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막다른 길에서 시작이다.
언제였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은데, 여름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새로 산 식재료들 옆으로 나중에… 나중에를 읊으며
안 보이게 구석구석 끝까지 밀어 넣은 반찬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보니 참담했다.
곰팡이로 가득 차 원래 반찬이 뭐였는지도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느껴졌다.
나 자신에 대한 미움, 원망, 한심함 , 안타까움 제대로 된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냉장고 문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글러먹어서 남들 다하는 냉장고 청소도 안 하고 산 건지,’
‘애엄마라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거야?’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곰팡이 가득한 반찬통들이
꼭 나의 마음 같았다.
안 보이게 밀어 넣는다고 숨겨놓는다고
사라지지 않을
곰팡이까지 피게 되어버린
썩어 문드러져 냄새나는 마음말이다.
나는 그 순간 울분에 찬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다 꺼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부분의 것들은 버려야 하는 반찬,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들이었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버리고 씻고 박박 닦으면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질 줄 알았다.
등이 땀으로 흠벅젖을때까지 고된 노동을 끝냈지만 노동의 결실은 비참함, 쓸쓸함뿐이었다.
더는 이러고 살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아 제일 빨리 상담받을 수 있는 정신과를 울면서 예약했다.
“이렇게 더럽게 사냐, 청소 좀 해라”
“아기 엄마가 이렇게 살 거냐 ”
“넌 누구 닮아서 이렇게 지저분하게 사냐“
“바지 벗은 거 다시 걸어두는 게 그렇게 어려워? ”
“냉장고 안 좀 청소해야겠는걸? “
“차 청소. 좀 해 ”
38년을 살면서 가족들에게 , 결혼 생활 10년 남편에게
수없이 들어온 말들이 자동재생된 파일처럼 내 귓가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그쪽들이 너무 깔끔한 거고 나는 청소에 소질이 없으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 , 항상 싸움으로 끝이 났다.
그래서 결혼 후 친정식구들이 집에 올 때는
항상 검사받는 기분이어서 오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끝이 보일 정도로 엉망이 될 때까지 버티다
닥쳐서 하는 것. 또는 엉망을 힘겹게 수습하는 삶
그게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었다.
어느 날 미디어에서 성인 adhd가 핫이슈로 떠올랐을 때였다. 여러 연예인들이 자신의 adhd의 경험담들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응? 난데? “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우스갯소리로 친언니에게 이야기했을 때 네가? 아니야 아니라는 말에 그렇겠지?라고 넘겼는데…
(가족들도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판정받고 나니 깨달았다.
본인이 아니면 의심하지 못하는 것 adhd다.
(본인도 모르고 지냈는데 우울 불안장애로 진료받다가 adhd 판정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나는 외치고 싶었다!
당신들은 내가 아니니 나에 대해 알 수가 없어!
나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내가 얼마나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인 것도…
제대로 살고 싶단 말이야!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을 나도? 내가 설마? 하시는 분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나 또한 그 뒤로도 검사 한번 받아볼까 한 1-2년 고민만 했다.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고 이 또한 나의 adhd 미루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판정받고 깨달았다. 조금의 의심이라도 든다면 예방차원으로라도 정신과를 가보기를 꼭 추천드린다. 생각보다 정신과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다.)
내가 정신과를 예약한 또 다른 이유는 불안장애 때문이었다. 남들이 생각 안 하는 이유들이 날 항상 괴롭혔고 숨 막히게 할 때도 있었다.
제일 안 좋은 일들은 나에게만 일어나 것 같은 상상 속에 살고 있는 _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솔직히 남들도 조금은 비슷한 생각을 가끔이라도 하고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용기 내어 물어본 _친한 언니가 말했다.
“아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아…”
그때 나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속으로 깨달았다.
한편으로 점점 성장하는 나의 소중한 딸아이에게 내 감정이 영향을 미칠까 너무 겁이 났다.
혹여나 나의 불안이 아이 마음에 스며들까 걱정이… 내 아이만큼은 나와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딸을 위해서라도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그게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정신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