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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 첫 학기: 깜짝 놀란 3가지 사실 (1)

첫 번째: 학생들이 학점에 연연하지 않는다.

by 정인성

첫 번째 놀란 사실: 학생들이 학점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에게 한국대학의 학부 강의에서 학점을 주는 학기말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학점을 중시하는 학생들이기에 생각한 대로 높은 학점을 받지 못하면 이메일을 보내거나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했다고 해서 다 잘한 것도 아닐뿐더러, 잘했다고 해서 모두 A학점을 줄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납득이 갈만한 객관적인 대답을 상세히 준비해 놓아야 했었다.


일본대학에서 가르친 첫 학기말, 내가 가르친 모든 강의를 통틀어 학점에 대하여 질문을 하러 단 한 명의 학생도 찾아오거나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한국의 학점 배분 비율을 생각하면서 A는 약 10퍼센트 정도, B는 15 - 20퍼센트 정도로, 나중에 알게 된 일본대학 기준에 비하여 매우 짜게 주었는 데도 말이다. 일본 학생들은 공부나 학점에 관심이 없나, 내가 외국인이라서 물어보기 어색한가 등등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 일본대학생들이 학점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런 현상은 일본대학의 평가 제도와 더 나아가서는 일본 사회의 취업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사실 정보와 의견을 주신 정주영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그 이유 1: 절대평가 제도와 교수가 부여한 학점을 수긍하는 문화 때문에

대학에서 학점이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다. 매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은 그간 수업에서 한 공부의 양과 질에 관하여 교수에게 평가를 받으며, 그 최종 점수가 학점으로 나타나게 된다. 출석률, 과제 완성도, 시험 성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여된 학점은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수업을 잘 따라갔는지 등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많은 한국의 대학들은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여 학점을 부여하는 상대 평가 제도를 따르고 일본의 대학들은 대체로 교수의 판단 하에 수업 목표 달성도를 측정하는 절대 평가 제도를 따른다. 즉, 한국 대학의 상대 평가 제도하에서는 내가 잘해도 상대방이 더 잘하면 학점이 낮아지고, 일본 대학의 절대 평가 제도에서는 내가 잘하기만 하면 상대방의 점수에 관계없이 학점은 높아진다.


참조로 한국 대학들은 강의별로 A+. A0. A-. B+…… D+. D0. D-. F 등 10 단위 이상의 등급으로 학점을 로마자로 표시하며, 이를 숫자로 환원한 Grade Point Average (GPA)를 성적표에 사용한다. 이때 만점은 일반적으로 4.5 혹은 4.3이다. 반면, 일본 대학의 학점은 "秀(수)", "優(우)", "良(양)", "可(가)”, “不可(불가)”의 5 단위로 주어지며 “불가”는 불합격 혹은 F를 의미한다. GPA로 계산하여 만점은 보통 4.0이나, 성적표에는 GPA가 나타나지 않는다. 국제기독교대학 등 국제화가 많이 된 몇몇 소수의 대학만이 학점을 수치로 나타내는 GPA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 대학들은 절대 평가제도를 도입하여 교수들의 판단 하에 수, 우, 양, 가, 불가의 성적을 준다. 대학에 따라서 학점을 주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양 과목에서는 수가 20%, 우가 30%를 넘지 않게 하고, 전공과목에서는 수와 우를 합쳐서 70%가 넘지 않도록 하는 기준을 제시하거나, 교양 과목의 강의 당 평균 학점이 4.0만 점에 2.5를 넘지 않고, 전공과목의 경우 3.0을 넘지 않도록 하라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 제시와 상관없이 일본 대학에서 절대 평가에 따른 학점 인플레는 큰 문제로 지적된 바가 별로 없다. 즉, 교수들이 절대 평가를 한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높은 학점을 주지 않는 경향이며, 학생들도 자신이 한 만큼 나오는 학점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반면, 한국 대학들은 2000년도 이후 엄격한 상대 평가제도를 도입하여, 각 성적 등급마다 정해진 비율 (예를 들어, A+ 10%. A0 10% 등)을 적용하여 왔다. 대학에 따라서는 2020년을 전후하여 학생들의 경쟁 심화와 학점 스트레스 증가 등의 상대 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절대 평가를 함께 도입하여 교수들이 A+. A0. A-. B+ … 등 성적 등급에 따른 비율을 조정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절대 평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학점 인플레라는 문제점이 보고된 바 있다. 이는 학점이 졸업생들의 취업에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 2: 낮은 학점 징계가 심하지 않고 졸업 문턱이 낮아서

일본 대학생들이 전반적으로 학점 관리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학점이 낮았을 경우 대학에서 받는 징계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유사하게 일본 대학도 한번 입학한 학생은 최대한 관리해서 졸업시키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유학생 장려 방침에서는 성적 불량자를 최대한 지도하여 계속 재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하나의 중요한 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학사경고와 성적불량 시 제적의 예를 들어 보자. 일본 타 대학에 비하여 학사 관리가 보다 철저하다고 알려진 국제기독교대학의 경우, 학사경고는 매 학기 평균 학점이 1.0 (4.0만 점 기준) 이하인 경우에 주어지며 3학기 연속 1.0 이하의 학점을 받는 경우 제적의 사유에 해당한다. 매 학기 1.0 이하가 되는 학생들에게 대학은 편지를 통하여 경고장을 보내며 이 경고장은 학생의 후견인 (대개는 부모)과 지도교수에게도 전달된다. 학사 관리 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교수들이 학생들의 성적 불량 원인을 파악하여 도와주는 것으로, 매 학기 성적이 1.0 이하가 되는 학생들은 지도교수와 상담하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다음 학기 성적 관리를 잘하도록 계획을 세운다. 성적 불량 상태가 지속되어 또 학사경고를 받게 되거나 제적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학생들을 위해서 최종 결정 전에 지도교수가 청원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교무처장이 학생을 만나서 대개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관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학사 경고나 제적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 학사경고 사실이 성적 증명서 등의 공식적인 서류에는 기재되지는 않는다. 이는 일본의 타 대학 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대학에서도 학사경고 기준이나 성적이 불량한 학생을 관리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한 예로 연세대학교에서는 학사경고가 매 학기별로 평균 학점이 1.75 (4.30만 점 기준) 미만인 경우에 주어지며 학사경고가 3회 누적될 경우에는 성적불량으로 제적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연세대에서도 일본의 대학들과 유사하게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들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과 지원 등을 하고 학업을 마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제적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역시 한국의 다른 대학 들에서도 유사하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많은 대학에서 학사경고 기준이 4점 만점에 2.0으로 조금 높고 3회 이상 경고를 받으면 제적한다. 물론 1-2회 차에 여러 가지 도움을 청하여 3차 경고를 받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으나, 일단 마지막 학사경고가 나오면 학칙을 엄격하게 따른다. 미국 대학은 입학보다는 졸업이 더 어렵고, 한국과 일본의 대학은 입학이 어려운 데 반하여 졸업은 쉽다고 하는 이유가 이러한 학사관리의 차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 3: 학점을 중시하지 않는 취업 문화 때문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본대학 학생들이 학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가장 큰 요인은 취업을 할 때 대학에서의 학점이 거의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비정부 기관, 공공 기관 등에 취업하고자 할 때 학부 시절의 성적 증명서를 요구하는 곳은 거의 없으며, 성적 증명서 제출을 하는 경우에도 성적 자체를 중시하지 않는다. 성적보다는 오히려 동아리나 서클 활동 등에 관한 정보를 중시한다 (취업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상세히 하려고 한다).


학생들은 대체로 학기말에 받은 학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한번 받은 학점을 더 올려 받기 위하여 노력을 하는 학생은 드물다. 열심히 공부하였는 데 학점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이 있는 일이다. 이럴 때 대다수의 일본 학생들은 불평을 혼자 마음에 간직하거나, 그런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겨버린다. 일본의 대학에서 매 학기 2개의 강좌를 거의 20년간 가르쳐 오면서, 왜 내 학점이 잘 안 나왔느냐고 따지거나, 잘 못한 부분이 어디냐고 묻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교수실로 찾아온 학생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 이는 일본 학생들의 교수의 평가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 일 수도 있으나 더 큰 이유는 대학 성적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취업 문화 때문일 것이다.


그럼 학생들은 무엇을 중요시하나?

예외는 있겠지만 일본대학의 학생들은 대체로 학점보다는 성실한 학습 활동과 동아리 활동을 중요시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한국대학의 최근 연구 (https://accesson.kr/coaching/assets/pdf/13979/journal-5-1-33.pdf)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성공하는 것이란 ‘학업성취’ 혹은 ‘학점 잘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가장 높았으며, 이는 취업을 위한 능력을 기르는 것과 연계되어 있었다. 일본 대학생들은 어떠한가? 일본의 전국대학 생활 협동조합 연합회(全国大学生活協同組合連合会)가 실시한 학생생활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대학생들은 코비드 이전에는 인간관계와 동아리, 서클 활동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고 되었으며, 코비드 시절 동안에는 가장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인간관계나 동아리, 서클 활동 보다도 ‘학과 공부’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러나 ‘학과 공부’를 중시한다고 해서 일본 대학생들이 곧 높은 학점을 받는 것이 학생 생활의 성공으로 인식한다고는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보다는, 수업에 출석하고, 집중하여 수업을 듣고, 과제를 열심히 하여 제때 제출하고, 계획을 세워서 공부와 다른 활동을 병행하는 등 공부를 열심히 또는 착실히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일본의 대학생들은 학점보다는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고 수업에서 요구하는 여러 활동을 수행해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코비드 시대가 끝나면서, 일본의 대학생들이 다시 코비드 이전 시절과 같이 점차 동아리나 서클 활동이나 인간관계 부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일본 기업들에서 이 부분을 중시하여 채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운동부나 클럽활동이 매우 중시되어서 거의 매일 그 활동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 이외에 과외활동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학에 와서도 4년을 어떠한 클럽에 들어가서 보내는가가 대학 생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일본대학에서는 동아리 활동의 단체 게임이나 행사를 위한 연습 혹은 경기 때문에 강의 결석을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현상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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