청교도 체제를 확립했는데 경작 방식을 바꾸고 옛 돌집을 검은 돌집으로 바꾸었어. 1865년 무렵의 존 매케이 목사는 더 심했지. 


- 어떻게 했는데요?

- 그가 엄격한 신앙규칙을 강제하면서 주민들은 전통 음악과 시를 잃어버렸어. 이후에는 사정이 더 안 좋아졌어. 관광객을 통해 따라 들어온 병균으로 인해 많은 주민이 사망하고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데 1차 세계대전 때는 섬에 영국 해군기지까지 들어와서 공동체 해체를 부채질했지. 제주의 소리에 <제주를 닮은 섬 세인트킬다, 공동체의 슬픈 종말>을 쓴 장태욱 씨 말처럼 어쩌면 제주도와 닮은꼴인지 모르겠어. 

- 돌, 바람, 관광, 해군기지, 거기까지는 닮았어요. 

- 아무튼 식량 위기에 몰린 섬 주민 37명은 이주를 청원했고, 승인이 떨어진 1930년 8월 29일 영원히 힐타섬을 떠났어. 이후 섬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이 2000년을 살아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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