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근아 Apr 11. 2024

01. 일주일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 후 퇴사했다

나는 지지했고, 그는 끌어안았다.

01


결혼의 등장


결혼.

내 인생에 등장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한 단어다.

오랜 프리랜서 생활로 안정감 있는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었던 나는, 내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인생의 반려자를 찾기를 포기한 것이다. 왜 그게 그렇게 겁이 났을까.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사랑'이라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사이의 진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은 그 '사랑'을 불안 없이 서로 나누며 키워나갈 사람을 만나, 내 삶을 그 단단한 사랑 위에 세우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찌 보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결혼시장에 던져지기로 마음먹고 나면 부모님의 청준과 나의 청준이 모조리 녹아있는 나의 지난날들을 왠지 변명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단 5분도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고,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열심을 내어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다. 그러나 남들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기준을 따르지 않고 살아왔기에 사람들이 말하는 내 나이에 맞는 경력, 직급, 돈을 논하자면 할 말이 없었다

. 멋들어진 말로 나만의 기준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청춘'이기에 끊임없이 수정하고 방황하며 나에게 맞는 나의 삶을 그려내는 중일 뿐이니 사실 그 기준에도 자신은 없었다. 그저 옳은 길이라 믿고 나아가고 있을 뿐.




만난 지 일주일도 안됐을 때 우리가 했던 밤 데이트 (성수)



 그러다 문득 사고처럼, 어떤 사람을 만났다.

사실 알고 지낸 지는 5년남짓. 그러나 '만났다'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게 그저 모르지는 않은 사람정도로 생각했고 한 발치 멀리서 바라봤을 때 정말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 예기치 못한 순간을 매개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만난 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서로에게 비혼주의라는 의사를 누구보다 확고하게 표명하고 시작한 연애였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혼을 논하게 되었다. 사실 결혼 생각이 있는지 물어 온 것은  내가 아닌 내 연인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내 삶을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나를 저 높은 곳에서 쭉- 바라봐 온 것처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1주일 만에 결혼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슬쩍 엿보았고, 7개월 만에 웨딩 베뉴를 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1년 하고도 5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결혼의 시작


퇴사.


 연애기간이 곧 결혼 준비 기간이었던 우리 둘. 보통은 결혼 준비기간에 많이 싸우고, 심하면 이별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서로가 굉장히 많이 비슷하다는 점을 느꼈고, 몇 안 되는 다른 부분은 정 반대라는 것을 알았다. 인연은 타이밍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우리가 조금만 더 전에 만났더라면, 정 반대인 면으로 부딪히거나 비슷한 면으로 싱거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관계에 적당히 노련하고 적당히 힘이 빠진 우리였다. 따뜻한 관계라는 것은 뜨거웠던 것이 식은 상태가 아니라, 몸을 따끈히 데울 수 있는 정도로 온열감이 있는 상태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딱 그랬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큰 결정을 하나 내렸다.

그것은 우리 둘의 퇴사. 내 연인은 12년간 다니던 안정적인 회사를 내려놓는 일이었고, 나는 그다음 도약을 위한 이직을 위한 일이었다. 묘했다. 나는 늘 불안정적으로 근무처를 옮기며 살아오다 이제 안착 중이고, 연인은 늘 안정적이던 근무환경을 불안의 한가운데로 옮겨놓는 중인 것이다. 우리 둘 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는 큰 용기와 지지가 필요했는데, 이제야 그래줄 수 있는 상대가 생긴 것이다. 연인은 용기를 냈고, 나는 마음 가득한 신뢰로 지지했다. 나는 용기를 내었고, 연인은 묵묵히 나를 끌어안으며 지지해 주었다.




퇴사를 앞두니 작품 하나하나 애틋해지던 날 (한만영 선생님 작품)   |  Reproduction of Time - Gauguin 2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향을 용기 내어 바꿔놓는 일. 그것이 우리 결혼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의 삶에 펼쳐질 다양한 선택지 중에, 더 행복하고 나 다운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관계로 남을 것이다.


서로의 곁에 오래오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