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가끔 이런 상상하지 않나?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 퇴사해야 하는지, 뭘 하면 좋을지, 딱 정해져 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사주 선생님이 말했다.
"원하지 않는데 한국을 떠났네요.. 지금 많이 힘들죠..?"
나는 그분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준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뒤이어 하는 말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그래도 지금 당장 그만두면 후회할텐데.."
나는 애초에 타국에서 딱 1년만 일하고,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난 군대에 갇힌 사람처럼 하루하루 날짜를 세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이건 아니지 않나?'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털어놨다.
나: "퇴사하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서 자리 잡고 싶어."
친구: "지금 너무 빠른거 아니야?"
나: "나도 모르겠어.."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이 나라가 나와 맞지 않는 걸까?
아니면 너무 보수적인 회사 시스템에 답답함을 느끼는 걸까?
만약 한국에서 승무원을 했다면 지금과 달랐을까?
판단이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무언가에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로 즐겁게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하루하루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버티고 있었다. 그때 당시 우리 회사는 통금시간이 있었고, 비행 몇 시간 전에는 숙소에 들어와 꼼짝없이 있어야 했다. 자유롭게 살아왔던 나는 이런 환경이 숨 막히고 감옥 같았다. 그리고 우울함이 찾아왔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숙소 건물 안에 있는 헬스장을 가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공간에서 생각없이 달리는 것 뿐,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내 말을 듣던 친구는 나에게 조심스레 사주보는 걸 추천해줬다.
"정말 잘 보는 분이 몇 분 계셔. 내가 리스트 보내줄게."
그리고 각각의 특징까지도 설명해줬다. 솔깃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누구한테 받아볼까?' 하고 이미 선택지를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궁금했다. 리스트까지 받고 알게 된 이상 들어보고 싶었다. 참고만 하자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결국, 난 지구 반대편에서 사주를 봤다. 쿵쿵- 심장이 떨렸다.
사주 선생님의 첫 마디는?
"OO씨는 원하지 않았는데 한국을 떠났네요. 물이 필요한 사람이 물 한 방울 없는 곳에 갔네.. 지금 많이 힘들죠..?"
나는 그분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실 난 마음이 너무 고되어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었지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았지만 뒤이어 들려온 말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그래도 지금 당장 그만두면 후회할텐데.."
나는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사실, 내심 '그만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럼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과연 정말 그만뒀을까? 아니다.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엔 내 10년의 세월이 억울했다.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
휴가로 한국에 갔다.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아봤다. 또 내 성격에 대해 알 수 있는 기질 검사라는 것도 받았다. 그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마음을 해결하고 싶었다. 외면하지 않고 나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자그마하고 예쁜 공간에서 상담이 시작되었다.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항공사 부기장님은 일하며 너무 지나치게 긴장을 하셨어요. 그럴때마다 스트레스와 압박이 심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본인의 타고난 기질을 보고, 어떻게 해결해나가면 좋을지 상담하며 많이 좋아지셨어요. OO씨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결과가 나왔다.
"OO씨는 사회적 민감도가 굉장히 낮네요. 예를 들어 비행할 때, 승객들이 콜벨을 누르면 보통 동료 승무원들이 100% 의 스트레스를 느낀다면, OO씨는 200% 로 느낍니다."
나는 실제로 이런 상황이 있었을 때, 나를 자책했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힘들어할까?’
그런데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그리고 내가 힘들때마다 썼던 감사일기와 줄줄 써내려갔던 일기들을 꺼내어 보여드렸다. 극복하려고 이렇게 안간힘을 썼다고.
선생님은 깜짝 놀라시며 내가 빼곡하게 적은 종이를 보곤 말씀하셨다.
"지금은 이런게 다 소용없어요. 이렇게 쓰는 것 자체도 압박일거예요. 그냥 두세요, 마음을."
순간, 내 자신이 안쓰러웠다.
'내가 나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구나. 나도 나를 잘 몰랐구나. 앞만 보고 달렸고, 꿈을 이룬 후에도 멈추지 않았구나.'
머리로는 어느정도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해결되는 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선택한 길.
버티든, 뭘 하든, 어떻게든 1년은 있어보기로 했다.
뚜렷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고독하고 힘든 만큼 나는 변화하고 있다.’
퇴사를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 순간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우리는 '이 길이 맞을까?' 고민하는 순간, 불안해진다. 그리고 확인받고 싶다. 또 누군가 나에게 확신을 주길 바란다. 하지만 결국 답은 내안에 있다. 내가 하는 것이 정답이다. 고민하는 순간부터 이미 다른 방향을 향해 한 걸음 내딛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