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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Dec 12. 2024

비행기에도 옥상 휴게실이 있으면 좋겠다.

비행과 여행 사이, 로망과 현실 사이

"쿵- 쿵-"


화장실 안에서 나는 머리 박는 소리. 내가 내는 소리였다. 이런식으로 잠에 든 건 처음이었다. 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졸아본 적 있는 사람!

서서 졸아본 적 있는 사람!






비행을 시작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햇병아리 시절.

나는 승무원이 되면 시간 관리를 철저히 잘 할 줄 알았다.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준비해서 비행을 가기까지. 모두 계획대로 잘 움직일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첫 해외 레이오버 비행(목적지에 머물다 오는 비행)은 프랑스 파리였다. 내가 그렇고 가고 싶어하던 파리. 예전에 운영하던 카페 '비행모드'에서도 파리에 대한 로망을 가득 담아 인테리어를 했다. 카페 한쪽엔 파리의 사진과 책자를 뒀고, 카페 시그니처 메뉴였던 탑승권 보틀에는 파리를 목적지로 새겨 놓을 만큼 파리는 나에게 특별했다.


"승무원이 되면 꼭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을거야." 했던 그 파리가 첫 해외 레이오버 비행으로 당첨되다니!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결국 승무원이 되고 나서도 그 꿈을 이루는 데 1년이 더 걸렸다.



햇병아리 승무원이었던 나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야무지게 알람을 맞춰 침대에 누웠다. 암막커튼도 치고, 따뜻한 전기장판을 잔잔하게 켜 둔 침대로 쏙 들어가 눈을 감았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콩닥 콩닥 콩닥 콩닥..'


심장소리 였다.

비행을 앞두고 긴장이 되어 쉽게 잠에 들지를 못했다. 이전에는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심호흡도 하고 편안하게 해준다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도 소용이 없었다. 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자는 둥 마는 둥 1시간도 채 못 잔 상태로 비행에 나섰다.



파리까지는 6시간. 중거리 비행에 서비스 절차도 많아 정신없이 움직였다. 서비스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내 눈은 이미 새빨갛게 충혈된 토끼눈이었다.


'랜딩까지만 버티자.'


스스로 다짐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잠은 쏟아졌다. 그럴수록 더 움직였다. 승객 모두가 잠든 어두컴컴한 기내를 혼자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녔고, 승객이 콜벨을 누르면 "내가 갈게!" 하고 곧장 갔다.


그러다 긴장이 살~ 풀리기 시작하면서 내 무릎이 앞으로 살짝 꺾이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쓰러질 뻔 하는 걸 반사신경으로 다른 한발로 지탱해 일어섰다. 단 몇 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잠깐새 내가 잠에 들었던 것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런 고문이 없었다.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왜 이런 고문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스트레칭도 하고 다른 크루와 대화도 했다. 하지만 잠깐 뿐이었다. 그냥 차라리 정신없이 계속 바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5분만이라도 엎드려 잠을 청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 마음 편히 쉴 곳이 없었다.


'비행기 문을 열수도 없고..'


옥상이라도 있다면 당장에라도 올라가서 편하게 앉아 바깥 공기를 쐬고 싶었다. 지친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문에 기대 머리를 살짝 댔다. 그리고 바로 꾀꼬닥.


"쿵- 쿵-"


머리를 박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내가 내는 소리에 내가 깬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졸아본 적도 처음이라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괴로웠다.


'이러고 살아야 되나..'



로망 가득한 파리에 화장실에 머리 박으며 그렇게 도착했다.

머무는 시간은 고작 12시간. 호텔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빼면 제대로 쉴 시간은 10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토록 꿈꾸던 에펠탑이 1시간 거리에 있는데.. 구경은 커녕, 호텔 침대에 누워 잠만 자야 했다.


다른 크루들은 근처 면세점에 간다며 급히 나섰고, 나만 호텔에 남았다. 커튼을 걷어 창밖을 봤다. 비가 내린 파리 덕분에 창문은 뿌옇게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정말 파리인지 어딘지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도하의 내 방이 떠올랐다.



그리고 불과 몇일 전, 첫 레이오버로 한국에 갔을 때 엄마와 보냈던 따뜻한 시간이 떠올랐다. 해외 여행을 혼자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적막한 호텔에 덩그러니 앉아있는게 낯설었다. 뭘 해야될 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꿈꾸던 크루 라이프의 첫 비행은 이런 모습이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순간들은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그 몇초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찰나의 순간들을 위해 감내해야 할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그래서 그 순간들이 더 값지고 반짝반짝 빛나는지도 모른다.



파리 비행은 내 로망과 달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을 더 많이 겪게 될 수도 있지만, 이 마저 내 비행의 일부이고, 돌아보면 돈 주고도 못 살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다짐했다.

비행과 여행. 그 사이에서 단순히 여행지를 즐기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알아가는 여정을 해야겠다고.



진짜 여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난 승무원이 되어서도 꿈꿨다. 다시 이곳에 와, 낭만을 제대로 즐기겠다고.



그리고 1년 뒤, 나는 엄마와 함께 다시 파리로 왔다.

1년 전 나는 이곳에서 울고 있었지만

1년 뒤 나는 에펠탑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이 모든 순간은 내 여정 중,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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