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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합격, 1년만에 퇴사

비행기가 궤도 밖을 벗어났습니다.

by 지니퀸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은,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리자인 레터(사직서)를 꺼냈다.

책상 서랍 속, 늘 그 자리에 있던 종이. 언젠가 이 순간이 올 것을 알았기에 미리 써두었지만, 다시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눌러 썼다. 마음이 동요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차분히 회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대로 제출했다. 대부분 크루들은 마지막 비행 날짜를 정하고 그때까지 천천히 준비하고 비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나는 즉시 퇴사를 선택했다. 이미 그 즈음에 마지막 비행이라 여기고 혼자 아무도 모르게 준비를 했었다.



타이틀이 주는 성취감과 공허함

승무원. 이 타이틀은 나에게 조금 다른 의미였다. 그것은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나를 의심하고, 다시 다잡고, 그래도 안되면 눈물로 삭히던 그 시간을 지내왔다. 10년간 스스로를 다잡고 '포기하지 않은 나’ 라는 사람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게 승무원이란 이름이었다. 그 과정의 끝자락 즈음, 서비스직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오래 할 수 없을 거란 예감이 있었음에도, 나는 그 문 앞에 서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받았을 때, 나는 사회로부터의 인정보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정리되는 걸 느꼈다. 그렇기에 합격이라는 문구만 보고도 '이거면 됐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참 오래 걸렸고 참으로 힘들게 얻었다. 그래서 승무원을 그만두는 게 두려웠다. 그 타이틀이 사라지면, 나까지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버텼다. 향수병에 시차에 노동에 새벽에 울리는 알람. 한국을 떠나올때면 집 화장실에서 부모님 몰래 울다가 들켜서 속상하게 해드린 적, 엄마가 입원을 했지만 당장 달려가지 못해 가슴 아파 했던 적, 떠나는 길 공항에서 친구를 부둥켜안고 운 적. 단 한번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던 1일 1눈물의 진하고 독한 나날들이었다.



울든 말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년이라는 시간을 정했다.

그 1년이 지나자 마음이 꽤나 달라졌다. 향수병도 사라지고 무언가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다고 비행이 기다려지진 않았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행복하고 재밌는 순간도, 마음에 감동이 일렁이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상이었지, 내 감정을 채워주진 않았다.



증명의 시간이 끝나갈 때

단순히 '직장을 옮길까?'하는 선택이 아니었다. 거의 10년간 준비한 여정의 끝자락과 1년 넘어가는 승무원 생활, 총 11년간 마음에 품었던 걸 내려놓아야 할 때였다.


'너무 금방 그만두는 건가? 동기들은 다들 오랫동안 일하는데?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걸까?'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에너지의 밀도였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진심으로 해봤기에.

그거면 됐다.



하지만 합격하는 것보다 놓는 것이 더 힘들더라.

겨우 만든 내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와 가슴이 싸우며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래서 몇 달간을 매일 블로그에 감정을 기록했다. 퇴사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를 비교하며 내가 얻는 것, 잃는 것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매일 두통약을 먹으며 버티는 지경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내가 걸어온 10년의 세월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단 1의 후회도 하고 싶지 않아서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얼마나 조심스러웠기에,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지금 현재 일을 즐기지도,

이도저도 아닌 상황 속에 나는 갇혀있었다.

이만큼 바보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니 늦게서야 깨달았다.



단순한 질문으로 돌아가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자.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가? 아니면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나에게 일이란 단순히 먹고 사는 생계의 문제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일하는게 즐겁고 행복할 수 있어? 다들 사는게 그렇지 뭐.'


그럼 내가 다시 질문하겠다.

'왜? 왜 사는게 다 그래?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수도 있지 않는가?'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나는 행복함을 느끼며 의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이렇게 살겠노라, 상상하며 적고 또 적었다. 너무 설레어 심장이 뛰어 밤새 잠 못이루는 날도 있었다.



이제 진짜 내 이야기를 쓸 시간

결국 내 삶을 살아내는 건 나 자신이더라. 행복한 순간도, 괴로운 순간도. 그 모든 1분 1초를 온전히 느끼고 견디는 건 나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인생이 아니라, 진짜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걸. 하지만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마주한 한 문장이 있었다.

"아무 결정도 못 하고 시간만 보내느니, 잘못된 결정이라도 빠르게 하는 편이 낫다."


나는 누군가, 그냥 마음먹은 대로 하라고, 괜찮다고 말해주길 바랬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승무원이 곧 나였던 그 이름을 내려놓았다.


허망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11년이 넘는 긴 여정이 이렇게 마무리된다고?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 시원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얼마나 더 해야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을까? 끝도 없을 것 같았다. 후회할 수도 있고 미련이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게 내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그 어렵게 된 걸 왜 그만뒀냐?'

‘너무 아깝다..’

나는 그 10년 이라는 세월에 내 발목이 잡혀, 더 이상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내려놓았다. 그 타이틀도, 시간의 무게도.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비행기가 궤도 밖을 벗어났습니다.

도하. 40도가 넘는 더위. 뜨거운 바람. '이 바람도 이제 끝이구나.'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카타르에서 가장 깊이 마음을 나눈 동료가 마침 인천행 비행이라니..


"Qatar loves her."


항상 주위에서 말해주던 이 한마디. 정말 그랬나보다. 마지막까지. 돌아가는 길까지 외롭지 않게 가라고, 가장 친한 친구를 곁에 두게 해준 카타르에 감사하며. 꿈을 이루게 해준 카타르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 모든 여정과 감정을 뒤로 하고, 이제 나는 한국으로 간다. 10년간 준비했던 여정을 접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시작하러 간다. 그동안 나는 목표를 이루는 데 집중해 치열하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나답게 사는 삶을 이루고 싶다. 아니 살아내고 싶다.


때로는 승무원인 내가 그리울 수도 있다. 완성형 같았던 내 과거가 그리울 수도 있다. 비행하는 동료들이 부러울 수도 있다. 당장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내지 못해 불안할수록 내 과거가 사무치게 그리울 수도 있다.



'아싸 잘됐다.'


불쑥 찾아올 수도 있는 이런 감정마저 내 동력으로 삼겠다. 그렇게 살아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있다.


확신이 있다. 적어도 나는 10년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를 이루어낸 사람이다. 이 타이틀은 내 평생을 받쳐주는 지지대이자 내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잠시 쉬었다, 다음 챕터를 또 써보려 한다.



마무리하며

이 글을 읽은 당신께 전하고 싶다.

나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사람이라면 힘들게 얻은 걸 내려놓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더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나는 나답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그대.

용기를 내세요.


내 온마음 다해 청춘을 바쳐본 적

그리고 그걸 놓아본 적

돌아보니 꼭 필요했던 11년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

당신의 삶이 당신답게 빛나기 시작할 때, 그 모든 고민은 의미로 바뀔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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