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고 우리는 숨쉬고
무의도 해상탐방로길
아침에 눈을 뜨면 강아지가 방문 밖에서 어서 나오라고 꼬리를 세차게 흔든다. 저 인간이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았구나 싶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멍, 하고 인사를 건넨다. 어서 나와, 새날이 시작됐어! 오늘도 신나게 놀아야지! 먹고 싸고 자는 일과를 미루는 것 없이 착실하게 지키며 사는 강아지와 다르게 사람은 어젯밤 끝내지 못한 일로 아침이 그다지 상쾌하지 않지만 그래도 장단을 맞춰준다. 아! 나 살았네? 어머! 살아있네! 하면서.
살아난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아침 세리머니가 거실 소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굿모닝, 잘 잤어? 라고 말을 뱉으면 간밤에 목소리를 잃지 않은 인간이 대견한 강아지가 감격에 겨워 소파 이쪽저쪽을 오가며 누르고 긁고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고맙다, 정말 고마운데 저기, 발톱으로 소파 좀 그만 찍으면 안 될까, 라고 말하려는 걸 눈치챘는지 인간! 이까짓 거 목소리를 지켜낸 거에 비하면 별 거 아니잖아, 죽지 않고 살아났다고! 이 소파 따위! 라고 말하고 싶은 듯 더욱더 무게를 실어 소파를 누르고 긁는다. 우리 둘이 착 감겨 안고 있으면 안성맞춤이지만 여기저기 찢기고 구멍난 소파를 오늘은 바꾸리라 다짐하지만, 그때마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람이 부는 어느 섬의 길 위이다. 더 이상 인간이 살지 않는 오래전 전쟁을 치렀던 흔적만 남아 있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작은 섬 미드웨이. 녹슨 건축물들 위를 나무와 풀이 멋지게 장식해주고 있다. 바다로 이어지는 길에 커다란 새들이 날아다닌다. 날아오르는 새들 중 가장 큰 날개를 가지고 있는 알바트로스다. 어미들이 새끼들을 위해 여러 날 비행을 해 먹이를 가져오는 중이다. 어미가 입 속에 가득 담아온 먹이를 이제 막 태어난 새끼들이 저항 없이 받아먹는다. 새끼들이 제법 자라면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한다. 먹이는 바다에 있고 스스로 먹이를 구한다는 것은 날개를 활짝 펴 비로소 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바다로 나가야 살 수 있는 새의 운명. 아직 머리 위 솜털이 보송한 어린 새들이 이륙을 준비한다. 하나 둘 셋, 힘차게 날아오르지만 얼마 못 가 추락이다. 알바트로스 새끼들은 첫 비행을 위해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최대한 비워내고 마침내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미가 바다에서 먹이로 착각해 물어온 것은 소화되지 않는, 소화될 수 없는 음식 플라스틱이다. 추락으로 죽어간 작은 새들의 몸 안에는 작은 플라스틱들이 가득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주인공 동훈의 동생 기훈은 전직 영화감독이다. 그의 대사 중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를 본 이야기가 나온다. “애들이 너무 안됐어서, 영화 시작한 지 5분 만에 그 안으로 들어가서 빼내고 싶더라고” 나도 그랬다. 사진작가이자 감독인 환경운동가 크리스 조던의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를 보는 내내 당장 화면을 뚫고 태평양 한가운데의 작은 섬 미드웨이섬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곳으로 가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 담겨 그 무게 때문에 날지 못하는 수많은 새끼 알바트로스들을 구해내고 싶었다. 해류의 영향으로 태평양 한가운데 만들어진 쓰레기 섬에는 각종 쓰레기들이 모여든다. 북태평양 한류 자이어(Gyer)가 쓰레기를 한곳에 모으는 것이다. 사람들은 쓰레기섬을 자이어(Gyer)라 부르기 시작했다. 대부분 썩지 않고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들이다. 산업폐기물, 생활폐기물 할 것 없이 가득하다. 그렇게 모인 쓰레기들이 풍화되고 부서져 태풍에 여기저기 날아간다. 새와 물고기들은 저항없이 그것들을 먹이로 착각해 받아들인다. 어미새는 새끼를 살리기 위해 실어나른 먹이가 새끼를 죽이는 것들이라는 걸 알까?
그 영화를 본 이후 나는 좀처럼 오래된 것을 버리지 못하게 됐다.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가 유행할 때도 다시 미드 센추리 스타일로 모두가 갈아탈 때도 우리집의 인테리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강아지가 아무리 가구를 망가뜨려도 원래 있던 테이블과 의자, 소파, 식탁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새 가구를 산다는 건 헌 가구를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다시 쓰이게 될지 다시는 쓰이지 않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중고거래앱을 이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버리지 않는 일이었다. 버리지 못하니 뭘 살 수도 없게 되었고, 체중이 불어난 건 대부분의 소비를 먹는 것으로 해서이기도(절대로 음식은 버리지 않으니)… 어쨌든 내가 만드는 쓰레기를 비롯한 세상의 쓰레기들에 진저리를 치고 있을 즈음 옛 동료에게 플로깅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다같이 모여서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거예요. L씨도 환경에 관심이 많으니까 같이 해보면 어때요?”
아름다운 제안이었다. 다같이 모여서 쓰레기를 줍는다니. 개인적인 소비습관의 변화 외에 뭔가 직접적인 실천을 하고 싶긴 했었다. 그러나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다 같이 모이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냥 그 플로깅 어떻게 하는지나 알려줘요. 혼자 한 번 해볼게요.”
“L씨 I 아니었네, 극 I 였네. 뭐 혼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한번 해봐요. 플로깅은 스웨덴어예요. 줍다는 뜻의 플로카 업(plocka upp)에 조깅하다라는 뜻의 조가(jogga)가 합쳐진거래요. 스웨덴에서 먼저 시작됐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줍깅으로 바꿔서 부르기도 해요.”
그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꼭 뛰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다 같이도 싫고 모이는 것도 싫으면서 뛰는 것도 별로인 나는 바닷가에 갈 때면 혼자 조용히 줍깅 아니 줍워크를 하고 있다. 대단하게 뭘 한다기보다 미리 챙겨간 쓰레기봉투에 조용히 쓰레기를 담아오는 정도. 화면을 뚫고 미드웨이 섬에 당도하진 못했지만 눈앞의 바다와 그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번 먼 바다까지 다녀오긴 어려운 일이라 시간이 되면 무의도에 간다. 인천공항에서 차로 20분 정도. 무의대교를 건너 유명한 영화 <실미도>의 촬영지였던 그 실미도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하나개 해수욕장이 나온다. 공항철도를 타고 버스로 갈 수도 있다. 자동차를 이용해 무의도까지 가는 길은 정말 재미있는데 왕복 6차로의 광활한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리며 첨단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항 주변의 건물들을 거쳐 정말 조금만 지나면 크고 작은 고기잡이 배들이 가득한 고요한 어촌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야말로 화면을 뚫고 영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하나개 해수욕장 앞은 조금 어수선하다. 주차장이 있는 해수욕장 입구는 정돈이 되려다 만듯한 번잡한 분위기이지만 입구를 지나 낮은 언덕길을 살짝 넘으면 말끔한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진다. 서해바다들이 그렇듯 밀물과 썰물 때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품을 내어준 썰물 때의 바다는 정말 따뜻하고 편안하다.
하나개해수욕장은 특히 산과 바다 양쪽 모두를 걸을 수 있어 좋다. 고운 모래사장에서 버려진 것들은 없는지 살피며 걷다 보면 바다로 이어지는 데크길이 나오고 반대방향에 호룡곡산 둘레를 걷는 등산길이 나온다.
갈 때마다 등산로를 한바퀴 돌아야지 하지만 발길은 어느새 해상관광탐방로라 이름 붙은 데크길이 늘어선 바닷가로 향한다.
외국에 사는 지인의 배웅을 마치고 함께 공항에 갔던 선배에게 무의도를 소개했다. 선배는 도심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런 대자연이 펼쳐질 줄 몰랐다는 말을 걷는 내내 했다. 다음부터는 공항에 올 때마다 꼭 들려야겠다는 말도 함께.
바다와 맞닿은 산둘레를 따라 길게 놓여진 데크길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이번에도 환상적이었다. 발치에 차이는 구겨진 종이컵과 찌그러진 캔을 치우고 난 뒤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오렌지빛이 섞인 따뜻한 서해바다를 등지고 걸어나오는데 모래사장을 지나는 아주머니가 친구들에게 말한다.
“어머 이 모래 고운 것 좀 봐. 옛날에는 저런 모래로 냄비를 닦았었어”
“모래로 냄비를 닦아?”
“세제도 없을 때니까. 그땐 이렇게 고운 모래를 가져다가 설거지를 했지. 냄비가 얼마나 뽀드득 잘 닦였는지. 아직도 고운 모래 감촉이 느껴져.”
바위에 앉아 텀블러에 담아온 차를 마시며 생각해본다. 고운 모래로 하는 설거지. 오염 하나 없이 원래 있던 그대로 뒷정리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설거지.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구 위의 어떤 생명도 함부로 사라지지 않았던 때. 다시 새는 날고, 동물은 뛰고, 사람은 마음껏 숨 쉬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이 세상의 어느 한 종이라도 슬픈 영화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니 인간이 살아돌아온 것에 감격한 강아지가 또 지나치게 반가움을 표현한다. 갑자기 소파 위로 뛰어올랐다 내려오기를 초단위로 반복하며 새로운 구멍을 만들어낸다. 아, 진짜 새 소파로 바꿀까? 잠깐 마음이 들끓는다. 하지만 아니다, 그건 아니다. 우리의 반가운 흔적이 가득한 이 소파가 태평양 한가운데를 떠돌며 한 생명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의 강아지가 조금만 덜 반가워하면 좋겠는데, 내가 숨 쉬는 걸 매순간 기뻐해주는 존재에게 차마 제발 진정하라는 말을 못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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