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업인들 치열한 부분과 여유로운 부분이 있을 것이고, 특히 교수라고 해서 뭐 다를 것이 있을까 궁금해하지 않은 분들도 있겠으나, 한국대학의 가르치는 교수들의 삶과는 꽤 다른 점이 있어서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본 사회의 취미 생활 및 가사 활동 부분에서 도움을 주신 정주영 교수께 감사드린다.)
타대학 시간강사를 하는 현직교수가 많다
일본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첫 학기, 또 하나 깜짝 놀란 발견은 타대학 시간강사 (일본에서는 비상근 강사로 지칭)로 나가는 동료들이 심심찮게 많다는 것이었다. 즉 일본대학의 적지 않은 전임교원이 다른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한국대학과 유사하게 일본대학도 가르치는 교원의 약 50% 정도가 시간 강사이다. 이 시간강사제도의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하여, 일본의 비상근강사인 경우도 전임교원의 약 1/3되는 임금으로 같은 시간 수의 강의를 담당하면서도 복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대학의 전업비상근강사들의 모임에서는 많은 대학들이 전임교원을 시간강사로 채용하는 것을 우선시하지만, 이는 시간 강사를 전업으로 하는 이들의 직업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 보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여 왔다. 비상근 강사의 15% 이상을 정도를 차지한다고 알려진 현직 교수들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많은 일본대학에서는 공식적으로 일주일에 하루를 대학이나 학과 차원에서 연구일로 지정하여 교수가 자유롭게 본인의 연구 등을 위하여 연구실에 나오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런 지정일과 상관없이 자신의 강의 및 기타 의무를 하면서 자유로이 연구나 학문적, 사회적 서비스 활동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내가 근무한 대학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숫자의 일본 대학 교수들이 이러한 공식적인 주 1회 연구일을 타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타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내게는 놀라운 점이었다.
한국에서도 현직 교수가 타 대학 강사를 한다. 그러나 현직 교수가 타 대학에 강사를 하더라도 1-2회에 그치고 매년 정기적으로 오랫 동안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게 보아왔다. 반면, 일본 대학들에 있어서는 현직 교수가 정기적으로, 수년에서 길게는 수 십 년간 타대학에서 강사로 가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타 대학의 잘 아는 교수가 안식년으로 가는 경우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1-2회 성으로 강사로 가르치는 경우도 있으나, 매년 정기적으로 타 대학 강사로 출강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있었다. 물론 타 대학 출강은 본인의 대학에 보고 하도록 되어 있으나, 주 1회의 연구일을 이용한다면 별 문제가 없다.
왜 이렇게 타대학 강사를 하는 경우가 많을까? 본인의 강의와 연구, 봉사 등으로 여유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타 대학 강사로 매년 출강하는지를 일본대학의 동료 여러 명에게 질문하였다. 가장 많은 이유는 강사를 맡아 달라고 하는 타 대학 교수가 잘 아는 분이거나 그간 신세를 져 왔던 분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인 학과의 강사로 나오는 타대학의 교수가 그 대학의 강의를 맡아 달라고 부탁할 경우 거절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은 개인주의가 중시되는 동시에 집단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사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상 한 대학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타 대학에 있는 선후배 교수의 부탁을 받는 경우 강사로도 일하게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설명은 수년 혹은 그 이상 시간 강사직을 지속하는 이유로서는 왠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다음으로 드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남자 교수들이 강사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고 있는 경우 한 사람의 교수 월급에 더해지는 강사료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필요에 따라 한 과목이 아니라 여러 과목, 혹은 여러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는 교수도 있다. 시간 강사를 지속적으로 하는 현상을 볼 때 이 경제적 이유가 가장 설득력 있게 보인다.
타 대학의 시간 강사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타 대학의 우수하거나 특별한 교육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작은 규모의 사립대학에서 가르치면서 동경대나 와세다대 등 규모가 크고 학생들의 특성이 다른 타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대학 교육이나 학생에 대하여 보다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이유들이 이해되긴 하지만, 이로 인하여 교수 본연의 본업인 자신의 강의 준비와 연구, 봉사 활동들이 소홀하다면 문제가 된다. 사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이 되어 있는데, 매 학기마다 남보다 1과목 혹은 그 이상씩 더 가르친다면 내 본업에 투자할 시간이나 여러 가지 창의적 생각을 할 시간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업 밖에서 가르치는 데 많은 열정과 시간을 소비하는 전임교원이 적지 않다는 것이 아마도 일본대학의 연구력과 연구 실적의 저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여유롭게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긴다
이렇게 연구일에도 타대학 강사를 하면서 치열하게 (?) 사는 모습을 보면서 놀란 반면, 주말이나 방학에는 여유롭게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면서 사는 동료 교수들을 보면서 또 한 번 놀랐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는 교수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는데, 송년 모임 등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등을 취미로 연습하고 연주하는 교수들이 모여 작은 연주를 종종 하곤 하였다. 악기를 다루고 성악을 하는 타 대학 교수들을 포함하여 음악을 취미로 하는 사회인들이 모여 만든 음악 동호회들이 지역 문화센터나 상설 뮤직 홀 등에서 연주회를 하는 동료 교수들도 있다. 내가 살던 대학 캠퍼스 내의 교원주택에서도 종종 이웃집 교수가 부르는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 사회 전체에서 취미생활의 저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고, 그 외에 스포츠, 미술 등 여러 동호회가 있고, 일본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매우 진지하게 열심히 한다. 일본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고, 종교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여가 시간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취미생활을 하고, 그 취미생활이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음악 동아리나 오케스트라가 콘서트를 열 경우 취미생활이라고 대충 준비하지 않고 매우 철저하게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한다. 아마추어 음악 콘서트가 열리는 과정에 몇 번 참여하였는데, 첼로와 피아노의 연주를 할 경우 첼리스트가 무대의 어느 지점에 서고, 악보대는 어느 지점에 놓는 지까지 다 표시해 놓고, 그것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이 각 지역의 음악당에 있다. 이러한 취미활동의 저변화로 일본의 각 자치구역에는 음향시설이 매우 좋은 음악당이 구나 시의 커뮤니티 센터에 마련되어 있고,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대개 몇 만 원 수준) 빌릴 수 있다.
주변 일본 남자 교수들 중에서는 가족을 위하여 주말 동안 요리를 하거나, 전문적으로 커피를 내리거나, 와인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와인 테스팅을 자주 하는 것과 같은, 요리와 관련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거창한 요리라기보다는 카레라이스나 스파게티 등을 좀 더 건강한 재료를 써서 창의적으로 만들어서 부인이 바쁜 날이나 주말마다 가족들에게 선사한다는 분, 수년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아침마다 부인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분, 더 나아가 연구실에서도 작은 카페를 마련하여 방문하는 손님에게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는 분, 일본 차를 다도 전문가처럼 끓여 내는 분, 일본 라면을 연구하면서 친구들이나 식구들에게 자신이 색다르게 만든 라면을 선보이는 분, 제빵 기술을 배워 맛있는 빵을 굽는 분, 디저트를 개발하는 분 등등 저자들이 접한 교수들 중 이러한 취미를 가진 분들이 꽤 있었다. 한국에 비해 교수들이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일본 생활을 보아도 주말엔 가족들과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거나, 미술 전시회나 음악회를 함께 가거나, 집 뒤뜰에 식물을 가꾸고, 교회 참석하거나 서비스 활동을 하면서 가족, 혹은 가까운 친구 들과의 시간을 가졌다. 한국의 교수 시절과 비교해 볼 때 일본의 교수 시절에 보낸 주말과 방학이 좀 더 여유가 있었다.
골프를 치는 교수들이 거의 없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골프는 돈도 많이 들지만 시간도 많이 드는 취미이다. 일본대학 교수들이 여러 취미 생활을 하지만 골프를 치는 사람은 드물었다는 것도 하나의 놀라운 점이었다. 한국의 경우 언제부터인가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많은 교수들이 골프를 치기 시작하였다. 골프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이 보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특히 예약이 어렵고 가격이 올라가는 주말보다는 주중에 치는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반면, 일본의 경우 교수들이 골프를 취미로 자주 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내가 아는 일본 각지의 국립대, 사립대 교수들 중 골프를 주중에 치는 교수는 본 적이 없다. 주말에도 치는 교수도 잘 본 적이 없고, 방학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골프를 쳤다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 이는 골프 비용은 한국보다 일본이 저렴하거나 비슷한 수준임에도 동경 같은 도시에서 골프를 치러 골프장까지 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의 규칙에 저촉되지 않으려는 문화가 있고, 가사 및 취미 활동, 타대학 강의 등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유도 있으며, 한국에 비해서 골프의 열기가 많이 식어버린 일본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남녀 교수 모두 가사 활동을 많이 한다
또 하나 놀란 점은 남녀 불문, 가사 활동에 시간을 보내고 대학에서는 이런 부분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한국과는 차이가 나는 문화였다. 여자 교수들은 물론 남자 교수들도 매일의 생활에서 가사를 돌보는 것은 기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일본은 높은 인건비 때문에 가사 도우미를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육아에 부모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한국에 비해 적기 때문에 성별에 관계없이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교수가 많다. 육아 및 노부모 돌봄 등 가정일을 많이 해야 하는 시기에 있는 교수들은 주 3-4회 출근하면서 퇴근도 일찍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암묵적으로 서로 이해를 하는 분위기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돌보아줄 사람을 찾을 수 없어서 부득이 회의에 불참하거나 중간에 일찍 가야 하는 경우가 생겨도 서로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된다. 나의 경우 딸아이가 중학교 시절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주어야 했다. 1년 동안 내가 해야 하는 최소 의무 수업과 빠질 수 없는 회의 참석만을 하고 나머지 모든 활동들은 하지 않았는 데, 학과 교수들과 대학에서 기꺼이 양해를 해 주었다. 물론 일본대학에 따라 분위기는 조금씩 다를 것이나 대체로 가사와 육아에 대하여 서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