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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Apr 12. 2024

02. 결국 우리마저도 이리 달랐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그 한마디. '이 결혼 나 혼자 해?'

02


결혼식




 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다. *** 꽃밭이라는 ENFP 답게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떠오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양한 상상 내지는 공상이 가능한 나인 건 맞다. 히지만 그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니 맘껏 가능한 것이고, 결혼이란 것은 아무리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해도 마냥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 불편 찜찜한 것이라 그것을 주제로 한 공상은 왠지 흥이 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해 보며 좋았던 것과 아쉬웠던 것들이 기억에 남아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을 뿐.


 하지만 오빠는 신기하게도 원하는 그림이 의외로 명확해 보였다. 가장 먼저 이야기했던 건 ‘자연스러운 웨딩’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한 마디로 중요한 몇 가지의 선택의 폭이 확 좁혀졌다.



빛 좋은 가을날 오후의 야외 결혼식, 
그리고 애프터 파티.


1. 야외 결혼식일 것.
 
실내는 당연히 베뉴 분위기가 웨딩 자체의 분위기가 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누군가가 연출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결혼식을 올리는 느낌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2. 적당한 오후 시간대일 것.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보다는, 적당히 일어나 커피도 한 잔 하고 웨딩 당일의 일정을 쭉 훑어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려면 오후일 수밖에 없었다.
3. 애프터 파티가 가능할 것.

무엇보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고 축하받으며 보내는 만남의 날이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가운데 경삿날답게 우리와 함께 모두기 즐거이 마시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했으니, 애프터 파티는 당연한 수순.


 오빠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며 베뉴를 확정 지었다. 남산이 바라보이는, 주변이 온통 풀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그렇게 우리는 베뉴부터 시작해 결혼식 관련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별 다른 큰 다툼 없이 하나씩 결정해 나갔고, 서로가 서로에게 안성맞춤이라는 안도감이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식은 성공적이었다.

결혼식 이후에 만난 모두가, 우리의 결혼식만큼 행복한 결혼식은 없었다며 좋아해 주었다.


내가 음 틀릴까봐 그렇게 연습시키더니 오빠가 다 틀렸다


*알코올향 주의




첫 불협화음



오빠, 이 결혼 나 혼자 해?


 참다못한 내가 단전에서부터 온 마음을 끌어올려 던진 한 마디였다. 오빠는 늘 나에게 질문만을 던졌고, 공부를 하든 어디다 물어보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은 온전히 나만의 몫이었다. 분명 우리 둘이 결정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일인데 왜 오빠는 날 시키고 나만 일하는 기분이지?



오빠가 친구를 만나러 가고, 난 집에서 씰링을 300개를 넘게 했다.


 오빠의 예복도, 내 드레스도, 부모님 예복도 그랬고 아주 사소하게는 청첩장의 색깔부터 폰트까지 (심지어 셀프로 만들었다) 모든 조사와 정리는 A부터 Z까지 나 혼자서 해왔다. 그걸 추리고 추려 한 번 봐달라고 했을 뿐인데 그걸 한 두 달이 넘도록 안 보다니… 보라는 건 안 보고 누워서 핸드폰만 보며 키득거리는 게 너무 얄미웠다. 거의 처음으로 낸 작은 화에 오빠는 화들짝 놀라며 부랴부랴 내가 보낸 파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그마저도 찾지 못해 내가 다시 보내줬다.


 이런 상황이 무한 반복되던 어느 날. 이건 진지하게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오빠 나 힘들어. 혼자 하는 결혼 같아서 외롭기도 해. 어떤 것 때문에 계속 이렇게 남 일처럼 구는 거야? 혹 내가 헤아려주지 못한 상황이 있었던 거야?


 입 밖으로 솔직한 말을 끄집어내니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대답만 가져오던 나의 질문에 오빠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너무 비슷해서 신기하기만 했던 우리에게서 큰 차이점을 발견했다. 바로 ‘일 처리방식’이 정 반대라는 것이다.



 나는 오랜 기간 프리랜서로 생활해 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나 스스로 오롯이 계획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당장의 앞날이 위태로워지는 결과를 낳기에, 어떻게든 컨디션을 끌어올려 주어진 일을 빨리 끝내도록 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빨리 끝내야 다음 일을 신속하게 구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헬이라는 패션회사에서 12년을 온갖 야근으로 채워 온 오빠였다. 일을 하나 끝내면 새로운 일 3개가 더 얹혀있어 손에서 일을 털어버린다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여러 가지 일을 하나씩 끝내기보단 동시에

함께 다루는 데에 더 익숙한 것이었다.


 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워가며 신속하게 일을 쳐내는 나와, 동시에 모든 일을 다루다 동시에 종료시키는 오빠는 서로의 일 처리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심플하게 대화를 하니 해결 방법도 생겼다. 그 이후로 빠르게 끝내야 하는 일들은 내가 하고 (일의 70%), 충분히 고민할수록 좋은 일들은 오빠가 맡았다. (30%)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딩에서 빠진 것 없이 세세하게

챙기며 여러 가지 변수에 대처한 나와, 특히 애프터 파티처럼 재미있는 일들을 더 많이 만들수록 좋은 부분을 그려낸 오빠의 합작은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 처리방식의 차이는 신혼생활 내내 지금까지도 생각보다 다양한 부분에서 도드라졌다. 초반에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해 둔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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