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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타이틀

나는 승무원이다.

by 지니퀸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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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하세요?"

"승무원이예요."


"와~ 승무원이시구나!"


남들이 보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대답 한마디 하기까지, 10년.

사람들의 반응은 늘 좋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씁쓸했다.


정말로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승무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필요했던 걸까?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 이후로 새 학기를 시작할 때마다 장래희망 란에 항상 "승무원"이라 적어왔다. 친구들도 모두 내 꿈을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일, '승무원'이 맞다. 하지만 10년간 도전과 탈락을 반복하며, 그 간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며, 10년의 끝자락 즈음에 나라는 사람은 서비스직과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 깨달음조차, 내가 쏟아부은 시간이 너무 길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되었다는 사실도 필요했다. 나도 무언가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보고 싶었다. 그게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했다. 실패자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 당당하고 싶었다.



"무슨 일 하세요?"

"승무원이예요."


"와~ 승무원이시구나!"


'승무원이예요.' 이 한마디에는 내 10년의 노력, 타국에서 감당해야 하는 고립된 외로움, 홀로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담겨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좋았다.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직업, 화려해 보이는 커리어. 이게 바로 소위 말하는 '타이틀' 아닐까?


물론 세상엔 더 대단한 직업이 많고, 누군가에게는 그리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한마디가 내가 해낸 것들의 증거였고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이유였다.



승무원에 합격한 후, 왠 중동 국가인 카타르까지 가지 않아도 될 만큼 기뻤다. 정말이지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다. 승무원 다음의 넥스트를 항상 생각하고 있던 나는 승무원이 된 것 만으로도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좀 더 빨리 됐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젊은 나이에 충분한 경험을 하고, 후에는 막연했지만 내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는 나만의 사업을 평생 하고 싶었다.



서비스직이 맞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발 담가보지 않으면 모르기에.

그 직업에 매료되어 혹시 또 모른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 정한 기한까지, 다신 못할 더 큰 세계를 경험하고 오자.

용기내어 한 발짝 뗀 것이었다.


각오는 하고 떠났지만 타국에서 일하는 동안 마음속 불안과 의문은 늘 함께했다.


'그놈의 타이틀 다 떼면 나는 뭘까?'

'나는 내 이름 석자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래 좋아. 다 떼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지?'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견딜 수 있는게 무엇일까?'



추운나라, 더운나라,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기내 창문너머로 만져보고 싶었던 몽글몽글한 구름을 바라보며,

어두운 기내 속, 곤히 잠든 승객들 사이를 조용히 걸으며,

나는 늘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새기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수많은 승객들을 만났다.
그 중에 한국 며느리를 맞이해 삐뚤빼뚤한 한국어로 가득 채운 책을 내게 자랑하던 금발 할머니, 그 눈빛이 너무나 순수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공항에서 작별을 했는지, 이륙 순간까지 공항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한 승객.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별거 있더냐'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확실한 답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꼭 찾게 될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타이틀을 넘어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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