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IT 대기업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현재는 일본에 있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있는 일본 생활 15년 차 사회인이다.
미국에서 초중학교를 다니다가 2006년 고2 때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한국의 입시지옥을 통과할 자신이 없었다. 일단 한국에서 나가자 싶어 해외대학에의 유학을 준비하였다. 기쁘게도 일본의 국제기독교대학 (International Christian University, ICU)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2008년 9월, 일본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2년간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일본어라고는 당시 푹 빠져있던 J-POP과 애니메이션에서 주워들은 몇 개의 단어뿐이었지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정인성 교수님의 부탁으로, 이제 지난 15년간의 유학생으로서의 나의 학업과 졸업, 취직 활동과 취업을 중심으로, 일본에서의 경험과 여전히 탈본 (탈 일본)을 못하고 있는 나의 스토리를 공유하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가 일본에서 학업, 그리고 취직까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일본은 변화가 빠른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내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려운 시작과 일본어 어학 과정
2008년 9월. 일본어 능력도 스마트폰도 없이 지도와 학교 안내지만 들고 나리타에 도착한 방향치인 나는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는 ICU 캠퍼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리먼쇼크의 여파로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은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입학식이 끝난 후 일주일 만에 일본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환율이 합격 통보 시와 비교하여 50% 이상 상승, 100엔이 1,400여 원 정도가 되어 일본 유학의 비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참조로, 현재는 100엔이 900여 원 정도이다). 환율 변동은 해외 유학생이면 어느 정도 염두해야 할 리스크지만 나와 나의 부모님은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할 자신이 없던 나는 일본 대학에 남기로 결정하였고, 그 결과 입학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생활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지난 스트리에서 일본의 교양교육대학 사례로 소개하였듯이, ICU의 경우 국제유학생들은 일정 이상의 학점을 일본어 어학 프로그램에서 받는 것이 의무였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경우 1~2학년 동안 intensive Japanese course라는 수업을 듣는 것이 기본이었다. 일본어 어학 과정은 기본적인 히라가나에서부터 최종적으로는 일본어로 에세이를 쓸 정도까지 언어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졸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 교과였다. 일본어를 몰랐던 나 역시 2학년 까지는 학점의 80%를 일본어 어학 수업에서 받았고, 다른 교양수업들은 시간이 맞을 경우에만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일본에 오래 있게 된 큰 지분은 일본어 수업을 통해 다져놓은 일본어 능력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학수업 외에는 아마 다른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을 ICU만의 특별한 축복과도 같은 좋은 수업들을 많이 들었다. 당시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경영학과의 전임 교수진이 부족했던 관계로 경영 현장과 이론 모두에 뛰어나고 영어 강의가 가능한 외부 교수님들을 초빙하였다. 그분들은 인상 깊은 경영학 강의를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경영학을 주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예를 들면, supply chain에서 production, marketing, sales의 일련의 과정을 교과서 중심의 이론만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룹별로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다른 그룹에게 판매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수업이 있다. 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1~2학년 학생들이 재미있게 이론을 배울 수 있었던 인상 깊은 수업들이었다.
군 입대와 제대 후 학업 생활
2학년이 끝나갈 무렵, 한국 군에의 입대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기가 왔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2학년을 마치자 바로 입대했다. 당시 한국인 학생 수가 매우 적어 입대 관련 대응이 상당히 부실했던 ICU였지만, 다행히 2년간 학비의 1/3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휴학이 가능했다.
전역 후 생활은 아마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친구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친했던 일본인 친구들은 이미 졸업을 하거나 4학년 졸업반이었다.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에는 취업 준비와 전공 결정, 그리고 어색함이 너무나도 큰 장벽이었다. 물론 새로 사귄 친구들도 있었지만 처음 입학할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같은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변명 같을 수 있지만 덕분에 학업에 100% 집중할 수 있었다).
제대 후 특히 학업면에서는 큰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당시만 해도 ICU만의 독특한 제도였던 교양학과의 전공 선택이다. 당시에는 일본에 교양학과를 제공하는 대학은 정말 적었다. ICU의 경우에는 2학년까지는 다양한 수업들을 들으면서 자신이 전공하고 싶은 분야를 정하고 3학년 1학기 때 전공을 정하는 제도가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도 어느 정도 경영을 전공할 생각은 있었지만, 인류학, 심리학, 국제관계, 국제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들을 들었었다. 실제로 그중에서 인류학과는 교수님의 수업 진행 방식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복수전공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입대 전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교수님들 중 이 시기에 ICU에 남아 계신 교수님들은 경영과 경제학뿐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전공은 경영, 부전공은 경제로 결정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수학이 매우 싫었고 내가 경제학을 진지하게 공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내 제미 (세미나, ぜみ) 담당 교수님이 되어주신 미국인 경제학 교수님 덕분에 경제학에 관심이 생겼다. 때 맞춰서 리먼쇼크 뒷수습 및 키프로스와 그리스 발 유럽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 이론들이 실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중앙은행의 역할을 거의 실시간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실용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큰 재미가 되었다 (물론 경제악화로 내 삶의 질은 전혀 좋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ICU의 영어로 수업을 하시는 교수님들은 이론에 치중 된 수업보다는 실용적이고 재미를 유발하여 참여를 유도하는 강의를 해주셨기 때문에 10년 넘게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수업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일본인 교수님들의 경우에는 이론 자체에 치중하여, 이해보다는 시험을 목표로 한 주입식 수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영 수업의 경우, 회계와 같은 기초 전공 수업들은 일본어 수업 밖에 없는 관계로 억지로라도 꼭 일본어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싫어 일본으로 도피한 나에게 있어서 재미없고 어려웠던 수업들이었다. 더욱이 경제 관련 수업들의 경우 2012년~2013년 다시 떠오르는 아베의 정책에 편파적인 내용의 강의나 정치적 성향이 짙은 발언을 하시는 교수님은 충격이기도 했다 (국제 관계 수업 중 극우 일본 학생이 독일인 교수님에게 나치 우호 발언 및 제국주의 옹호 발언을 했을 때만큼 충격이었다).
제대 후 새로운 전쟁: 월세와 취업
제대 후 겪은 또 한 가지의 큰 변화는 자취다. 일본은 월세의 나라다. 그리고 월세는 생각보다 비싸다. 특히 기숙사에서 상당히 저렴한 (월 15만 원 정도였다)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자취를 하게 된 나에게는 월세가 큰 걱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월세는 월 지출의 40%~50% 이상인 경우가 많고, 지역에 따라 방의 크기, 편의시설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처음으로 혼자 살았던 나카노 (신주쿠 바로 옆의 주거단지 중심의 구)에 있는 25m2의 원룸이 월 90만 원이었다. 그 당시 일본의 평균 대졸 대기업 신입 초봉이 세전 200만 원이 평균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액수였지만, 전철역과 도심에서 가까운 편리성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였다. 출퇴근 시간과 러시아워 전철의 압박을 생각하면 도심에 가까이 살고 싶지만, 높은 월세 때문에 조금 싼 도심을 벗어난 곳에 집을 얻어 길게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후 다행히도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학교 근처의 셰어하우스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셰어하우스는 방이 4개였는데, 마법 같이 7명이 같이 생활하면서 출혈을 최소화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그럼에도 방 크기에 따라서 월 40~70만 원은 필요하였다. 돈이 궁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생활을 취직 직후까지 계속 이어갔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에 다 같이 돈을 모아서 KFC 치킨과 초밥으로 다음날 새벽까지 떠들거나, 누군가의 생일일 때는 값싼 재료들로 전골을 만들어 축해주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정신없이 전공과 부전공 수업, 그리고 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 들이닥친 대학생활의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취직활동. 한국과 일본의 취업의 차이중의 하나는 일본의 경우 대학 3학년때부터 취업활동을 시작하고 4학년이면 이미 오퍼를 받아 어느 회사에서 일하기 될지가 결정된 상태라는 것이다.
일본인 학생들의 경우 그들의 졸업일정에 맞춘 취업 설명회, 인턴쉽, 면접 등, 최적화된 과정이 사회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아쉽게도 ICU의 국제유학생들의 경우에는 이 과정이 적용되기 힘든데 그것은 우선 일본 학생들은 4월에 입학하고 국제학생들은 9월에 입학하기 때문에 일정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이나 기관에의 취업 과정은, 애초에 일본어가 원어민만큼 뒷받쳐지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따라서 국제유학생들은 Boston Career Forum*을 단 한 번의 최고의 기회로 생각하고 그에 올 인 하는 경향이 당시에는 컸다 (*보스턴에서 열리는 일본 최대규모의 외국 인재 채용 박람회). 특히 내가 취업활동을 했던 2013년은 일본 경제의 최 저점 중 하나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Boston Career Forum 외에는 기회가 정말 없다시피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일본 학생들의 취업 활동 과정과 이 포럼을 양쪽 모두 경험했고, 최종으로 포럼에서 취직을 확정 지어 일본 IT 대기업 중 한 곳에 입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경험 과정에서 느낀 점을 한국과 비교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일본의 취업 문화
우선 일본에서 취업 활동 중 내가 느낀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일본의 경우 대학에서의 성적과 전공이 취업에 거의 필요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성적이 좋지 않아도 대기업에 입사하는 케이스를 정말 많이 보았다.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본 역시 어느 대학 출신이냐는 한국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외에는 한국과는 다르게 화려한 이력서보다는 면접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특히 국제유학생의 경우에는 결국 면접에서 얼마나 자기 어필을 일본어로 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경험들을 해왔냐였던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경험”이라는 것은 좋은 회사 등에서 한 인턴쉽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경험한 아르바이트나 동아리 활동 등 학업 외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업무적인 능력이나 기술들은 어차피 입사 후 신입 교육연수 과정에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인턴쉽을 통한 기술적 능력적 경험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면접 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발생한 돌발상황이나 문제 등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혹은 어떤 사회적인 경험을 했는지를 더 중시한다는 인상이었다. 이 부분이 한국과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주로 번역 (영-일, 일-영)이나 영어과외 위주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아쉽게도 면접 때 활용할 수 있는 상황들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의 군대에서 한 경험은 면접 시 매우 유용하였다. 면접 시 경험에 관한 어떤 질문이 나와도 나의 군대 경험과 연계하여 풀어내면 면접관들 모두가 만족할만한 답변이 되었던 것 같다.
정적인 사회의 매력과 내가 이곳에 남은 이유
동경 주변의 동네 풍경입사를 하고 나서의 진행 상활은 일본 대기업의 경우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입 연수를 거쳐 부서를 배정받고 그 부서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평생 고용”의 이념 하에 커리어의 끝까지 같은 회사에서 보낸 것이 일반적이다. 첫 수년 동안은 연봉이 현저히 낮으며 (대기업 기준 연 2천~ 3천만 원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조금 인상되었을 것이다.), 오래 있을수록 연봉이 올라가는 구조에다가 법적으로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에 적은 연봉으로 시작하더라도 점차 생활이 가능한 안정적인 수입을 오랫동안 받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보다 높은 연봉을 위해 이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한 기업에 오래 있는 것보다, 이직을 하면서 연봉을 높이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고, 일본 사회도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일본 IT 대기업의 회사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그 안에서 일본만의 기업문화를 배웠다. 그 후 외자계 회사로 이직하면서 일본과 외국회사들의 차이를 경험하여 왔다. 일본 회사의 경우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꼰대 문화가 여전히 짙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다녔던 외자회사들의 경우에는 서로를 한 사람의 프로페셔널로 대우를 해주고 존중해 주며, 합리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해 주었는데, 이런 문화가 주요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에서 지난 15년간 이런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어디를 가나 나에게 100% 만족한 사회와 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변화가 많고 기회가 많지만 안정성이 떨어진다면, 일본은 한국보다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역동성이 떨어지고 차분한 정적 사회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일본인들의 이너서클에 들어가기가 힘들어 특히나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서적 미묘한 차이라거나 문화적 차이, 그리고 외국인과 내국인을 무의식적으로 구분하는 부분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의 참견을 받지 않는 안정적인 하루하루 싫지 않다면 일본은 정말 살기에 괜찮은 나라다. 그러기에 나 역시 이곳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만약 한국에서의 경쟁적이고 가쁜 생활과 문화에 지쳤다면 일본은 나쁘지 않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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