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야기 사이사이
봄밤은 그렇게 시작되고
지난밤의 짙은 화장을 지우고 수수한 민낯이 된 길에 노란색 어린이집 버스와 머리를 덜 말린채 뛰어가는 젊은 여성과 큰길로 향하는 자전거가 지났다. 이른 아침 찾은 해방촌은 사뭇 다른 이미지였다. 어둠이 시작되면 특별한 약속을 위해 준비된 길인데 날이 밝으니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는 길이었다.
약속한 골목 앞 편의점 앞에서 고요하면서 분주한 아침 특유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인터뷰이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등 뒤에서 누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이는 아주 크지 않으나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잘 포장된 캔버스 네 개를 양팔로 안고 서 있었다. 촬영에 작품을 배경으로 넣고 싶다고 부탁했고, 흔쾌히 가져와준 것이다. 사이좋게 캔버스를 나눠 들고 지도에서 표시된 골목길로 접어들려다가 아차 싶었다. 인터뷰이의 작업실이 경리단길 근처라고 해서 일부러 후암동 쪽 스튜디오를 대여한 것이 패착이었다. 지도상 스튜디오까지는 걸어서 5분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막상 찾아가려니 전부 오르막이었다.
“지도를 믿지 마세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알고 계셨군요, 미리 말씀해주시지.”
“스튜디오들은 대개 윗쪽에 있어요. 풍경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고, 아무래도 임대료도 부담도 덜 할 거고요. 나눠들고 가니 좀 낫겠네요.”
그는 쿨하게 웃어보였다. 첫 미국 여행에서 지도상으로 멀지 않아 보였던 식료품점까지 가는데 30분을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모든 건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나는 얼른 판단을 내렸다.
“택시 부를게요.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림 망가질까봐 걱정이 돼서요. 아침부터 작가님께도 죄송하고.”
짧은 거리라 아무도 콜을 받지 않을까봐 걱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착한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트렁크에 넣기 조심스러워서 내가 조수석에 앉고 그와 그림을 뒷좌석으로 모셨다. 조수석에 앉아 딸깍 안전벨트를 채우자 택시가 경사진 좁은 골목을 올랐다. 몸을 뒤로 틀어 그래도 택시가 잡혀 다행이라고, 기사님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다가 나는 어? 하고 택시기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어? 다시 한번 억양을 높여 소리를 내자
“맞아. 나야.”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택시기사는 어릴적 동네친구 B였다. 언덕 위를 차로 가는 건 금방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스튜디오 앞에 도착했고 캔버스를 잘 챙겨 내리며 B에게 물었다.
“연락처 안 바뀌었지?”
촬영을 마치고 그는 다시 택시에 캔버스를 싣고 작업실로 돌아갔다. 스튜디오는 녹사평역에서 해방촌을 따라가는 방향에서는 언덕 윗쪽에, 소월길에서 해방촌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는 내리막 입구 쪽에 있었다. 나는 다시 내려가지 않고 몸을 돌려 소월길 쪽으로 올라갔다. 파스텔톤으로 꾸민 작은 카페가 보였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마시면서 B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랜만이라고, 반가웠다고, 시간될 때 한번 보자고. 커피를 다 마실 즈음 답이 왔다. 오후에 일이 끝나는데 괜찮으면 잠깐 보자고 했다. 이대로 지나가면 또 한참을 만나지 못하게 될 거라면서. 나는 알겠다고 남산 언저리에 있을 테니 연락하라고 답을 하고 남산도서관으로 갔다.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도서관만큼 완벽한 장소는 없다.
열람실에서 소설가 정지돈의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찾았다.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 때문에 전부터 읽어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첫 꼭지 맨 위에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이 인용돼 있었다. “마리아는 집에서 16번지까지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걸어보니 너무 가깝더라면서 깜짝 놀랄 만큼 기뻐했다.” 나도 여러 번 한 경험이다. 단 한 번도 걸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막상 걸어보니 눈 깜짝할 새에 당도했던 길이 많았었다. 그중에서도 나이를 먹어가는 길은 정말 깜짝 놀랄 만큼 기쁘, 다기보다 빨리 지나갔다. B와 만나 놀던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길에 대한, 걷기에 대한 정지돈의 문장을 한참 읽고 있는데 B에게 메시지가 왔다. 4시 30분쯤 볼 수 있을 거 같아.
B는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밥벌이를 하느라 좀처럼 만나지 못하는 주공아파트 키즈 멤버 중 하나였다. 당시 우리가 살던 주공아파트는 거대단지였다. 한 반에 대부분이 그 아파트에 살았지만 등굣길은 제각각이었다. 아파트 단지가 워낙 커서 아파트로 통하는 문이 동서남북에 있었다. 놀이터도 여러 곳이라 앞자리가 1로 시작하는 동의 아이들이 2로 시작하는 동 앞의 놀이터에서 놀려면 2로 시작하는 동에 사는 친구가 있어야 했다. 우리는 1로 시작하는 동의 아이들이었고, B는 3으로 시작하는 동에 살았다. 왜 B가 우리와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누군가와 같은 반이었고,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다보니 우리 놀이터까지 왔을 것이다. B는 조용하고 조심스러워서 아이들 사이에 쉽게 섞였다. 주로 들어주는 쪽이었고 감정의 기복이 없어 중학생이 됐을 때쯤엔 모든 아이들의 비밀 한 가지씩은 알고 있었다. 물론 나도 B에게 비밀을 털어 놓았었다. (B는 그 시절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친구다.) B가 정말 대단한 건 누구의 비밀도 발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덕에 우린 서로서로 평화로웠다.
약속 시간에 맞춰 남산도서관 건너편 텔레비전 모양의 설치물이 있는 버스정류장 앞으로 나갔다. 10분쯤 지나 B가 택시에서 내렸다. 교대를 하고 회사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많이 기다렸어?”
어제 만난 사람처럼 구는 B를 보며 웃음이 났다.
“우리 만난지 10년도 더 되지 않았니?”
거대단지가 구획을 나눠 재개발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주공아파트키즈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나마 B는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아서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소식만 듣고 있었다.
“건강해 보여서 좋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몰라 말을 고르고 있는데 B가 불쑥 말했다.
“네 목소리 듣고 딱 알았어.”
그렇겠지, 지금에 비해 열 배 아니 오십 배쯤 말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좀 걸을까?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했더니 걷고 싶다. 나 이 동네 살아. 내가 매일 걷는 길로 안내할게.”
풍경이 끝내주는데 산다며 감탄을 섞어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는 후암동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해방촌 오거리 쪽으로 가기 위해 소월길을 따라 걷다가 소월로20길 골목으로 들어갔다.
“택시 일을 시작한 건 코로나 때였어. 생각보다 적성에 맞더라고. 원래 내가 들어주는 걸 잘하잖아. 손님이 말을 하면 들으면 되고, 손님이 없을 땐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지금 너무 좋아.”
묻지도 않았는데 B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는 말을 서둘러 꺼냈다.
“걷는 걸 워낙 좋아해서 서울 길 여기저기 알게 되는 것도 재밌고. 물론 우리 동네가 제일 좋긴 하지만.”
B가 이렇게 자기 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나? 어른이 된 건가 싶었다. 어린 시절 수줍어하며 귀를 열고 들을 준비를 하던 B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다가 각자 알고 있는 친구들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해방촌 오거리를 지나 신흥시장 쪽으로 쭉 내려가는 길에 정말? 진짜? 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르겠다. B는 같은 학교를 다녔던 3으로 시작되는 동의 아이들 소식을 많이 알고 있었다. 인플루언서부터 제주도 맛집 사장님까지 적지 않은 친구들이 어린 시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나도 만나는 건 아니고 아직 부모님이 그 동네에 계시니까 어른들 통해서 전해 들은 거지 뭐. 택시 일을 하면서 이렇게 우연히 만난 건 네가 처음이야.”
말하는 걸 이렇게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B는 걷는 내내 이야기를 건넸다. 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던 2시간 전의 내가 머쓱할 정도로. 걸어서일까? “너 말 많아졌다?”는 내 말에 B는 크게 웃으며 원래 말이 없지 않았다고, 다만 그 시절 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이 말이 지나치게 많았던 거라고 했다. 인정한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우리는 너무 분주했다. 작은 일에 분노하고 기뻐하고 울다가 웃다가 모든 감정을 100까지 끌어올려 썼다. 조용히 생각할 틈도 가만히 들어줄 여력도 없었다. 시끄럽고 또 시끄러웠을 뿐. 어른이 되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마도 인생에 들뜸의 총량이 있지 싶다. 내가 어린 시절 그것을 모두 쏟아낸 것이라면 B는 잘 아껴뒀다 지금까지 조금씩 꺼내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사는 내내 실패가 많았어. 20대에 이상하게 운이 따르지 않더라고. 취업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 친구들 모임에도 안 나가게 된 거야. 여기저기 방황도 했는데, 지금은 편해. 하루의 일을 충실히 하고, 일이 없을 땐 걷거든.”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해지더라면서 B는 성큼 108계단을 올랐다.
“걸어가게? 바로 옆에 엘리베이터가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어.”
나의 말에 B는 픽 웃으며 자기는 걸어갈 테니, 너는 엘리베이터를 타라며 승부욕을 자극했다. 질 수 없지. 질세라 계단을 두 개씩 오르면서 진짜 놀이터에서 놀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우리는 자꾸 가까워지는 남산타워를 바라보면서 108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에 다다르니 속이 다 시원했다.
“힘든데 다 오르니까 별 거 아니지? 사는 것도 그렇더라. 힘든데, 살만해.”
B는 아직 할말이 많이 남아 있는 눈치였다. 나는 근처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사람들의 소음 없는 남산자락 어디쯤에 앉아 서울 야경을 보며 어린 시절 B가 그랬듯 이번엔 내가 B의 이야기를 잔뜩 들어주고 싶었다.
혹시 택시에 연예인 커플이 탄 적은 없었냐는 시덥잖은 질문에 B는 신이 나서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해줄까 말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줬던 B는 무얼 봤든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맥주를 마시며 후암동 두텁바위길을 지나 다시 소월길로 올라왔을 땐 저녁놀이 가득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B의 이야기 사이사이로 봄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반려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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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반려길을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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