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지했고, 그는 끌어안았다.
결혼.
내 인생에 등장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한 단어다.
오랜 프리랜서 생활로 안정감 있는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었던 나는, 내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인생의 반려자를 찾기를 포기한 것이다. 왜 그게 그렇게 겁이 났을까.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사랑'이라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사이의 진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은 그 '사랑'을 불안 없이 서로 나누며 키워나갈 사람을 만나, 내 삶을 그 단단한 사랑 위에 세우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찌 보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결혼시장에 던져지기로 마음먹고 나면 부모님의 청준과 나의 청준이 모조리 녹아있는 나의 지난날들을 왠지 변명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단 5분도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고,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열심을 내어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다. 그러나 남들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기준을 따르지 않고 살아왔기에 사람들이 말하는 내 나이에 맞는 경력, 직급, 돈을 논하자면 할 말이 없었다
. 멋들어진 말로 나만의 기준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청춘'이기에 끊임없이 수정하고 방황하며 나에게 맞는 나의 삶을 그려내는 중일 뿐이니 사실 그 기준에도 자신은 없었다. 그저 옳은 길이라 믿고 나아가고 있을 뿐.
그러다 문득 사고처럼, 어떤 사람을 만났다.
사실 알고 지낸 지는 5년남짓. 그러나 '만났다'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게 그저 모르지는 않은 사람정도로 생각했고 한 발치 멀리서 바라봤을 때 정말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 예기치 못한 순간을 매개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만난 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서로에게 비혼주의라는 의사를 누구보다 확고하게 표명하고 시작한 연애였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혼을 논하게 되었다. 사실 결혼 생각이 있는지 물어 온 것은 내가 아닌 내 연인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내 삶을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나를 저 높은 곳에서 쭉- 바라봐 온 것처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1주일 만에 결혼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슬쩍 엿보았고, 7개월 만에 웨딩 베뉴를 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1년 하고도 5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퇴사.
연애기간이 곧 결혼 준비 기간이었던 우리 둘. 보통은 결혼 준비기간에 많이 싸우고, 심하면 이별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서로가 굉장히 많이 비슷하다는 점을 느꼈고, 몇 안 되는 다른 부분은 정 반대라는 것을 알았다. 인연은 타이밍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우리가 조금만 더 전에 만났더라면, 정 반대인 면으로 부딪히거나 비슷한 면으로 싱거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관계에 적당히 노련하고 적당히 힘이 빠진 우리였다. 따뜻한 관계라는 것은 뜨거웠던 것이 식은 상태가 아니라, 몸을 따끈히 데울 수 있는 정도로 온열감이 있는 상태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딱 그랬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큰 결정을 하나 내렸다.
그것은 우리 둘의 퇴사. 내 연인은 12년간 다니던 안정적인 회사를 내려놓는 일이었고, 나는 그다음 도약을 위한 이직을 위한 일이었다. 묘했다. 나는 늘 불안정적으로 근무처를 옮기며 살아오다 이제 안착 중이고, 연인은 늘 안정적이던 근무환경을 불안의 한가운데로 옮겨놓는 중인 것이다. 우리 둘 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는 큰 용기와 지지가 필요했는데, 이제야 그래줄 수 있는 상대가 생긴 것이다. 연인은 용기를 냈고, 나는 마음 가득한 신뢰로 지지했다. 나는 용기를 내었고, 연인은 묵묵히 나를 끌어안으며 지지해 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향을 용기 내어 바꿔놓는 일. 그것이 우리 결혼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의 삶에 펼쳐질 다양한 선택지 중에, 더 행복하고 나 다운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관계로 남을 것이다.
서로의 곁에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