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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입시지옥은 없다?

by 정인성

많은 사람들이, 대학 수는 많지만 대학에 가는 학생 수는 50%가 좀 넘는 일본에는 이제 입시지옥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일본에는 입시지옥이 없는가? 천만에! 있다. 그것도 심각할 정도로. 다만 한국과는 다르게, 조용하면서 체제 속에 더 정착된 모습으로 존재한다. 참조로 일본에서는 입시지옥이라고 하지 않고 수험지옥이라고 한다. (위의 사진은 pixabay의 무료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다.)


지난 2023년 7월에 우리나라 정부가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없애겠다고 했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이를 한국의 입시지옥과 연계하여 보도한 바 있다. 일본의 NHK는 "명문대학에 들어가 졸업 후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할 정도의 학력사회와 연결하여 한국의 입시지옥을 설명하였다. 어릴 때부터 학원지옥이라는 심한 수험 경쟁에 놓이는 아이들에서부터, 사교육비가 지난 10년간 60% 이상 올라 월평균 약 70만 원이 되고, 대치동 등에서는 월 175만 원 - 350만 원 정도까지 쓰게 된다는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이와 함께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사교육비 지출을 계속하게 되면, 자녀교육으로 인한 빈곤 가정 (Edu-poor)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였다. 한국을 이렇게 보고 있는 일본은 어떠할까? 입시지옥, 학원지옥이 없는가?


입시지옥의 의미와 양상의 변화

입시지옥의 의미는 계속 변화하여 왔다. 대학 수와 대학 입학 정원이 들어가려는 학생 수에 비하여 턱없이 적었던 시절에는 전국이 입시지옥에 시달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학 진학자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소위 원하는 상류대학과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고자 하는 경우에 한해서 입시지옥이 거론된다. 현재 한국의 4년제 대학 입학 정원은 34만 4000명이다. 2024년도 대학 입학 가능 인원은 32만 명이 채 안되며, 2040년까지는 28만 명 정도가 될 전망이다. 즉, 원하면 누구나 4년제 대학에 갈 수 있다. 오히려 입학생이 미달되는 대학이 매년 늘고 있으며, 폐교되는 대학도 생겨나고 있다. 지방은 물론 서울에 있는 대학들도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보다 속도가 느리다고 하지만,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다. 통계가 잡히는 196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말에는 대입 불합격률이 40%를 넘었고, 1990년으로 대학 입학 지원자 88만 7000명 중 39만 5000명, 즉 지원자의 44.5%이 불합격했다. 가장 치열했던 일본의 입시지옥 시절이었다. 그 후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로 2000년에는 불합격률이 20%, 2008년에는 10%, 2022년에는 불과 1.7%가 되었다가 2024년도 입시는 입시 경쟁 완화를 더욱 실감할 수 있는 해라고 보고되었다. 18세 인구 감소가 2017년 이후 지금까지 13만 명 정도라고 추산되니 대입 경쟁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1990대 있었던 전국적인 입시지옥은 사라진 지 오랜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 난관대학(難関大学)의 경우에는 입시지옥이 존재한다. 난관대학이란 입학하기 어려운 대학, 한국으로 말하면 상류 대학들과 유사한 개념이다. 난관대학은 상위 16% 정도 (편차치 60점)의 학생들이 갈 수 있는 대학들이고, 여기서 상위 2.3% 정도(편차치 70점)만 갈 수 있는 곳은 초난관대학 (超難関大学)이라고 말한다. 매년 입시학원들이 입학시험 정보를 분석하여 국립, 공립, 사립대학 카테고리에서 난관, 초난관대학을 발표를 하는데, 단순 비교가 어렵기 때문에 입시 참고자료의 하나 정도로 사용한다. 국립대학에서는 대개 동경대, 교토대, 도호쿠대, 규슈대, 홋카이도대, 오사카 대, 나고야대, 이치바시대, 동경공대, 쓰쿠바대, 고베대 등이 포함되며, 공립대학에서는 국제교양대, 동경도립대, 나고야시립대, 오사카 공립대 등이 포함된다. 사립으로서는 와세다대, 게이오대, 가미치대, 동경이과대, 국제기독교대, 메이지대, 아오야마학원대, 릿쿄대, 중앙대, 호세이대, 간사이대, 간사이학원대, 도시샤대, 리츠메이칸대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난관대학이 아니더라도 의학부는 경쟁률이 높아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입시지옥을 경험한다. 이는 한국과 유사한 점이다.


최근 들어 이들 난관대학에서도 경쟁 완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난관대학들이 몰려 있는 동경도 (76.8%), 쿄토부 (70.9%), 오사카부 (61.4%) 등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일본 전체 평균인 56.6%를 넘기 때문에 그만큼 입시에서의 경쟁이 심하다고 하겠다. 난관대학, 특히 초난관대학이나 의학부, 법학부를 가고자 하는 학생의 경우에는 한국에 절대 뒤지지 않는 입시지옥을 경험한다. 18세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2040년도에는 약 40% 정도의 대학진학자가 이 난관대학들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하는 전망이 있어, 그때 즈음에는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퇴색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유치원부터 조용히 시작되는 일본의 입시지옥

2023년 초 발간된 ‘입시지옥에 빠진 여자 (お受験地獄に堕ちた女)’라는 제목의 코믹북이 있다. 남편은 일류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근무하고 남편 집안 전원이 고학력 엘리트이라 그들에게 무시당하는 고졸 출신 전업 주부가 2살 된 아들을 일류 대학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우선은 명문 유치원에 넣으려 하면서 그 후 점점 입시지옥의 수렁에 빠지는 모습이 일본의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입시지옥을 풍자한 것이다.


유치원 입시: 일본에서 아이가 있다면 보통은 동네 공립 유치원에 대개 추첨으로 들어가거나 경쟁이 그리 높지 않은 사립으로 들어가지만, 소위 명문 유치원들에 가려면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러야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유명 초등학교 계열의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면 일관된 교육 방침하에 높은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초등학교 입시 부담이 줄어들고, 길게는 중,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계속 같은 친구들과 같은 계열의 학교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같은 계열 초, 중, 고, 대학까지 입시부담이 확 줄게 되며, 그때의 친구 관계는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되는 것은 물론이다. 즉, 명문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면 대학까지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이 큰 장점이다.


명문 유치원 특성과 학비: 일본에서 3대 명문 유치원으로 꼽는 곳은 와카바 카이 유치원 (若葉会幼稚園), 지광회 부속 유치원 (枝光会付属幼稚園), 그리고 애육유치원 (愛育幼稚園)이다. 이들은 모두 동경시내 고급 주택지인 미나토구에 위치한다. 이들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면 명문 초등학교 입시가 수월해지고 중, 고, 대학까지의 입시가 수월해진다. 이 3개 유치원 이외에 사립 명문 유치원으로는 아오야마 학원 계열의 ‘아오야마 학원 유치원’, 학습원대학 계열의 ‘학습원 유치원’ 이 있고, 국립에는 ‘동경학예대학 부속 유치원’ ‘쓰꾸바 대학 부속 유치원’, ‘오차노미즈 대학 부속 유치원’ 등이 있다. 부속 유치원은 없지만 위에 말한 3대 유치원에서 게이오 대학 계열의 ‘게이오 유치사 (유치원)'와 ‘효성 초등학교’ 등 난관 초등학교로 입학을 많이 하고 있다. 명문 유치원 학비는 비싸다. 1년 평균 70 - 75만 엔, 3년이면 약 200만 엔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치원 졸업 후 사립 중, 고등학교로 진학한다면 그 학비도 꽤 높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일본은 한국과 달리 사립 중고등학교는 교과과정도 특색 있게 운영할 수 있고, 학비도 높게 책정할 수 있다.


사례: 생생한 예를 들어보자. 몇 년 전에 나의 친한 동료가 딸아이를 아오야마 학원 유치원에 넣기 위해 1년여 정도 매일 일찍 퇴근하여 몇 시간씩 아이에게 유치원 수험 준비를 시켰다. 친구 말에 따르면 1-2세부터 몇 년간 준비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3대 유치원 입시는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그래도 조금 쉽다는 명문 사립 유치원을 택한 것이라고 했는데, 1년 열심히 하면 그 이후에는 아이나 부모가 입시지옥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무슨 준비를 시키냐고 했더니, 딱히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퍼즐이나 게임, 그림 등을 통하여 집중력, 지능, 협동심 등을 길러 주려고 하며, 영어 표현력도 늘려주고, 여러 종류의 운동을 통하여 운동 능력 및 반사 신경 등도 향상하고, 정리 정돈이나 인사 등의 생활 습관 등도 신경을 쓴다고 하였다. 이는 실기 시험을 위한 것으로, 참고로 실기 시험에서는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동하며 반응하는 지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실기에 더하여 면접이 있는 데, 아이 혼자, 부모와 함께, 부모만 받는 것 등 다양한 형태가 있기 때문에 이 면접을 위한 준비도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복장에서 언어, 예절도 포함해서 본다고 하니, 쉬운 면접은 아니구나 생각되었다. 내 동료와는 달리, 시간을 자유로 낼 수 없거나 아이를 연습시킬 정보나 실력이 없을 때는 이를 대신해 주는 유치원 입시 학원이 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명문 유치원 입시 경쟁은 대개 부유하거나 학력이 높은 부모들이 아니면 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소수의 집단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경향이다.


3대 대형 예비학교와 동경대 입시 전문학원 철록회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입시지옥이 없어지고 정원 미달이나 대학이 폐교되는 사태가 있는 반면 난관대학, 의학부 등을 중심으로 여전히 입시지옥이 존재하는 일본. 그 한가운데에는 한국의 학원재벌과 유사한 예비학교와 철록회가 있다. 물론 주꾸라고 부르는 일반 학원이 숫자적으로는 더 많지만 입시지옥이 과연 있구나 라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예비학교와 철록회이다.


일본의 예비학교는 어떤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그 준비를 위한 학교이다. 문부성이 ‘각종 학교’로 인가를 내어 준다. 물론 미인가 예비학교도 있다. 진학 예비교, 편입학 예비교, 자격시험 예비고, 대학원 예비고 등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 중 대학 진학을 위한 대형 3대 예비교 (산다이요비코우라고 읽음)가 유명하다.


주꾸와 다른 점: 여기서 일본의 예비학교와 주쿠 또는 학습주꾸 (学習塾)라고 불리는 학원의 다른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비학교 혹은 예비교가 국가의 허가를 받은 학교이고 학교교육법에 의해서 규제가 된다면, 주꾸 혹은학원은 학교교육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설 기관이다. 학생들은 방과 후나 휴일에 학원을 다니면서 보충 수업이나 진학 준비를 위한 공부를 한다. 예비교생은 학생이라고 부르고 철도 정기권 등의 학생 할인 혜택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 교육부가 학원을 지도 점검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 문부성은 학원에 대한 규제나 관리 등을 하지 않는다. 일본 학부모들이 이 학원에 쓰는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지만, 이는 개인들의 판단과 선택이기 때문에 문부성이 개입을 하거나 사회적으로 문제 삼는 적을 본 적이 없다. 문부성 관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일본의 사교육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묻자, 세금으로 내지 않고 개인이 개인 돈으로 지불하는 사교육비를 왜 정부가 개입하느냐 하면서 오히려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정서로 사교육비를 바라본다는 것을 느꼈다.


유명 예비 학교: 대개 학교법인이나 재단 법인이 설립한 예비학교는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의 대학과 함께 발전되어 온 오랜 역사를 가졌다. 3대 예비교중 1918년 창립된 ‘스루다이 예비학교’가 가장 수준이 높다고 알려져 있고, 그 뒤를 이어 1932년에 ‘카와이학원’, 1957년 ‘요요기 세미나르’가 개교하였다. 이 3개교의 머리글자를 따서 SKY라고도 표기한다. ㅎㅎ 이들 예비교는 입시경쟁이 치열했던 1980 – 2000년 시절에는 모의고사, 수험 관련 서적 출판, 수험 정보 제공 등에서 다른 예비교들을 압도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입시계를 주도하고 있으나, 2010년 이후 요요기 세미나르가 축소되고, 유명 강사의 영상 수업 및 온라인 학습 관리 시스템 등을 도입하면서 급성장한 ‘동진 스쿨’이 3개 예비교에 들어가는 등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 예비학교들은 일류강사를 통한 설명식 수업을 주로 하면서 튜터를 이용하여 학습 관리를 지원한다. 또한 각종 입시 정보를 제공하고 대입 모의고사를 실시하여 학생들의 실력 정도를 평가해 주는 등 한국의 유명 학원들과 유사하게 운영된다. 하지만 한국의 학원과는 달리 학교법인에 의하여 운영되는 법으로 인정되는 학교라 그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어떤 예비교나 학원에서 동경대 혹은 다른 난관대학에 진학을 많이 시켰느냐로 매년 랭킹을 매겨 발표한다. 3대 예비교는 가장 많이 동경대에 진학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3년, 1위가 스루다이 예비학교 (1,408명)이며, 2위는 카와이 학원 (1,321명), 다음 3위는 주식회사 증진회 홀딩스가 운영하는 통신 교육 학원인 Z회 (1,263명)이고, 4위가 동진 스쿨 (845명)이었다.


철록회 (鉄緑会 – 이 이름은 동경대의학부의 동창회 조직인 철문 클럽의 철을 따고, 동경대 법학부 동창회 조직인 녹회의 록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대상으로 한 동경대 입시 전문 학원이다. 더하여 국공립대와 명문 사립대의 의학부 입시도 담당한다. 기존의 대형 학원이나 예비교의 획일적인 지도 방법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동경대 의학부, 법학부의 학생·졸업생에 의해 개발된 학습법을 이용한다는 교육관을 가지고, 1983년에 설립되었다. 일 년에 많은 동경대 합격자 (2023년에는 520명)와 국공립대학의학부 합격자 (2023년 355명), 게이오대학의학부 합격자 (95명)등을 배출하는 철록회는 의학계, 법조계, 관계, 학술계와 국내외를 불문하고 넓게 활약하는 졸업생을 자랑한다. 동경대 의학부와 법학부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만큼 전임 강사는 동경대 졸업생을 활용하고 파트타임 강사도 거의 전원이 동경대생이거나 동경대 졸업생, 명문 중고등학교에서 수년 가르친 현역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초난관 즉 최고 어려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들어간 학생들도 이 철록회에 들어가 입시 공부를 한다는 점이다. 학교 공부만으로는 동경대와 같은 초난관 대학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정서가 한국과 유사하게 있다.


마치면서

이렇게 보면 일본에도 명문 대학, 의과 대학을 가려는 학생들 간의 입시 경쟁은 치열하다. 그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은 한국보다 훨씬 빠른 유치원 입시에서 시작되며, 국공립의 경우에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배정되지만, 좋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어려운 입시에 성공해야 들어갈 수 있다. 어찌 보면 한국보다 치열하다. 그러나, 자신의 경제적 능력 이상으로 아이들의 입시에 올인하는 부모의 숫자는 적다. 시간이 있고 경제적 지원이 가능하다면 더 좋은 예비교나 학원에 보내고, 그렇지 않다면 자기 수준에 맞는 동네 학원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돈 많은 사람이 자녀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것에 대하여 별로 저항감이 없는 사회가 바로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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