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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 두 번째 이유

by 정인성교수 Nov 29. 2023

그 두 번째 이유: 연구 지원 환경과 정책


이전 글에서 일본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온 이유 중의 하나로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들을 기다려주고 인정해 주는 조금은 느슨한 교수 평가 제도를 들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연구 지원 환경 및 정책인 것인데, 일본은 스스로 연구 동기가 높은 연구자들이 장기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어쩌면 여유롭게 보이는 연구 지원 환경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1) 다양한 연구비 지원 기관들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연구비 지원 기관은 일본학술진흥회(Japan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Science 혹은 JSPS)이다. 이 기관은 한국연구재단과 비슷한 역할을 하여, 매년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비 신청을 받고 심사를 거쳐 지원한다. 흔히 Kakenhi (카켄히)라고 불리는 JSPS의 연구비는 대학의 연구지원부서를 통하여 지원할 수 있다. 연구비를 제공하는 연구의 종류는 다양한 데, 연구의 규모와 주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연구비 신청을 하게 되며 연구 지원서의 포맷도 다르다. 매년 3월과 8월에 연구비 신청 가이드라인이 오픈되는데, 이 시기는 변할 수 있다. 연구지원서는 일본어는 물론 영어로도 작성할 수 있는데, 연구지원서 포맷을 엄격히 따라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JSPS의 가이드라인을 자세히 읽으면서, 동시에 일본인 동료나 행정직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JSPS 연구비 외에도 다양한 연구비 지원 기관이 있다. 각 대학의 연구 포털을 보면 이 기관들을 소개한다. 일본 내 대표적인 연구 재단으로 Suntory Foundation, Mitsubishi Foundation, Toyota Foundation, Matsushita Foundation, The Japan Foundation 등이 있는데, 매년 지원 서류를 접수하고 있으며 미래 지향적이고 흥미로운 다양한 주제의 연구들을 지원한다. 여기에 더하여 Soros Foundation, Ford Foundation,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등 국제적인 연구 재단들이 있다. 더 상세한 것은 각 대학의 연구 포털 등에 소개된다.


외부 연구지원 외에 대학마다 자체적으로 매년 제공하는 연구비가 있다. 거의 모든 일본대학들이 매년 모든 교수들에게 일정 금액의 연구비를 지원하여 국내외 학회 활동 참석이나 연구 데이터 수집, 혹은 더 이상의 연구 활동을 하도록 지원한다. 물론 대학에 따라서 그 지원 시기나 액수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많은 대학이 매년 모든 교수들에게 일정액의 연구 경비를 배분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2) 연구비 지원은 단기가 아닌 중장기 단위로 이루어진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구비 지원 기관이 많은 것도 중요하겠지만, 장기 연구를 장려하거나 기다려주는 연구 지원 환경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한국의 개인 교수 대상 연구비 지원이 대체로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연구비 지원은 대개 3-5년 단위, 혹은 그 이상으로 이루어진다. 일본학술진흥회에서도 대부분 3-5년 단위로 연구비를 지원한다. 물론 단기 연구로는 1-2년, 장기 연구로는 5년 이상의 과제도 신청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로 5년이 걸리는 연구 과제에 대한 연구비를 받으면 1-2년 안에 성과를 내어야 하는 단기 연구에 비하여 해당 주제에 보다 깊이 혹은 다각도로 연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연구비 지원이 가장 많은 일본학술진흥회는 대개 3-5년 단위로 연구 과제를 받는 특징이 있으면서,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신청하였을 경우 연구비를 연속하여 지원하는 확률이 높다. 한 예를 들자면, 나는 교수들의 문화적 배경이 강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3년 연구 지원을 받았다. 첫 해에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교수들이 유튜브 비디오를 어떻게 수업에 활용하는지 연구하고, 둘째 해에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교수들이 인터넷에 공개된 텍스트 및 이미지 자료를 어떻게 수업에 활용하는지 연구했다. 마지막으로 3년 차에는 1차와 2차 연구를 기반으로 온라인 교육에서 문화의 영향을 개념화하고 체계화했다. 이후 문화적 배경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다시 3년 동안의 연구비를 받아 이번에는 교수가 아닌 학생들의 학습 활동에 문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연구했다. 유사한 주제로 6년 동안 연구한 결과는 여러 논문으로 국제 저널에 출판될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문화와 온라인 학습'이라는 공동 저서로 출판된 바 있다. 만약 1년 단위로 연구를 지원하는 체제였다면 매년 연구비를 받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연구비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앞서 말한 형태의 연구와 다양한 연구 성과는 어려웠을 것이다.


3) 연구비로 다과나 식사비는 지불하기 어렵다

일본의 연구비는 연구 지원과 직접적인 연구 활동에 쓰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애매한 식사비나 다과비에는 지출이 매우 어렵다. 어느 나라에서 든 국가 차원의 재단에서 나오는 연구비는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연구비 지출과 성과 관리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마련된 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학은 연구비 관리 부서를 별도로 운영하여 교수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한다.  나라마다 연구비 지출 및 관리 기준이 다르다.


일본의 연구비에서 다과나 식사비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전문가들과 회의를 할 때는 교통비와 전문가 사례비는 지불하지만, 회의를 식사시간을 피하여하거나 식사비는 개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학술 대회에서도 리셉션 등의 식사비는 개별 참가자에게 별도로 청구된다. 즉, 연구비로 연구자들이나 외부 인사들을 위한 회식이나 대접을 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매우 어렵다. 나 개인적으로는 연구 회의를 한 후 회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연구에 관한 집중 토론에 더 시간을 투자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느꼈다. 한국의 경우, 연구비에서 전문가나 연구원들에게 회의 전후에 다과비나 식사비를 지급할 수 있다. 이를 더 편리하게 지원하기 위해 대학에서는 연구비 전용 신용카드를 발급하기도 한다. 한국의 한 대학에서 연구비를 많이 따게 되면 대학 주변의 음식점이 성행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4) 연구비로 연구자 인건비는 지불할 수 없다

일본의 연구비의 또 하나의 특성은 연구책임자나 공동 연구자들에게는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외부 협력자나 전문가들에게는 사례금 등의 형태로 지급이 가능하다. 연구보조원의 경우에도 시간당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게 되어 있으며, 한국이나 미국과 같이 매달 월급식으로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단, 대규모 연구비의 경우 외부 연구보조원을 고용하면서 매달 인건비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학술진흥회 지원 연구에서는 연구 보조원에게 일한 시간에 따라 인건비를 지급하고, 연구자들에게는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과 같이 연구책임자, 공동 연구자, 연구 보조원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는 제도에서는 인건비 비율이 높고 연구비의 규모도 커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에서는 연구자의 인건비 지급이 없고 연구 보조원도 일한 시간만큼 지불하기 때문에 인문사회 영역에서의 연구비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내가 처음에 일본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았을 때는 이 부분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내가 연구 설계부터 실행, 결과 보고까지 다 주관하는 데 이에 대한 지급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잘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간 한국과 국제기관의 연구들에서는 연구자 인건비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어떤 제도가 좋은 지, 연구 동기를 높이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인건비 지급이 없기 때문에 연구비 총액이 적어도 연구비는 풍부했던 좋은 경험이 있었다.


5) 연구비로 컴퓨터와 여행비의 지급은 용이하다

일본의 연구비로는 연구에 필요한 경우 PC나 노트북 등의 개인 전자 기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당연히 연구에 필요하다는 전제 조건을 충족하고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하지만 다양한 전자 기기를 구입하는 것은 일본학술진흥회의 연구비로 지원이 된다. 이러한 특성을 보면, 일본에서는 연구비의 많은 부분이 테크놀로지 산업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연구비에서 개인 전자 기기 구입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또한 연구를 위하여 국내외로 여행해야 하는 경우 규정에 따라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연구비에서 쓸 수 있다. 연구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연구 결과를 국내외 학회에서 발표해야 하는 경우는 물론, 시설을 견학하거나 다른 연구자를 만나서 연구에 관한 논의를 하는 등의 경우에도 연구비를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일본학술진흥회 혹은 외부의 연구비로 이러한 여행 경비가 부족하거나 외부 연구비가 없는 경우에는 대학에서 제공하는 연구 경비를 신청하여 쓸 수 있다.


6) 단기 연구 성과보다는 공정하고 투명한 연구비 지출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의 연구 관리의 초점은 연구비가 기준에 따라 엄정하고 정당하게 사용되었는 가이고, 연구의 결과물에 대한 질적 양적 평가는 엄격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연구 성과가 계획대로 이루어졌는지, 계획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이유와 앞으로의 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기록한 보고서를 연례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에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거나 출판한 보고서, 논문, 책 등의 기록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연구 결과물이 그다지 많지 않거나 질적으로 우수하다고 인정받지 않은 경우에도 다음 연구비 신청이나 다른 연구 활동에 지장이 거의 없다. 일본 연구자들의 국제적 연구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각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질적, 양적으로 평가 지원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연구 성과보다는 연구비 관리를 더 중시하는 일본의 연구 관리 제도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한국 역시 투명한 연구비 지출 부분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지만, 연구 성과물에 대한 관리가 더욱 엄격하다. 연구비 지원을 받고 연구 성과물이 국내외 저널에 논문으로 실리지 않거나 다른 형태로 출판되지 않은 경우 다음 연구비 지원을 받기가 어렵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구력과 연구 성과가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하여 떨어지는 일본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또 하나의 이유는 자율적으로 연구 동기가 높은 교수들이 장기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 지원 환경이라고 하겠다. 다양한 재단의 연구비 지원이 있고 중장기 연구에의 투자를 통하여 일본의 대학들은 노벨상 수상 등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수한 연구자들을 배출해 왔던 것이다. 그리나, 동시에 객관적이고 엄격한 연구 평가 제도의 부재로 연구력과 연구 성과의 저하 문제가 제기되어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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